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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우너 Mar 06. 2022

식물을 키우며 배우는 것들

   식물을 잘 못 키우는 편이었다. 소위 말하는 '식물똥손'과 '식물킬러'에 가까웠다. 하지만 무슨 오기인지, 아니면 경작 본능인지 꽃집을 지나다 예쁜 식물을 보면 어김없이 마음이 움직여 이번에는 잘 키워보겠다 다짐하며 영화 <레옹>의 마틸다처럼 비장하게 화분을 안고 책방으로 온다. 공간에 초록 식물들이 가득한 요즘 유행하는 플랜테리어 스타일로 책방을 꾸며보겠다고 물도 잘 주고 나름 식물에 신경을 써보지만 한 해를 넘기기 힘들다. 선물 받거나 사온 식물들이 죽는 것을 보면 모종의 자책감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책방을 하면서 책에 신경쓰는 것 만큼이나 식물킬러를 벗어나기 위해 식물 관리에 여간 신경을 쓰는게 아니다.


  예전에는 식물을 사오면 대충 햇볕을 잘 쬐어주고 물만 잘 주면 잘 살거라고 생각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사람도 대충 밥만 먹고 잠만 잔다고 다 잘 크는 게 아니듯이 식물마다 각기 다른 요구 조건들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제는 식물을 데려오면 인터넷 검색부터 한다. 키우는 사람들이 블로그에 올린 글을 찬찬히 읽어보고 유튜브에서 영상들을 찾아본다. 그렇게 서너 개의 자료만 훑어봐도 그 식물을 키우고 있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얘기하는 맥락을 보며 식물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다. 햇볕을 좋아하는지, 물을 좋아하는지, 조심해야할 부분은 어떤 것인지 등등. 이렇게 찾아보면 식물마다 비슷해 보이면서도 제각각 존중해줘야 할 개성이 있다.


크게 음지를 좋아하는 식물과 양지를 좋아하는 식물, 물을 좋아하는 식물과 그렇지 않은 식물이 있다. 처음에는 해를 많이 보면 식물이 쑥쑥 클거 같아서 한여름 땡볕에 일부러 화분을 내놓았다가 예쁘게 키운 알로카시아 잎이 다 타들어간 적도 있다. 그리고 다시 산 알로카시아에는 물을 너무 자주 줘서 뿌리가 썩어버린 적도 있다. 이제는 알루카시아는 직사광선을 피해야한다는 것, 뿌리가 썩기 쉬우므로 물을 적당히 줘야하고 너무 큰 화분에 심는 것도 좋지 않다는 것, 그리고 통풍이 잘 되는 곳에서 키워야한다는 경험치가 생겼다. 선인장이나 다육이처럼 통통해보이는 식물들은 기본적으로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되는 것도.


꽃이 피는 시기도, 열매를 맺는 시기도 다 제각각이다. 그저 버린듯이 던져놓아도 쑥쑥 잘 크는 식물이 있고 애지중지 보살펴도 더딘 식물도 있다. 봄에 피는 식물도 있고 겨울에 피는 것도 있고, 꽃이 피는 식물인지도 몰랐다가 몇 년 만에 꽃을 보기도 한다. 책방 오픈할 때 선물 받았던 해피트리는 책방에 온지 4년만에 하얀 꽃이 피었다. 하지만 잘만 키우면 쉽게 열매를 맺을 줄 알았던 블루베리와 무화과는 몇 년 째 열매를 보지 못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에 대해서 동네 할머니들과 토론도 해보고 추천해주신 비책들을 적용해보며 시행착오를 겪는 중이다.


또 매우 중요한 포인트는 죽은 것처럼 보이는 식물도 부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죽은 것처럼 보일거야. 하지만 그게 아니야" 라는 <어린왕자>의 문장처럼. 죽은 줄 알고 책방 앞에 거의 버리다시피 내어둔 화분이 있었는데 봄이 되니 묵은 가지 사이에서 연두빛 새순이 뚫고 나올 때의 감동이란.

이럴땐 사골국이라도 끓여서 주고 싶은 마음이 된다. 그렇게 죽은 줄 알았던 화분은 지금은 나보다도 키가 더 커서 책방에서 키우는 화분 중에 가장 큰 화분이 되었다.

 

그리고 실내에서 식물을 키우면서 알게된 점 하나는 물조절 만큼이나 통풍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반려동물에게 산책이 중요한 것처럼 식물 역시 적절하게 바람을 쐬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렇게 바람을 쐬려면 화분을 밖으로 옮겨 자리를 이동시키는 수고가 필요하다. 그래서 좀 귀찮긴 하지만지 봄이 되면 매일 다른 종류의 화분들 책방 문밖에 내어 바람을 쐬어주고 있다. 기분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바람을 쐰 식물은 기분이 좋아보인다. 내가 수고로움을 기꺼이 자처하고 시간을 들인 화분은 점점더 애정이 간다. 모든 관계가 그렇듯이 말이다. 사랑은 감정의 결과로 시작되긴 하지만 사랑이 오래 지속되려면 이성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렇게 식물의 세계에 눈을 뜨면서 배우는 것은 비단 식물의 삶뿐만이 아니다. 식물을 건강하게 키우는 방법에 빗대어 내 삶을 건강하게 하는 방법을 더 많이 배워간다. 식물과 소통하는 시간동안 나도 그만큼 유연해지고 성장한다. 본질적으로 인간도 식물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밝고 외향적인 사람이 있는 반면 음지식물처럼 수줍음이 많고 어두움이 편안한 사람도 있다. 어릴 적에 재능을 꽃피우고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도 있지만 뒤늦게 꽃이 피는 사람도 있고, 꽃이 핀 자리에 열매를 맺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식물로 보자면 이는 옳고 그름, 성공과 실패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일어날 수도 있는 경우의 수일 뿐이다. 각자 자기에게 적당한 방식이 있고 때가 있다.


작년 겨울, 6년을 키운 해피트리가 잎을 다 떨구고 비실거렸다. 좀 아까웠지만 톱으로 윗가지들을 몽땅 잘라주었더니 얼마 전부터 잘린 가지 끝에서 새순이 샘솟듯 터져 나온다. 잘려나간 높이보다 더 크고 풍성하게. 그러고는 보기힘들다는 꽃까지 보여준다.

오래된 가지들은 정리해주면 훨씬 잘 자랄 수 있다는 것을 또 배웠다. 폭풍 성장하는 해피트리를 바라보며 내가 잘라내지 못한 내 안의 묵은 가지들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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