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꾸고 싶지 않을 끔찍한 꿈을 꾸었다. 어딘지 모르겠는 장소에 남편과 큰아이와 함께 있었다. 우리가 있던 건물 밖에는 큰 강처럼 보이는 깊은 물이 있었다. 여느 때처럼 아이는 장난을 치며 문밖으로 뛰어나갔다. 밖으로 나간 아이는 한동안 보이지 않았다. 순간 두려움이 저 밑바닥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려는데 나는 애써 모른 체했다.
날은 궂어지고 아이는 계속 보이지 않았다. 아이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어느 문을 열었는데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는 뒷모습이 보였다. 곳곳에서 하나둘 곡소리가 터져 나왔다. 직감적으로 아이들이 물에서 건져 올려지고 있다는 걸 알았다.
설마 설마 하면서 그곳으로 걸어가는데 내 아이의 민트색 잠바가 보였다. 순간 나는 짐승같이 두꺼운 악 소리를 내며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포효했다. 잠바 위에 우리 큰 아이가 맨살을 드러내고 엎드려 있었다. 아이는 눈도 뜨지 못하고 몸을 뒤틀며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그리고는 실낱같이 가녀린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미안해요. ”
억장이 무너졌다. 아니야 아니야! 절규를 하다가 잠에서 깼다. 눈물은 흥건하고 심장은 벌렁벌렁한데 눈을 뜨니 평화롭고 조용한 새벽으로 갑자기 장면이 바뀌었다.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남편도 곤히 잠들어있었다. 순간 너무나도 비현실적이게 평화로운 내 눈앞이 낯설었다.
눈물을 닦고 멍하게 큰아이를 바라보았다. 걷어 차낸 이불을 끌어와 덮어주고는 살짝 뺨에 입을 맞추었다. 며칠 전 피곤하다고 아이에게 쉬이 짜증을 냈던 일이 너무 미안하게 밀려들어 왔다. 눈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곤히 자고 있는 아이가 눈물나게 고마웠다. 오늘은 내가 너를 다시 얻은 날. 이말 밖에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아, 감사합니다. 나는 왜 이런 꿈을 꾸었을까. 그것은 정말 꿈이었을까. 혹시, 지금 여기가 꿈은 아닐까.
평화로운 여름, 새벽에 또 다시 스르르 눈이 떠졌다. 온 사방을 굴러다니며 자는 둘째가 웬일로 나와 나란히 누워있었다. 보통은 아침에 눈을 뜨면 아이의 발바닥이나 엉덩이가 먼저 보이는데 오늘은 달덩이 같은 아이의 얼굴이 나를 마주하고 있었다. 부스스 깬 눈으로 코앞에 와있는 둘째를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꿈이 었을까. 순간 찰나의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사실 나는 지금 아이 둘을 이미 장성하게 다 키워낸 노모이다. 내가 있는 곳이 언제인지 어디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너무 평화롭고 무료한 나머지 나는 아주아주 오래 전 아이들을 키우며 함께 울고 웃던 때가 문득 그리워졌다. 나는 그때로 잠깐 다시 가보고 싶어졌다. 둘째가 여섯 살이던 어느 여름날을 골라 그 시점에서 눈을 뜨기로 했다. 그리고 오늘, 지금 여기에서 눈을 떴다.
내가 그토록 보고 싶어하던 그 여섯 살 둘째가 지금 내 눈앞에 있다. 잠을 자는 아이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한참을 찬찬히 들여다보다가 보드라운 볼에 살짝 입을 맞춰본다. 포동한 손도 살며시 쥐어 보고 머리와 등도 차례대로 쓰다듬는다. 정말 꿈만 같다. 이토록 생생하게 다시 널 보고 만질 수 있다니! 너의 여섯 살을 함께 누리는 행복이 다시 내게 주어지다니! 아주 오랫동안 멀리 여행을 떠났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온 듯 나는 지금 내 눈앞의 모든 것이 새롭다.
기억도 나지 않는 후회 할 일들을 더는 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 하루 사랑 가득한 시선으로 너를 바라보고 더 많이 눈을 맞추며 더 많이 안아줄 것이다. 네가 무슨 말을 하든지 귀담아 들을 것이다. 온전히 너의 존재에 집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