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갓 마흔이 되었을 무렵, 나도 이제 마흔이라며 주변에 앓는 소리를 했었다. 사실은 마흔이라는 사실에 그다지 감정이 요동치지도, 노화를 실감하지도 않았으면서 말이다. 마음속으로는 '나는 아직 늙어가는 느낌은 없는데?'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나는 좀 노화가 늦게 오려나 싶기도 했다. 별스럽게 관리를 하지 않는 것에 비해 눈 밑 주름도 눈에 띄게 늘지 않았고, 흰머리도 거의 없었으니까.
요즘 느끼고 있다. 이제 느껴진다. 그것도 몇 달 사이에 확연히.
늙고 있다. 늘고 있다.
흰 머리카락이 늘고 있다.
머리카락이 가장 눈에 띄는 변화다. 흰 머리카락이 자라고 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정수리에는 흰 머리카락이 거의 없었는데, 흰 머리카락을 찾으려면 귀 뒤쪽 머리카락들을 요리조리 넘겨야 겨우 한 두 개 발견할 수 있었는데. 거울을 보면 정수리에 뾰족하게 솟아있는 흰 머리카락들이 그렇게 눈에 거슬린다. 흰 머리카락들은 어쩜 그렇게 하나같이 힘이 세서 뾰족 솟아 눈에 띄는 것인지.
몇 해 전 작은언니가 흰 머리카락이 너무 많다고 정기적으로 뿌염을 하며 고민을 할 때가 있었다. 사실 공감하지 못했다. '흰 머리카락이 뭐 어때서. 나면 나는 거고 안 나면 안 나는 거지 뭘.'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지금은 대수롭다. 많이 대수롭다. 수많은 검은 머리카락 속에서도 과하게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는 기다랗게 자란 흰 머리카락 몇 가닥이, 마치 관리라고는 하지 않는 삶에 지친 여성을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말이다. 너무 과하게 해석하는 건가 싶긴 하지만, 요 근래 들어 그만큼 내가 흰 머리카락에 과몰입 중이다. 육아휴직 급여로 살아가고 있는 요즘, 미용실에 가서 뿌염을 하는 것은 내게 사치인데 말이다. 돈 생각 하지 않고 마음껏 뿌염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좀 나으려나.
제주에 오기 전 다니던 아파트 상가 미용실 원장님이 흰 머리카락이 나면 절대 뽑지 말고 자르라고 하셨던 게 생각났다. 남편에게 잘라달라고 부탁해 본다. 흰 머리카락만 자르기 어렵다고 투덜거린다. 그래도 요리조리 흰 머리카락만 솎아서 잘 잘라준다. 밖에 나갈 일이 있을 때면 안테나처럼 빳빳하게 솟아 있는 흰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고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럴 때 하필 남편과 냉전 중이면 내가 잘라야 한다. 아. 힘들다. 눈을 치켜뜨고 잘라본다. 결국 흰 머리카락 한 개와 검은 머리카락 서너 개가 함께 잘려 나간다.
주름이 늘고 있다.
한숨이 나온다. 몇 달 사이에 주름도 눈에 띄게 늘었다. 특히 이마주름과 팔자주름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아무래도 이마 주름이 흰 머리카락을 체크하는 활동과도 깊은 연관이 있는 것 같다. 눈을 한껏 치켜올려 흰 눈으로 머리카락을 열성적으로 체크하던 중 번득 이마 주름이 눈에 들어온다. 아. 절망적이다. 이렇게 자글거리다니. 자글자글이 정말 딱 맞다. 이젠 앞머리를 기를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팔십까지 앞머리를 내려야 하나. 힙하기는 하겠다. 그런데 주름을 가리려고 애써 내린 앞머리가 힙할 수 있을까. 그건 아무래도 장담 못하겠다. 여든이 되어서까지 그런 이유로 앞머리를 내리고 싶지는 않기도 하다.
입꼬리는 또 왜 이리 쳐지는 건지. 혼자서 거울을 보며 미소를 지어본다. 한참을 미소 짓다가 풀었다가를 반복한다. 거울을 다시 본다. 아 이럴 수가. 웃는 연습을 반복했더니 팔자주름이 짙어졌다. 입꼬리를 선택할 것인가, 팔자주름을 선택할 것인가. 둘 다 포기가 안 되는데. 그럼 결국 보톡스가 답인 건가.
발의 각질이 늘고 있다.
