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요가를 다닌지 반년이 넘어가고 있다. 한동안은 아침에 아이들을 보내고 동네를 한바퀴 돌았었는데 근력을 키워볼 요량으로 요가를 시작했다. 여러차례 인터넷 검색을 하고서 한 요가원에 등록을 했다.
허름한 건물 2층에 위치한 그곳은 위치도, 장소도, 선생님도 뭔가 ‘세련’ 보다는 '투박함'에 가까웠다. 나는 그런 요가원이 이상하게도 첫날부터 마음에 쏙 들었다. 멋스럽게 깔끔하고 세련된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다른 요가원들보다 뭔가 마음이 편안했기 때문이다.
수업은 오전반, 저녁반으로 하루에 두 타임이 진행된다. 오전반은 수강생이 나를 포함해 다섯명이다. 선생님은 회원이 안모여 돈이 안 된다고 넋두리 하시지만 나는 사실 지금이 딱 좋다. 몇 명 안되다 보니 선생님이 자세를 잘 봐주시기도 하고 자리도 널찍하다.
70이 넘으신 어머니부터, 중고등 학생을 둔 엄마들 까지, 나는 그곳에서 인생도 요가도 한참 후배이고 막내였다. 일주일에 서너 번씩 얼굴 보며 운동하다 보니 어느정도 라포가 형성되었다.
막내 벌이지만 몸이 가장 뻣뻣한 나는 쉬운 동작도 안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얼마전에도 그런 동작이 하나 나와 본의 아니게 모두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그 쉬운 동작이 안되는 나도 웃겼고 나머지 분들도 엥? 이게 안된다고? 신기해 하며 화기애애하게 웃고 지나갔다.
며칠 전, 그날도 어김없이 아이들을 보내고 헐레벌떡 요가원으로 뛰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못 보던 사람이 내 자리에 앉아있었다. 선생님이 그토록 바라던 오랜만의 신입회원이었다.
정해진 자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회원들은 늘 모두 같은 자리에 앉는다. 암묵적으로 그 자리가 자신의 자리인 것이다.
요가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어느 날 이었다. 일찍 온김에 앞쪽에 앉아볼까 하고 별생각 없이 맨 앞에 매트를 깔았는데, “거긴 주인이 있어요~” 라는 선생님의 말에 살짝 민망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알았다 암묵적으로 다들 자기 자리가 있다는 것을. 그 이후로 나는 앞에 자리가 비어도 굳이 앞으로 나가 앉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 내 자리에 신입회원이 떡하니 앉아있었다. 내 자리는 맨 앞자리도 아니긴 하지만 매일 내가 앉던 자리이다. 수업 직전에 도착한 나는 얼른 그 옆 구석 자리에 매트를 깔았고 바로 수업이 시작되었다.
구석이라 거울도 잘 보이지 않고 바닥도 차가웠다. 살짝 당황한 마음을 추스를 새도 없이 두 번째 마음 상하는 일이 벌어졌다.
선생님은 한 동작, 한 동작 구령을 붙이시다가 신입회원을 보며 말했다. “자, 이제 재밌는 걸 보게 될 거예요!” 라고 말하는 거였다. 기존회원들은 분위기를 읽고 키득키득했고 나는 설마설마 했다.
헉.....
그렇다,
그 설마가 사람을 잡았다.
나만 안 되는 바로 그 동작.
재미있다는 것은 바로 나를 두고 이야기한 이야기였다.
그 동작이 시작되었고 스토리를 아는 기존 회원들은 여느 때처럼 거울을 보며 킥킥 웃었다. 나는 점점 얼굴이 굳어졌다.
평소 같았으면 “와, 다들 이게 어떻게 되는 거야?”하며 넉살스런 한 마디를 하고 함께 웃었겠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전혀 웃기지도 웃을 기분도 아니었다. 그냥 기분이 팍 상했다.
선생님은 내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신입회원 곁에 붙어서 자세를 잡아 주느라 온통 신경을 그쪽으로 쏟았다. 다행인 것은 그곳이 요가원이었다는 것이다.
