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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우너 Feb 05. 2022

아줌마의 이름으로

평일에는 보통 오전 10시에 책방 문을 열고 주말인 토요일은 조금 늦은 11시에 문을 연다.

어느 날 취미 모임을 하는 분들이 토요일 오전 10시에 문을 열어줄 수 있냐는 전화를 받았다. 한 시간 일찍 나오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니 흔쾌히 그러겠노라고 답했다. 그렇게 약속한 토요일이 되었고, 그 약속을 흔쾌히 깜박하고 말았다. 평소처럼 11시까지 나갈 요량으로 늑장을 부리고 있었고 모임 예약한 분들은 책방 앞에 와서 9시 50분쯤 나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하필이면 내 핸드폰으로 아이가 게임을 하고 있어서 전화가 온 줄도 몰랐다. 10시 20분쯤 되어 핸드폰을 확인했다가 두 통의 부재중 전화와 문자를 보고 비명을 질렀다. 그때서야 10시 약속이 떠올랐다. 아뿔싸! 평소에 자주 깜박하는 스타일도 아닌데 이런 일이!


급하게 다시 전화를 걸어보니 그분들은 아직 책방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하셨다. 나는 총알처럼 책방으로 뛰어갔다. 그날 저녁 남편에게 농담으로 아침에 혹시 빛의 속도로 뛰어나가는 사람 봤냐고 물었더니 그런 사람은 못 봤지만 씻지도 않고 산발머리로 뛰어나가는 미친 여자를 한 명 보았다고 했다.


그렇게 책방 앞에 도착하니 50-60대로 보이는 여성 5분이 서 계셨다. 너무 죄송했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는 연신 너무너무 죄송하다고 했고 그분들은 화난 얼굴이 아니라 온화한 얼굴로 날 맞아주셨다. 그리고 한분이 웃으며 말씀하셨다.


우린 아줌마라 다 이해해요.


이 말이 가슴속에 훅 하고 들어왔다. 일단 엄청 멋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종교적 느낌을 가미하면 "아줌마의 이름으로 너의 죄를 사하노라." 같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아줌마라서 다 이해한다는 건 뭘까. 아줌마가 무엇이길래.

국어사전에서 아줌마를 찾아보면 명사 아주머니를 낮추어 이르는 말이고 아주머니는 애를 낳은 여자(애엄마)의 어원이란다. 결국 그분들의 말에 함축된 것들을 길게 풀어보면 이럴 것이다.


 '우린 애 낳은 여자들이라 어지간한 일들은 다 이해해. 인간이 겪는 고통 중에 최고라는 출산의 고통도 여러 번 겪어봤고 아이들을 키우는 과정에서 걱정으로 밤을 새우던 날, 눈물 흘리던 시간 다 지내봤어. 어디 속 썩이는 게 아이뿐이었니. 남편과 싸우는 시간들도 많았고 시댁 식구들 눈치도 보고... 그래도 아이들 잘 키워보려고 많은 것들을 이해하며 살아왔기에 이 정도 일은 아무것도 아니지, 이런 건 쉽게 이해해줄 수 있어. 그러니 괜찮아.'


내가 그동안 인정하기 싫었던 그 말. 아줌마.

내 입으로 말하기 쑥스럽지만 30대까지만 해도 동안이란 말을 많이 들었다. 다들 그저 듣기 좋으라고 해준 말을 내가 진심으로 착각한 걸 수도 있지만 화장도 안 하고 옷도 늘 캐쥬얼하게 입으니 아가씨같다는 말을 종종 들어서 내심 자부심 같은게 있었다. 그런데 마흔이 넘으면서부터 어딜 가나 '어이, 아줌마~! 라는 호칭을 듣게 되었고, 외부에서 학생들 상담하는 일이 있어서 고등학생들 교실에 들어서면 애들이 "누구 엄마에요?" 라고 묻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호칭이 낯설고 서운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남편에게 사람들이 이제 나보고 아줌마라고 불러...나보고 아줌마래!!!! 라고 흥분했더니 남편은 "아줌마한테 아줌마라고 부르는게 어때서?" 라고 반문하기에 버럭 화를 낸 적이 있었다. 같은 여자이면서, 바로 내가 당사자이면서도 거리를 두고 싶었던 이름, 아줌마.


우리사회에서는 아줌마라는 말이 갖고 있는 특유의 맥락이 있다. 세상에는 세 가지 성, 즉 남성, 여성, 그리고 아줌마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어떤 조건으로 뭉뚱그려진 집단. 그 집단의 가입조건은 부정적인 것들이다. 여자이지만 소위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여성스러운의 느낌은 없다. 예쁘고 아름다운 모습과도 거리가 멀다. 뱃살도 좀 있고 후덕한 몸매에, 짧은 파마머리, 체면을 차리지 않고 부끄러움을 잘 모르고 사사로운 이득 앞에서 집요한 모습, 지적인 느낌도 없고 목소리도 크고 특히 웃을 때는 엄청 크게 웃는..... 이 모든 요소를 조합한 인간상이 바로 아줌마의 분위기다. 그래서 나역시 아줌마라고 불리는 것이 부끄러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부정적인 맥락을 뒤집어서 보면, 세상이 말하는 미의 기준, 성의 이분법, 사회적 시선 따위는 하찮으니 가볍게 즈려밟는 초월적 인간이 '아줌마'인 것이다. 그리고 나는 어느 토요일 아침, 책방 앞에서 아줌마들에게 내 죄를 용서받았다. 그리고 그분들의 은혜로 진정한 아줌마로 거듭났다. 누구든 용서를 행하는 자가 신의 권한을 부여받는게 아닐까. 나도 언젠가 이 멋진 죄사함의 말을, 절체절명의 순간에 있는 누군가에게 해보고 싶다. 아줌마의 이름으로 너의 죄를 사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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