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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마 Feb 15. 2024

아이 둘을 키워도 행복합니다.

애둘맘 불쌍하지 않아요


#1. 잠 못 들던 밤

어젯밤 나는 쉽게 잠에 들지 못했다. 인스타그램을 삭제했음에도 각종 정보를 얻기 위해 가끔 피씨로 접속하는 것까지 피하지는 못했다. 잠깐 들어간 인스타그램에서 또 기분 나쁜 자극을 받기 시작했다. 나는 왜 이렇게 못나게 사는 걸까, 자신감이 없는 걸까,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는걸까. 나는 자꾸 작아지고 작아졌다. 그렇게 쇼파에 웅크려서 발끝이 차가워지고, 손끝이 파래지는 것도 모른채 어둠 속에서 핸드폰 불빛만 쳐다보고 있었다.


자정이 좀 넘었을 때였다. 갑자기 둘째 방에서 울음 소리가 들렸다. 앵앵, 처음에는 울음 소리가 작았다가 그 끝이 길어지는 걸 보니 스스로 다시 잠들 긴 틀린 것 같았다. 차가워진 몸을 이끌고 둘째 방으로 들어갔다. 어둠 속에서 아이는 목 놓아 울고 있었다. 나는 아이에게 '엄마야, 엄마 여깄어'라고 목소리를 내어주었다. 그랬더니 아이는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누워 잠에 들었다.


내가 뭐라고 아이는 내 목소리 만으로 그렇게 바로 안심하는 걸까. 언제 울었냐는 듯이 편안하게 잠든 아이를 보며 나는 가슴이 뜨거워졌다. 나는 아이의 따뜻한 발을 살며시 만지작 거렸다. 내가 이렇게 누군가에게 존재만으로도 충분한 사람이라니. 작아졌던 나 자신은 아이 옆에서 조금씩 다시 커지는 것 같았다. 그래, 나는 다른 누구와 비교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나는 내 존재만으로도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다. 나는 아이의 체온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2. 토요일은 엄마랑 자는 날

둘째는 태어나자마자 바로 분리 수면을 했지만, 첫째는 그러질 못했다. 동생이 생기고 나서야 수면 독립을 연습했다. 이제는 7살 형아가 돼서 혼자서도 곧잘 잔다. 하지만 토요일은 특별한 날이다. 일주일에 한번 토요일은 내가 아들과 함께 자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아들은 토요일만 되면 엄마랑 같이 잘 수 있다고 행복해 한다.


지난 주말에는 내가 감기가 심하게 걸려서 토요일이었지만 아들과 함께 자지 못했다. 다음날 남편이 말하길, 아들은 자기 전에 갑자기 목 놓아 울었다고 한다. 엄마가 보고 싶다며 엉엉 울다가 잠들었단다. 이제는 엄마가 읽어주는 책 보다는 혼자 마음껏 킥킥대며 보는 책이 더 좋고, 엄마가 준 선물 보다는 학교 친구들이 준 장난감이 더 소중해진 아들이지만 이럴 때 보면 아직 아이같다.


학교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 리스트를 만들어 온 것에도 제일 위에 '1번 나의 엄마'라고 가장 크게 쓰는 나의 영원한 첫사랑 아들. 내가 아픈 것 보다, 아들이 나와 함께 자지 못해 울었다는 것에 더 마음이 아픈 걸 보면 나는 아무래도 평생 마음놓고 아프지도 못할 것 같다.


#3. 아이 둘을 키워도 행복합니다.

아이가 둘이라고 하면 힘들겠다는 말을 주변에서 많이 한다. 아이 하나 키우기도 힘든데 둘이면 얼마나 힘드냐고, 엄마가 희생을 많이 해야 해서 힘들겠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정말로 이것이 전혀 희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선택 때문에 아이들의 생명이 잉태된 것이고, 그렇다면 나는 이 아이들에게 책임을 다하는 것이 당연하다. 오히려 주변에서 힘들겠다고 하면 그 시선이 오히려 나를 힘들게 할 때가 있다. 육아에 희생, 고통, 힘듦의 프레임을 씌워 엄마를 그 안에 가두는 것이 오히려 폭력임을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나는 내 인생에서 최고의 것을 누리고 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이것이 보잘 것 없는 행복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함부로 남의 행복을 판단하지는 말아 달라. 아이를 키우는 것은 분명 내 살을 깍아내는 일일 수 있지만 그 삶에 힘듦만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내가 나 일 수 있도록 매번 새롭게 깨닫게 해주는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둘이라 행복하다. 아이 둘을 키워도 나는 여전히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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