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속도를 찾기 위하여
항상 날씨가 좋기만 할 것 같은 캘리포니아에도 겨울에 왔다. 올해가 미국에서의 맞이하는 두 번째 겨울이다. 작년 겨울에도 3-4월까지는 비가 자주 오고 흐렸던 기억이 있어서 올 겨울을 맞이하는 자세가 남달랐다. 훨씬 더 추운 유럽에 비하면 이 정도 추위는 아무것도 아닐 테지만 상대적 박탈감이 들었다. 아무리 기분이 좋지 않더라도 바로 문을 열고 쨍한 햇빛 샤워를 몇 분 하고 나면 쾌활해지던 캘리포니아의 평범한 날들과 달리, 겨울이 오면 그 햇빛 샤워를 받을 기회가 줄어든다. 날씨가 이렇게 중요한 것이었나.
날씨가 추워지면서 나를 괴롭히던 질문 한 가지가 있다.
나 왜 글을 쓸까?
어린아이들을 돌보는 일상을 살아가는 것도 바쁜데 왜 굳이 어렵게 시간을 내서 글을 쓰려고 하는 것일까 하는 질문이 들었다. 그건 시간 내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 탓도 있었다. 겨울 들어 남편의 장기 출장이 잦았고, 아이 둘이 돌아가며 아프고, 영어공부에 매진해야 한다는 마음의 부담감이 있었다. 남편이 출장 가면 더 일찍 일어나고, 더 늦게 잠에 들어야 했다. 아이들이 아프면 새벽까지도 잠을 자지 못할 때가 많았다. 게다가 영어 공부를 할 시간도 모자라는데 한국어로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사치로 느껴졌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왜 굳이 시간을 투자해 가며 글을 써야 하는 걸까?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도 없는 글쓰기와 나는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내 핸드폰 용량이 부족하다는 알람을 받았다. 매일 영어 1분 스피치 영상을 찍다 보니 저장 용량이 부족한 건가 싶었다. 내 핸드폰 속에 가장 용량 차지를 많이 하는 앱을 확인해 봤더니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이었다. 생각해 보니 나는 글을 쓸 시간은 없다고 하면서 일상 틈틈이 짧은 영상과 사진들을 소비해 온 것이다. 그러면서 나도 인스타그램에 릴스를 만들고, 업로드하면서 똑같이 그 소비와 생산의 굴레에 참여하고 있었다. 한번 추천된 릴스를 클릭하면 어느 순간 내 소중한 시간들이 사라져 버리는 경험을 했다. 그 시간 동안 머릿속에 남은 무언가가 있으면 좋으련만 그러지도 못했다. 짧은 자극들은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보다는 시간이 흘러버렸다는 자괴감, 나는 이 영상과 사진 속 사람들처럼 멋지지 못하다는 자책감을 들게 만들었다.
이걸 깨닫고 난 후 나는 인스타그램 와 유튜브를 핸드폰에서 삭제했다. 그리고 브런치 앱을 핸드폰 첫 화면 오른쪽 엄지손가락 근처로 옮겼다. 가장 내 손이 빨리 닿을 수 있는 곳이다. 짧은 호흡의 영상들이 내 일상을 갉아먹게 내버려 두기보다는 내 호흡의 속도를 다시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브런치는 사진이나 영상이 아니라 글이 중심인 플랫폼이다. 또한 정보성 글보다는 자신을 돌아보는 에세이 형식의 글이 많다. 이런 콘텐츠를 소비하다 보면 나 역시 내 생각을 정리하고 싶다는 욕구가 든다.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대단한 성과를 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냥 내가 침대를 정리하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는 것처럼 일상적인 일일지도 모른다. 누구에게 어떤 칭찬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내가 내 하루를 반짝이게 만드는 루틴이 글쓰기이다.
그리고 1월부터는 주원님이 운영하는 '글요리 코칭톡'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주원님의 미션에 따라 매일 글을 쓰고 글동부들과 그것을 공유하는 프로그램이다. 주원님은 매일 짧게라도 글을 쓰는 습관이 중요하다고 하셨다.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고, 기록을 통찰로, 그리고 이것을 공유함으로써 서로의 세계를 더 확장해 줄 것이다. 내가 앞으로 쓰는 글이 어떤 대단한 업적을 남길 것은 아니지만, 쓰는 행위로 인해 내 하루하루가 조금 더 윤기 난다면 나는 그것으로 내가 글 쓰는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브런치라는 플랫폼, 주원님의 글요리 코칭톡, 그리고 이런 넋두리 같은 글을 읽어주는 독자분들이 내 글쓰기 여정의 동반자가 되어주길 바란다. 나는 내 동반자를 스스로 선택하고 내 속도대로 천천히 여행하고 싶다.
* 올 겨울, 냉장고에 붙어있는 일정표는 아이들의 해열제 먹은 기록들로 채워져 버렸다. 급해서 아무 데나 잡히는 대로 펜을 들어 기록하다 보니 이렇게 돼 버렸다. 내 하루를 잠식해 버린 시간들... 이제 내 삶의 기록도 남길 차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