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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마 Apr 29. 2024

나 미국에 더 살면 안 될까?

미국에 온 지 2년이 다 되어간다. 내비게이션을 켜지 않고도 5분 걸리는 마트, 학교, 스타벅스를 갈 수 있게 되자 나도 이제 여기에 익숙해졌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는 차 사고라도 날까 봐 아주 조심스럽게 운전했고 아는 길임에도 내비게이션을 꼭 켰었다. 그런데 이제는 커다란 카니발을 몰고 아이 둘을 태워 돌아다니는 게 익숙해 진걸 보면 그만큼 시간이 많이 흘렀구나 싶다.


그럼에도 집 안에 있으면 내가 미국에 있는 건지, 인도에 있는 건지, 한국에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아이와 함께 하는 일상은 배경만 바뀔 뿐 내가 어느 나라에 있는지에 따라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주택에 살다 보니 현관문만 열면 바로 길가가 보여서 두꺼운 흰색 암막 커튼을 치고 살았다. 커튼을 내리고 어린아이와 함께 집에 있으면 그곳은 한국과도 같았다. 핸드폰에서는 한국 지인들의 카톡과 메시지가 가득했고, 집에는 한국 동요가 흘러나왔다. 그러다가 가끔 여유가 생겨서 커튼을 열고 창밖을 바라보면 바람에 살랑거리는 야자수 나무가 보였다. 그러면 나는 그제야 내가 미국에 있구나 했다.


창 밖이 궁금한 작년 여름, 아기의 뒷모습  


저기 멀리 야자수가 보이시나요 :)


작년 겨울, 우리 집에서 가장 크게 변한 것은 창 문에 창살무늬 시트지를 붙인 것이다. 추운 겨울에는 햇빛 한 줌도 중요한데 커튼을 닫고 있으니 햇빛이 몽땅 차단되어서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낮에 따뜻한 햇빛을 더 받기 위해 커튼을 열려고 했는데 사생활 보호가 되지 않을 것 같으니 반투명한 시트지를 사서 붙였다. 반은 가려지고 반은 보이는 창살무늬는 심리적으로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혹시 길에 사람이 지나가더라도 시선이 마주치지 않아서 편했고 따뜻한 햇살을 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 아기와 나는 대낮에 커튼을 활짝 열고 침대 매트리스를 가지고 와서 같이 뒹굴며 시간을 종종 보냈다.


커튼을 열면서 내 마음도 달라진 듯했다. 2년 뒤면 당연히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는데, 우연하게 미국에 있는 기간이 1년 더 연장되었다. 1년이 더 남아있다고 생각하자 커튼 밖 세상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그리고 내가 혹시 미국에 더 오래 살 수 있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길,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문을 열 수 있지도 않을까.



미국은 참 신기한 곳이다. 이렇게 보수적이고 겁이 많은 나도 새로운 시작을 서슴없이 생각하게 만든다. 이방인이 모여 서로의 시작을 북돋아 주는 분위기에 취해서 나도 모르게 엉뚱한 상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생각하는 것들이 비현실적이고 위험할 수도 있다. 내가 미국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언어가 가장 문제이고, 그 외 비자와 경제적인 문제, 아이들의 학업 등 많은 것들이 걸려있다.


"나 미국에서 더 살면 안 될까?" 남편은 나의 고민을 흔히 주재원 부인들이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부리는 욕심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미국에 오기 직전에 주변 회사 선배들이 미국에 가서 최악의 경우는 아내와 자식들만 미국에 남고 남편만 한국에 와서 기러기 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했단다. 그런 경우를 종종 보아온 남편 선배들은 부인이 미국에 남고 싶어 하는 마음을 경계하라고 했나 보다.


이 마음은 자주 쓰는 검지 손가락 끝에 박힌 가시 같았다. 작은 가시가 내 살점을 파고 들어서 시시때때로 일상을 괴롭혔다. 설겆이 할 때마다 손끝이 벌개지고, 물티슈가 닿아도 화끈거렸다. 마음에 없던 욕심이 생기니 괜히 잘 지내오던 일상도 초라해 보였다. 다른 사람의 새로운 시작이 부럽고, 따라 해야 하나 싶은 마음이 생겼다. 점점 못생겨져 가는 손가락을 보며 이러면 안 되겠다 싶었다. 나는 미래에 대한 걱정을 더 접어두기로 했다.


가시를 뽑아냈더니 손에 상처가 생겨 있었다. 거기에 밴드를 붙여준 건 사랑스러운 아이들이다. 낮에 한 시간씩 아이를 키즈클럽에 맡기고 운동하는 YMCA 도 멤버십을 취소해 버렸다. 조용하게 낮에는 아이를 돌보는 것에만 최선을 다하고, 새벽과 밤 영어공부와 글을 쓰는 일상을 계속 지내보려고 한다. 먼 미래를 바라보며 현재를 괴롭게 사느니, 열린 미래를 그대로 두고 나는 현재를 더 집중해서 살아가야겠다. 내 눈 앞에 있는 아이들을 더 많이 안아주고 더 같이 부대끼며 놀자.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퍼즐이 맞춰지고 선명하게 그림이 보이는 날이 분명히 올 것이다.




심란한 마음으로 지내던  어느 날, 지인분이 가져다 주신 달력. 딱, 지금처럼만이라는 말이 내 마음에 콕! 박혀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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