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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우너 Feb 27. 2022

나는 가끔 혼잣말을 해

남편은 자주 혼잣말을 한다. 컴퓨터를 하면서도, 운전을 하면서도, 집안을 돌아다니면서도 종종 혼잣말을 한다. 결혼 초에는 나에게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싶어서 '뭐라고?' 라며 대꾸하기도 했고 중얼거리지 좀 말라고 짜증을 내기도 했다. '그냥 조용히 생각해도 되는 것을 왜 저렇게 말로 하는 거지?' 처음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익숙해지다 못해 나에게 말을 할 때도 혼잣말인가 싶어서 대꾸도 안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 남편의 혼잣말 증상을 지켜보며 내가 간과했던 부분이 있었으니 바로 전염성이 있다는 것.

  

내게도 그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건 책방을 시작한 첫 해였다.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나의 손길이 필요한 두 아이는 아직 어렸고, 책방 운영도 했지만 밤에는 계약직으로 상담일까지 했었다. 홀로 공간을 구해서 뭔가를 하는 것이 처음이었으므로,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정신 하나로 시작했지만 처음 하는 경험들이 너무 낯설었다. 낯선 경험은 당연히 낯선 감정을 마주하게 했지만 이러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 나눌 사람은 없었다. 가족에게 하소연하자니 그러게 누가 시작하라고 그랬냐는 핀잔을 듣기 싫었고, 대구에는 밤에 술 한잔 하자고 불러낼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 멀리 있는 친구들에게 전화하자니 앞 뒤로 설명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고, 그렇다고 책방에 오는 손님들에게 말할 수도 없었다. 정작 나는 심리상담을 하러  다녔지만 내가 느낀 감정들을 소통할 곳이 없었다. 그렇게 모든 문제를 혼자 감당하고 혼자 풀어나가던 어느 날 책방에서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이 책들을 다 저기로 옮겨볼까?", "아... 애들 데리러 가야 하는데...", "저 사람은 왜 자꾸 저기에 주차하는 거야" 등등 별 것 아닌 시시콜콜한 생각들을 혼잣말로 내뱉고 있었다. 물론 욕도 좀 했다.

 

그때 남편이 하던 혼잣말들이 떠올랐다. 혼잣말을 영어로 talking to myself라고도 한다. 나와 말하는 것.

누군가와 얘기하고 싶은데 혼자일 때, 감당하기 버거운 무언가를 해결하고 싶은데 혼자일 때, 혼자서 해결하는 자구책. 머릿속이 압력밥솥의 증기처럼 점점 차오를 때 터지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압력을 조금씩 빼는 방법으로 그렇게 나도 혼잣말을 시작했다.


요즘도 여전히 남편은 남편대로, 나는 나대로 혼잣말을 한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밤새는 줄 모른다고 이제는 아이들이 나에게 엄마는 뭘 자꾸 중얼거리냐고 묻는다. 하지만 이제는 남편이 혼잣말을 시작할 때, 그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들어줄 마음의 여유가 생겼고 내가 혼잣말을 시작할 때 누군가에게 내가 먼저 다가가 나를 드러낼 용기도 생겼다. 얼마 전 신문의 신간코너에서 어떤 시집의 제목을 보고 눈물이 핑 돌았다. <너를 혼잣말로 두지 않을게>(박상수, 현대문학). 시집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나도 그 말을 되뇌었다. 너를 혼잣말로 두지 않겠다는 다짐을 너에게도, 나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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