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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el Apr 21. 2023

삶이 이끄는 대로...

그것이 무엇이든, 나는 yes!

지난 토요일,

남편이 시험이 있어 춘천에 가야 했다.

남편을 기다리는 두 시간 동안

아이들을 데리고 박물관에 가 시간을 보낼 계획이었다.  


금요일 오후,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주말에 우리가 별일 없으면

아이들 보러 강릉에 내려오신다고 하셨다.


우리 일정을 이야기하자,

아빠가 춘천으로 오시겠다고 하셨다.

춘천에서 아이들과 박물관에 함께 갔다가

저녁 먹고 같이 강릉에 내려가자고 하셨다.


엄마 없이 혼자 지내시는 아빠를

멀리 있다는 핑계로 잘 챙겨드리지 못해

마음 한 구석에 늘 미안함이 있었는데

마침 아빠가 내려오신다고 하니

다행이고 반가웠다.


아빠는 아이들 보러 강릉에 오실 때,

항상 제일 좋은 과일을 사 오신다.

이번엔 낙지도 사 오시겠다고 했다.  


아침에 안산에서 출발하여

가락시장에 들러 장을 보고 춘천까지 왔다가

저녁에 또 강릉까지 운전해야 하는

아빠의 거리가 만만치 않게 느껴졌다.


"아빠, 우리 그냥 집에 있을까?

집으로 오실래? "


"아냐~ 나도 꼬마들이랑 박물관도 가고

춘천 갔으니 닭갈비도 먹고 바람 쐬지 뭐~

운전하는 거 하나도 안 힘들어~ "


"알았어. 그럼 춘천에서 봐요!"


아빠와 춘천에서 보기로 했지만

아무래도 아빠의 이동거리가 너무 멀단 생각에

차라리 숙소를 하나 잡을까 하고는

아이들 재우고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에어비엔비에서 마음에 드는 숙소를 찾고는

결제를 하려는데 처음 해보는 에어비엔비

절차가 왜 그리 까다로운지...


신분증을 올리라 하고,

얼굴사진도 찍어 인증하라 하고,

이것저것 한참 하다가 자정이 넘어버렸다.  

화면에는 계속 확인 중이란 메시지만 떠있었다.

 

결국 예약 확인을 못하고 잠이 들었다.  


토요일 새벽,

둘째가 심상치 않은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아차 싶었다.


오늘이 토요일이니 오전에 병원을 들러 약을 받아야

일요일을 그나마 넘길 수 있겠다는

직감이 들었다.


일어나자마자

둘째를 데리고 이비인후과에 갔다.

늦지 않으려 오픈시간에 맞추어 갔는데

뜨헉, 오늘 휴진! 아.. 하필 오늘..


부랴부랴 집으로 가서 차를 끌로 시내로 나갔다.

병원에는 앉을 틈도 없이 사람이 가득했고

간호사는 2시간 정도 걸릴 거라고 했다.


시험이 시작이 2시이니   

늦어도 11시 반에는 출발해야 하는데

시계는 벌써 11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그냥 집에 있을까.

약국에서 기침약을 사서 나갈까.  


다행히도 가까스로 진료를 보고는

늦지 않게 출발할 수 있었다.

숙소를 다시 생각할 겨를도 없이

우리는 춘천에 도착했고

곧 아빠를 만났다.


춘천박물관에는 어린이 박물관도 있는데

매회 인원제한이 있어 미리예매를 해야 했다.


정말 운이 좋게도 현장발권 가능티켓이 딱 1장 남아있었고  

그건 그야말로 우리 아빠를 위한 자리였다.

아이들도 할아버지와 함께여서 더 신이났고  

아빠도 아이들 덕분에 많이 웃으셨다.


저녁으로 그 유명한 통나무집 닭갈비를 먹었고

꼬마들은 강릉까지 할아버지 차를 타겠다고 했다.

덕분에 조용해진 우리 차 안에서 나는

정신 없이 지나간 하루를 되돌아볼 수 있었다.


문득,

내일 아침 아빠 밑반찬을 좀 만들어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곤 이내 깨달았다.

삶이 나에게 기회를 주었다는 것을.

아빠와 함께 웃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

아이들이 할아버지와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

아빠에게 콧바람 쐬어드릴 수 있는 기회.

아이들과 신나게 웃는 시간을 선사할 수 있는 기회.

아빠에게 반찬을 만들어 드릴 수 있는 기회.


그냥,

삶이 펼쳐지는 대로 yes 했을 뿐인데

나는 이 모든 기회를 다 잡았다.  


너무나 다행히도,

에어비엔비 예약이 잘 진행되지 않았고

아침에 병원에 가느라 1박 짐을 꾸릴 시간이 없었다.  


덕분에

동치미와 무김치, 배추김치, 멸치볶음, 오징어,

메추리 장조림, 골뱅이무침, 누룽지, 김을

큰 상자 하나 가득 채워 차에 실어드릴 수 있었다.   


삶이 내 앞에 펼쳐지는대로 두었을 뿐인데

삶은 내가 미처보지 못한 더 큰 것을 내 앞에

가져다 놓았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오늘,   

시부모님이 오신다.


삶은 나를 또 어디로 이끌고 있는 것일까?

그것이 무엇이든,

이번에도 나는 당연히 yes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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