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말2

하고 싶은게 많아서 하고책방_10

by 도우너

'사치' 라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는 '필요 이상의 돈이나 물건을 쓰거나 분수에 지나친 생활'을 일컫는다. 그렇게 본다면 난 사치와는 거리가 아주 멀다. 외모를 크게 꾸미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옷을 사봤자 시장에서 구제 옷 몇 천원짜리 사거나 인터넷에서 옷 구매하는 것도 일년에 한두번 정도다. 지금 입는 옷들도 대부분 친구들이나 주변에서 안 입는다고 준 것들이다. 옷이 그러하니 거기에 맞는 명품가방은 있을리 만무하고 얼굴에 화장을 하거나 피부에 공을 들이는 편도 아니라서 썬크림도 필요없고 로션 하나로 사계절을 쓴다. 미용실은 1년에 한번 정도, 신발은 하나 생기면 발가락에 구멍이 나거나 밑창이 떨어질 때까지 신는다.


친정엄마는 이런 딸이 안쓰러워 보이는지 볼 때마다 '옷 좀 사입어라', '얼굴에 뭐 좀 발라라', '제발 신발을 버려라' 등등 잔소리를 하신다. 명품을 좋아하는 친구들, 꾸미기 좋아하는 주변인들에 둘러쌓여 지내던 시절도 있었건만 그런 것에서는 그닥 관심이 가지는 않았다. 옷은 깨끗하게만 입으면 되고, 가방의 기본 기능은 ‘물건을 넣는다+들고 다닌다’ 일진데 여기에 수백, 수천만원의 지출을 할 필요가 있느냐며 한 때는 명품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약간 한심하게 보았던 치기 어린 시절도 있었으나 이제는 안다. 그저 사치의 정의에서 말하는 필요 이상의 돈이 나에게 없었을 뿐임을.


하지만 나에게 돈이 풍족하지 않음을 인정하는 것보다는 이러한 나의 생활을 근검절약으로 승화시키는 편이 정신건강에 이롭다. 그래서 스스로 '사치하지 않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뭔가 의식있는, 친환경적인 사람인 척하던 어느 날 남편과 연말정산을 하며 그 해 지출 대한 이런 저련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얼마나 근검절약하는 사람인지, 난 명품 가방 하나 없어도 행복한 사람임을 남편에게 주절주절 읍조리고 있는데 남편이 내가 쓴 카드내역들을 죽 보더니


너 1년 동안 책 천만원 훨씬 넘게 샀어...
이럴거면 명품 가방을 사지...

하하하하. 어색함을 무마하느라 일단 엄청 크게 웃었다. 근데 억지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딱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왜냐하면 그는 데미안을 모르는 남자니까. 그의 눈에 책을 천만원 사는 것과 천만원짜리 가방을 사는 것은 무슨 차이일까.


물론 해명(혹은 변명) 할 말은 많았다. 어떻게 책이랑 가방이랑 같냐고.

책의 장점이야 셀 수도 없거니와 일일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타공인 위인들이 입을 모아 '영혼의 양식'이라고 말하는 것 아니던가. 가방은 내 영혼을 풍요롭게 할 수 없지만 책은 내 영혼을 풍요롭게 해주었다. 가방은 내 생각의 경계를 무너뜨리지 못했지만 책은 그 단단한 경계를 유연하게 해주었다. 책이 품고 있는 가치는 금액으로 환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좋은 책들이 나에게 미쳤던 영향들에 대해서(즉 카드구매 내역에 대한 타당성에 대해) 항변할 수 있었지만 남편이 툭 뱉은 말은 나에게 물음표를 남겼다.


책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탐닉하고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는 행위와 명품가방을 통해 새로운 패션의 세계를 탐닉하고 외적 자기만족을 충족하는 행위가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엄청나게 달랐을까. 책으로 영혼의 갈증을 해소하려는 행위와 명품가방으로 자존감의 갈증을 해소하는 행위가 본질적으로 얼마나 큰 차이가 있었을까.


어떤 사람은 책 대신 명품으로 영혼이 풍요로워졌을 수도 있겠고 어떤 사람은 많은 책으로 더더욱 빈곤한 영혼이 될 수도 있다. 남편의 말 이후 난 타인의 사치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기로 했다.

저도 책 된장녀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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