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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el May 09. 2023

아이의 자존감이 높으면 바지에 똥을 싸도...

자랑을 한다. 엄마가.

8년간의 육아를 되돌아보니 참 감사하게도

아이들에게 크고 작은 선물들 수시로 받아왔다.


삐뚤빼뚤 그리듯 써 내려간 한 줄짜리 사랑고백 편지와

공룡, 로봇, 피카추 순으로 진화를 거듭하는 작품들.

그중에서도 가장 감격스럽고 기억에 남는 선물은,

똥!이다.


똥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

그러게나 말이다.

가장 감격스럽고 반가운 선물이 똥이라니

내가 쓰고도 우습긴 한다.^^

하지만 한 번도 아니고 무려 세 번이나 된다.

최근에도 받았다. 이 선물을. ^^


몇 주 전,

초 1학년 지안이가 아데노바이러스로 한참 고생을 했다.

그 덕에 부비동염이 심해졌고 결국 항생제를 먹기 시작했다.

문제는 항생제의 가장 흔한 부작용인 설사가 시작된 것이다.  


아침에 밥을 먹던 지안이가

"엄마, 나 이상해. 응가한 거 같아."

"응?!!"


식탁에 앉아있던 지안이는 응가를 참고 말고 할 새도 없이

물똥을 쌌고 나는 지안이를 고대로 들고 욕실로 옮겼다.


씻고 새 바지를 갈아입고서도 지안이는 시무룩했다.

"엄마, 나 오늘 학교에서도 이러면 어떻게 해?

나 학교 가기 싫어~ "


"그러게... "

학교라고 똥이 나오지 말란 법이 있나.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었다.


"지안아, 엄마가 바지랑 팬티를 가방에 넣어줄게.

혹시라도 학교에서 또 그러면 화장실 가서 갈아입어~"


"힝.. 알겠어"


그렇게 지안이는 학교에 갔고

눈앞의 나의 하루를 보내느라 바빴던 나는

아침의 일을 까맣게 잊고 지나갔다.


그날 오후,

담임선생님께 이런 문자가 왔다.


"지안이 어머님, 오늘 지안이가 스스로 바지를

갈아입고 했습니다. 중간에 잠시만요 하고선

비닐봉지를 들고나가더니 하고 왔어요.

나갈 때 한 친구가 자기를 봤다고 속상해했는데

그 친구가 미안하다고 사과했고요.

오늘도 씩씩하게 잘하고 갔답니다. "


"아침에 갑자기 설사를 해서 챙겨갔어요.

아마도 약 때문이지 싶어요.

그래도 대견하게 스스로 잘 해결했네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러니까요. 말도 하지 않고

혼자 다 해결하고 왔었어요. 당분간

여벌옷 준비해 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


적잖이 당황했을 텐데 혼자 뒤처리도 하고

맘도 힘들었을 지안이를 생각하니

찡하고 안쓰러웠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온 지안이는 다행히 (?)

별다른 기색이 없었다.  


"지안아, 아까 선생님께 문자 받았는데...

오늘 학교에서 바지 갈아입었어? "


그제야 생각이 난 듯 지안이는 이야기를 꺼냈다.  


"아니~ 수업하고 있는데 똥이 또 나왔지 뭐야.

그래서 내가 손들고 아! 잠깐잠깐! 하고

가방에서 봉지 꺼내서 화장실에 갔지."


"와.. 그래서? 혼자 다했어 지안이가? "


"응~ 근데 학교엔 왜 엄마가 없는 거야!

아휴~ 나 힘들게~ "


"근데, 지안아, 너 대단하다!

바지에 응가하고 스스로 처리하는 1학년

거의 없을걸?  지안이 진짜 잘한 거야.

대견하다. 우리 지안이 또 한 번 성공했네! "


"응? 무슨 성공?

문제가 생겼을 때

스스로 해결하는 거!"


"오늘 지안이가 한 게 바로 그거야.

진짜 어려운 건데 지안이가 해냈어!

엄마는 지안이가 너무 자랑스럽다. "

(토닥토닥)


엄마가 없어 힘들었을 텐데

칭찬을 받으니 기분이 좋았는지

징징대던 말투는 물러가고  

얼굴에 슬쩍 미소가 번진다.


"근데 엄마,

나 화장실 갈 때 친구가 자기도 화장실 간다고

따라왔는데 내가 문을 닫았는데도 자꾸

밑으로 보는 거야. 하지 말라고 해도 계속해~

그래서 내가 선생님한테 일렀어.

그래서 걔가 사과했어. "


"그래? 문을 닫았는데도?

음. 그건 아니지~

그래도 지안이가 선생님께 잘 말씀드렸네. "


"지안아, 그 부분도 훌륭한데?

친구한테 화가 나서 싸우거나 할 수도 있었는데

선생님께 말씀드려서 사과를 받았네.

오늘 엄마 지안이한테 여러 번 놀랜다."


"이야~ 지안이 학교생활 엄마는  

걱정이 하나도 안 된다. ^^"


"근데 엄마,

친구들이 자꾸 그 검은 봉지 뭐냐고 물어봐. "


"....."


어차피 똥 싼 바지를 담을 거라 종이봉투가 아닌

검은 비닐에 넣어줬더니 1학년 친구들은 그 속이

꽤나 궁금했던가보다.


저녁을 먹고 그 문제의 검은 봉지를 열어보았다.

지안이의 곤욕과 당황스러움이 고스란히 들어있었다.


팬티는 도저히 복구가 불가능한 상태.

고대로 싸서 쓰리게통에 넣었다.

그리고 바지에 조금 묻은 얼룩을 비벼 빨았다.


지안이와 지내다 보면

스치는 말 한마디에, 별거 아닌 행동하나에

자존감이 참 높은 아이구나 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느낀다.


어린 시절의 나의 모습을 더듬어 보기도,  

어떻게 이렇게 멋진 아이로 자랐을까   

되짚어 보기도 한다.


해준 것 이라고는

수시로 사랑한다, 고맙다, 미안하다, 한 것 밖에..


시어머니께 전화가 왔다.

이 대견한 이야기를 얼른 전하고 싶지만

지안이에게 먼저 무언의 허락을 받는다.


"어머, 할머니가 전화하셨네.

엄마 우리 지안이 자랑 좀 해야겠다~"

이렇게 말하고 지안이를 한번처다본다.


문제해결능력 +1을 장착한 뿌듯함에

지안이는 얘기하지 말라거나 싫다는 표현을 하지 않았다.

나는 지안이가 듣는 앞에서 자랑스럽게 통화를 했고

할머니의 폭풍 칭찬도 전해주었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

지안이의 기억 속에 입학하자마자 바지에 똥을 쌌던 기억은

희미하게 사라지거나 있어도 스스로를 대견해했던

기분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어머!! 오빠~ 얼른 와바!!

똥이야 똥!!

드디어 똥이야!~

우리 지안이 똥 쌌어!!

어흑.. 고마워 지안아.. 진짜진자 고마워!!!"


두어 살 무렵,

장염으로 입원 중이던 지안이는

일주일 넘게 이어진 설사로

기저귀찬 엉덩이가 다 헐고 힘들어하다가

극적으로 일반 변을 보았는데

그날이 마침 크리스마스 아침이었다.


남편과 나는 입원실에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똥을 받고는  

감격에 겨워 얼싸안고 기뻐했다.


잘 먹고 잘 싸기만 해도 고맙고 예쁜 아이들.

이 아이들에게 나는 지금 최선인가.

오늘도 나를 되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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