호흡을 하는 아주 짧은 순간에 나는 계속해서 화를 내기로 할 것인가 아닌가를 결정할 틈을 보았다.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생각해보았다. 나 지금 왜 기분이 상한 거지? 저 장난은 선생님이 매일 하던 것인데, 나도 매일 함께 웃던 것인데 왜 오늘은 화가 나는 거지? 나는 그 짧은 순간에 무의식적으로 화를 내는 대신 탐구하기 시작했다.
내가 기분이 상한 것은 배려받지 못한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시작 전에, 선생님이, 미엘씨, 오늘은 새로운 회원이 와서 그런데, 미안하지만 자리를 조금 옮겨서 앉아야겠어요, 라고 한마디만 해줬더라면?
모르는 사람 앞에서 나에게 동의도 구하지 않고 나를 웃음소재로 삼는 그런 장난을 치지 않았더라면? 선생님의 세심하지 못한 투박스러운 행동이 오늘따라 무척 아쉬웠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가르치는 공부방 아이들이 오버 랩 되었다.
가끔 새로운 학생이 오면 기존 아이들은 덩달아 눈이 초롱초롱해진다. 함께 긴장하는 아이들부터, “선생님, 오늘은 말투가 왜 이렇게 친절해요?” 하고 핵심을 꼬집는 아이까지.
선생님은 매번 새로 온 아이에게 그날의 온 신경을 집중하지만, 그동안 기존 아이들의 마음은 헤아려 볼 틈이 없었다. 새로 온 아이가 얼마나 낯설까, 긴장될까, 배려했지만, 생각해보니 새로운 아이와 함께 생활하는 기존 아이들의 입장은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아, 우리 아이들이 새로운 친구가 왔을 때 나처럼 이런 느낌이었겠구나. 혹시, 내가 나도 모르게 기존 아이들을 서운하게 했던 건 없었을까? 대행인지 불행인지 그와 관련해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공부방의 내 모습을 생각하니 요가 선생님의 처지도 이해가 갔다. 신입회원이 와서 서먹한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어 볼 요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 뭐 그럴 수도 있지. 상황을 보는 내 시선이 아까보다 한 뼘 더 너그러워졌다.
그리고는 곧이어 우리 큰 아이가 떠올랐다.
그동안은 요가원에서 내가 제일 막내였고 초보였다. 선생님은 다른 사람들 동작도 봐주었지만 나에게 자주 와서 자세를 잡아 주셨었다.
헌데 오늘은 구석으로 몰린 나에겐 오지도 않고 오롯이 신입회원에게만 집중했다. 그 모습에서 또 내가 보였다.
아, 우리 큰아이도 이런 느낌이었을까?
그동안은 줄 곳 자신의 자리였는데 가장 따뜻한 자리를 동생에게 빼앗겨 버린 느낌, 우리 아이도 이걸 느꼈을까? 엄마의 관심이 동생에게로 옮겨 갔던 걸 혹시, 우리 큰아이도 느꼈을까?
엄마든 선생님이든 주는 입장에선 더 도움이 필요한 쪽에 관심과 시선이 쏠리기 마련인데, 받는 입장에선, 특히나 덜 받는다고 느끼는 처지가 되어보니 그 마음이 참 서운하기 그지없었다.
마흔이 넘은나에게도 이런 감정이 서운하고 힘들게 다가오는데, 여덟살 꼬마에게는 그 서운함이 얼마나 더 컸을까? 그래서 그렇게 동생에게 심퉁을 부리고 그랬나 보다. 동생앞에선 유독 목소리가 날카로워지는 큰애의 말투와 행동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큰아이의 행동을 지적하기 전에 그 마음을 먼저 헤아려 줬더라면 참 좋았을 것을. 나 역시 세심 보다는 투박에 가까운 엄마였다.
그날 오후, 집에 들어서는 큰아이를 보자마자 와락 부둥켜안았다. 그리고 간식을 내어주며 오늘 요가원에서 있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