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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우너 Mar 19. 2022

어쩌다 고양이

 가끔 어떤 표현의 어감 차이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보곤 한다. 한동안 떠올렸던 말은 '싫어한다 vs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한다 vs 싫어하지 않는다'이다. 예를 들어 '생선을 싫어한다'와 '생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은 비슷한 뜻 같지만 어감의 차이가 분명히 있다. 싫어한다는 말에는 부정적 감정에다 적극성이 더해지지만 좋아하지 않는다에는 적극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두 말의 차이를 보여주는 적당한 예시가 나에게는 고양이라는 존재였다. 난 강아지를 좋아하고 고양이는 좋아하지 않았다. 길을 가다가 꼬리 흔들며 주인을 따라가는 강아지를 보면 미소가 지어지는 반면 꼬리를 꼿꼿이 세우고 지나가는 고양이의 날카로운 눈동자는 낯설고 무서웠다. 그래서 이 나이 되도록 고양이를 만져본 적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책방 출근하려고 집을 나섰는데 집 앞에 눈도 못 뜬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비에 젖은 상자 안에서 힘껏 야옹거리고 있었다. 딸이 학교 다녀오면서 집 근처에 아기 고양이 있다고 하는 말을 며칠 전부터 들었으나 나와 상관없는 일이었으므로 그저 흘려들었는데 그 녀석을 직접 보고야 만 것이다. 작아도 너무 작았다. 비도 오는데 눈을 감고 허공을 향해 우는 고양이를 본 이상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상자를 들고 동물병원에 갔다. 병원에서는 별 달리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며 일단 드라이기로 고양이를 말려주었다. 난 고양이 분유를 사서 고양이와 함께 책방으로 출근했고 난 시간에 맞춰 고양이 분유를 먹이는 신세가 되었다. 처음 만져본 아기 고양이는 가볍고 부드럽고 따뜻했다. 고양이가 분유를 쪽쪽 빨아먹을 때 느껴지는 희열은 첫째 아기 젖먹일 때의 기억을 소환했다. 책방에 온 손님들은 너무 작아서 햄스터냐고 묻기도 했다.


그렇게 어쩌다 고양이의 보모가 되었고 난 고양이를 키워본 경험이 없는 데다 하루 종일 책방에 데리고 있을 수도 없어서 책방 손님 윤희 씨와 번갈아가면서 고양이를 돌보았다. 거기에 윤희 씨 동생까지 더해져서 3명이 번갈아 고양이, 분유와 젖병과 이불이 들어있는 종이상자를 이어받아가며 고양이를 돌보았다. 그리고 2주 정도 지났을까 아기 고양이는 드디어 눈을 떴다. 너무너무 예뻤다. 세상에 고양이 눈이 이렇게 예뻤다니. 하루에 고양이 얼굴 사진을 100장은 찍은 것 같다. 그리고 며칠 지나 고양이는 윤희 씨의 막냇동생 집으로 입양을 갔고 거기서 '행복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책방이 있는 동네는 오래된 주택가인 데다 지척에 허름한 시장이 있어서 그런지 길고양이들이 유독 많다. 고양이가 많다 해도 그들에게 큰 관심이 없다 보니 그놈이 그놈 같았는데 행복이 이후 매일 책방 앞을 지나가는 모든 고양이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하얀 털과 까만 털이 섞인 얼룩 고양이는 얼굴이 작고 예뻤고 온 몸이 하얀 고양이는 양쪽 눈 색깔이 다른 오드 아이였다. 꼬리가 유독 긴 노란 고양이도 있었고, 어딘가 아파 보이는 갈색 고양이도 있었다. 그리고 그 고양이들의 안부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배가 불러있는 고양이를 보면 시장 가서 국밥이라도 한 그릇 사주고 싶었고 시원한 커피라도 한 잔 주고 싶었다. 결국 난 고양이 분유에 이어 고양이 사료를 주문하고 말았다. 사료가 도착하고 플라스틱 그릇에 사료를 채워 책방 앞에 두었더니 동네 고양이들이 하나 둘 와서 밥을 먹기 시작했다. 고양이가 사료 먹는 게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사료 먹는 고양이 뒷모습, 오독오독 씹어 먹는 소리, 다음날 출근하면 싹 비워진 밥그릇을 보는 것은 내게 새로운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렇게 나는 어설픈 캣맘이 되었다. 책방 주변 어르신들은 자꾸 고양이 밥을 주면 여기저기 똥만 싸고 밤에 시끄럽다며 핀잔을 주시는 분들도 있는 반면, 밥그릇이 비었을 때는 캔으로 된 맛있는 특식과 사료, 고등어 등을 넣어주고 가는 분도 있다. 누가 맞고 누가 틀렸다 말할 수 없지만 어쨌든 인간이든 동물이든 배가 고프면 먹어야 한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니까. 게다가 고양이는 인간 독점의 도시에서 제 모습을 당당히 드러내며 4족 보행하는 거의 유일한 동물이 고양이니까 이 정도 대우는 괜찮지 않을까.


어쩌다 보니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서 '싫어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고 보면 좋아한다와 싫어한다의 경계는 늘 어떤 우연한 계기에서 허물어진다. 그리고 그 경계가 허물어지면 알게 된다. 별 거 아니었단 걸. 싫어함에서 좋아함으로 경계를 허무는 일들이 많아질수록 내 세계는 그만큼 확장된다. 우연히 만난 아기 고양이 덕분에 내 세계는 길고양이 수만큼 넓어지고 말았다냐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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