하고 싶은게 많아서 하고책방_09
한국 사회에서 인간을 구분하는 아주 대표적 이분법(?)에 따르자면 나는 '문과'이고 남편은 '이과'이다. 나는 심리학을 전공했고 남편은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게다가 나는 책을 좋아하다 못해 지금은 아예 책방까지 하게 되었지만 남편은 대학 졸업 후 지금까지 줄곧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으며 책과는 거리가 멀다. 내가 그림책에서부터 동양사상, 심리학, 소설, 과학, 에세이에 이르기까지 분야를 망라하여 한 달에 몇 권의 책을 읽는 반면에 남편은 일과 관련된 책을 아주 간혹 보는 것 외엔 책을 거의 읽지 않는다.
이렇게 관심사가 다르다 보니 대화가 잘 되지 않을 때가 많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하면 "아, 그래~ 아브락사스!" 이런 반응은 기대할 수 없다. 일단 그는 <데미안>이 뭔지 모르니까. 데미안이 쓴 <헤르만 헤세>를 아냐고 물어보아도 아무 문제를 못 느끼는 사람이라 애당초 책에 대한 대화는 포기했다.
내가 그에게 바라는 최소한의 소망은 인문학 책을 조금이라도 읽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소망은 우리가 알고 지낸 지 20년이 흘렀지만 충족되지 않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에게 당신과 대화하면 가끔 너무 '무식'한 느낌이 든다는 직설을 날리고 말았다. 남에게는 할 수 없는 말이지만 남편이니까. 무식하다는 얘기를 들은 남편은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근데 너... C언어 아니?”
C언어라. 그것이 대관절 무엇이더냐. A B C D E F G.....
뭔가 쿵 하고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남편이 집에서 종종 컴퓨터로 일을 할 때 도무지 알아볼 수 없는 언어로 무엇인가를 하는 것을 보았지만 내가 알아야 할 영역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알고자 하는 마음이 과거에도 없었으며 지금도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C언어에 관심이 없는 나의 당연함이 데미안을 읽지 않았고, 읽을 마음도 없으며 앞으로도 읽지 않을 예정인 ‘그의 무식함’과 같은 무엇이었음 여실히 보게 되었다. 내가 무식한 남자와 사는 것이 아니라 그가 기초적인 C언어도 모르는 ‘무식한 여자’와 살고 있었다. 그는 마음만 먹으면 데미안을 읽을 수는 있겠지만 나는 마음을 먹어도 C언어를 읽을 수 없다.
그놈의 C언어 사건 때문에 많은 것들을 통찰하게 되었다. 남편보다 더 무식한 사람이 나였다는 자각은 물론이요, 내가 남을 판단하는 모든 것들이 데미안과 C 언어 같은 상황이라는 싸늘한 깨달음.
이것은 예쁘고 저것은 이쁘지 않다, 이 사람은 착하고 저 사람은 나쁘다, 이것은 맛있고 저것은 맛없다, 이것은 유익하고 저것은 소용없다, 여기는 좋고 저기는 별로다 등등. 내가 맞다고 생각한 것들이 과연 객관적인 진실이었을까. 각자의 짧은 경험과 기호를 기반으로 일방적으로 만들어진 편견을 객관적 사실로 착각하는 것이야 말로 최고의 무식이 아니었을까. 무식이 무식임을 모르는 무식.
그 후로도 여전히 남편이 책을 좀 읽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지만 애써 권하지 않는다. 남편은 무식하다는 내 발언을 비꼬아서 나를 '우리 고상한 이여사님'이라고 부른다.
어쨌든 데미안을 모르는 무식한 남편과 C언어를 모르는 고상한 이여사는 잘 먹고 잘 자며 잘 살고 있다.
그리고 잘 싸우기도 한다. 무식하면 용감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