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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el Apr 06. 2023

돈을 또 내라고?

고객님~ 추가비용을 지불하셔야 합니다.  

최근 인쇄작업을 할 일이 있어 

인터넷으로 인쇄소를 검색했다. 


수화기 너머 생글생글하고 친절한 

젊은 여사장님의 목소리에 

검색해 놓은 다른 곳들에 더는 전화하지 않고 

그곳과 바로 작업을 하기로 했다.

      

우선 디자인 작업비로 5만 원을 선입금했다. 

내가 만들어놓은 디자인 시안을 보내고 

세세한 사항을 맞춰 가기로 했다.     


디자인 시안작업을 주고받으며

새삼 나는 나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돈을 주고 요청하는 일인데도 

혹시라도 상대가 불편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말에 더 신경을 쓰고 있었다. 

자동반사적으로.     


그냥 여기 이 부분 이거 이거 해주세요. 

라고 하면될 것을      

혹시 이것도 가능할까요?

혹시 이렇게도 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아, 돼요? 감사합니다!      


받은 메일에 바로 답을 못할 땐 

혹시 기다리실까 봐 문자 남겨요~ 

내일 오전에 전화드릴게요 하고 문자를 남겼다.

 

말투만 보면 누가 사장이고 누가 고객인지 

헷갈릴 정도이다. 


하...      

잘하는 줄 알았다 내가. 

상대가 누구든 이런 게 좋은 배려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런 걸 따질 새도 없이 

이렇게 작동해 버린다. 

‘나’라는 사람은.    

 

누구에게 무언가 지시를 쉽게 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시하는 것이 참 어려운 사람도 있다. 

그게 바로 나다.      


원하는 것을 솔직하게 다 말해본 적이 있었을까?

그냥 굳이 그러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에게 맞춰져도 별 상관이 없었다.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그 마음에는 

나를 좋은 사람으로 봐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고

자라며 보고 배워 몸과 마음에 배인 것도 있었을 것이다. 

기질적으로 그러한 사람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인가 내가 원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나에겐 참 어렵다.     


남편이나 아이들에게도 지시보다는 권유 

혹은 요청의 형태로 이야기하는 것이 

더 편하다.      


어쩔 수 없이 부탁해야 할 땐 

“진짜 미안한데~” 

하고 미사여구를 붙여 미안함을 덜어낸다.      


디자인 시안작업을 하는 도중에 

그동안 진행된 것이 생각보다 예쁘지 않아 

좀 바꾸어 보고 싶어졌다.


큰 틀은 그대로지만 폰트와 색깔, 이미지를 변경하고  

몇 가지 수정사항이 생겼다. 

자잘하고 간단한 일이라 생각했다. 


전화를 걸어 수정사항을 요청하니 

사장님은 친절한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이건 다시 작업하는 거라 

추가비용이 발생해야 해요.      


에? 추가비용?!

약간의 수정이라고 생각했지 추가비용이

발생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적잖이 당황한 나는 

아.. 아... 그래요? 하고

떨떠름하게 대답하고는 수화기를 들고 있었다.      


사장님은 거기에 한마디 덧붙였다. 

입금하셔야 진행됩니다. ^^    

 

결국 추가비용 3만 원을 더 입금했다. 

사장님의 말투는 계속 친절했지만

그 속에서 원하는 것을 

당당하게 요구하고 있었다.      


너무도 당연했다. 

일한 만큼의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

내가 못하고 어려운 바로 그 부분.     


그러면서 깨달았다. 

아, 때로는 배려의 말로 친절함을 다하는 것보다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입금’이라는 행위가 

상대가 원하는 친절함일 수 있겠구나.      


추가 요금이라는 말에 

처음에는 살짝 황당한 느낌이 들었다가 

아, 수업료를 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가 

흠... 내가 지금 내가 배워야 할 부분이 바로 이것이구나 

하는 생각으로 흘러 마무리되었다.      


나에게 일어나는 일은 

지금 내가 배워야 하는 무엇인가가 있어서 

내 앞에 펼쳐진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 배워야 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을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다.

바로 그 인쇄소 사장님처럼.   

   

3만 원을 입금하고 나니

나의 과한 친절함도 조금 줄어들었고 

나 역시 내가 원하는 사항을 

조금 더 상세하게 그리고 

조금 더 담담하게 요청할 수 있었다.      


그래, 

추가 요금 내길 잘했다!

또 하나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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