피부가 건성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건성피부였다. 뽀송뽀송 탱탱할 때는 건성이 좋았다. 피부미인 소리도 여러 번 들었다. 그 흔한 기름종이 한번 써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나이 드니 건성이 별로다. 건조하다. 특히 발, 발이 많이 건조해진다. 결혼 전 바지런히 샌들을 신고 다니던 시절, 그다지 발 뒤꿈치 관리를 하지 않아도 각질이 생기지 않았다. 지금은 아니다. 조금만 관리를 소홀히 하면 이불에 발이 스칠 때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들릴 지경이다. 발 관리를 위해 바셀린 로션을 듬뿍 바르고 양말을 신곤 하는데, 어쩌다 바셀린 로션을 깜빡한 날에는 어김없이 양말이 뱅글뱅글 돌아가 양말의 발 뒤꿈치 부분이 까꿍하고 나와 아이컨택을 시도한다. 내 기억 속에 엄마의 양말은 늘 돌아가 있었다. 그때는 당연히 발목 고무줄이 늘어나서 돌아간 건 줄로만 알았었는데. 아니었다. 이제야 알았다.
얼굴에 그늘이 늘고 있다.
눈밑이 움푹 파인다. 볼도 움푹 파이면서 광대가 도드라진다. 눈 밑과 광대 아래에 시원하고 광활한 그늘이 생긴다. 사진을 찍으면 더 과하게 도드라진다. 음영효과가 극대화된다. 이십 대 초반 오동통한 얼굴살이 그리워진다. 사진 속 움푹 파인 얼굴을 보니 투턱이 그리워질 지경이다. 얼굴 살을 찌우려 밥을 많이 먹다가는 허벅지살부터 통통해 질게 분명한데. 정말 보톡스가 답인 건가.
수모자국과 수경자국이 사라지는데 걸리는 시간이 늘고 있다.
수영장을 오래 다녔다. 유일하게 자신 있는 스포츠가 수영이다. 대학교를 입학하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직접 번 돈으로 수영장을 줄곧 다녔다. 그때 시작한 것이 결혼 전까지 이어졌다. 물론 결혼하자마자 그만두게 되었지만. 20대에는 수경자국, 수모자국은 생각지도 못했다. 30대에도 잘 느끼지 못했다. 아, 30대에는 수영장에 잘 못 갔었구나. (나는 도대체 30대에 무얼 하며 보낸 거지.) 아이를 키우느라 정신없이 살다가 30대 후반부터 다시 수영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수영을 다 마친 후에 수경을 벗었는데도 나는 한동안 안경을 쓰고 있어야만 했다. 이마의 짙은 주름 하나는 덤이었다. 그 후로 약속이 있는 날에는 수경에 물이 들어오지 않게 압을 채우느라 수경을 꾹 누르는 행동은 삼가한다. 차라리 물이 좀 들어오게 내버려 두는 쪽을 선택한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안경을 낀 채로 약속장소에 나가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질문이 늘고 있다.
이제 막 노화를 피부로 느끼고 있어서인지 아직은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자꾸 보게 되고 신경 쓰게 된다. 한 때 남다른 미모로 두각을 나타내던 사람도 아니었는데, 어찌해도 돌아오지 않는 탱탱한 이마를 향한 그리움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워하며 남편에게 물어본다. '나 많이 늙었어?' 남편은 진지한 나와는 달리 핸드폰 액정을 보며 건성건성 대충 대답한다. "아니" 눈치 없던 삼식씨는 큰 발전을 이루었다. 발빠르게 원하는 대답을 해주어야 의미없는 대화를 빨리 끝 낼 수 있다는것을 터득한 모양이다. 큰아이에게 물어본다. "엄마 이마 주름 많아?" "응 좀 많아" 작은아이에게도 물어본다. 과하게 솔직한 아이들이다. 작은아이가 엄마는 손바닥도 쭈굴쭈굴하다며, 물어보지도 않은 대답까지 몹시 친절하게 얘기해준다. 아. '쭈글쭈글'은 듣고 싶지 않았는데.
늙어서 좋은 것은 뭘까 한 번 떠올려 본다.
타인에 대한 이해가 늘고 있다.
이해가 느는 것이 늙는 것과 상관관계가 있으려나. 타인에 대한 이해는 나이 드는 것보다는,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일들과 책을 읽으며 생각하는 시간이 쌓이면서 늘어가는 것 같기도 하다. '아, 그래서 그랬던 거구나. 아, 그럴 수 있겠구나,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생각하는 순간이 늘고 있다.
결혼을 하기 전, 아니 아이를 낳기 전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아이를 낳기 전 타인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누군가와 크게 부딪히기보다는 큰 소리 나지 않게 잘 섞여 지내는 편이었는데, 이해해서라기보다는 그저 다툼이 싫었고 맞추는 것이 편했던 모양이다. 가족처럼 아주 친한 친구 몇 명을 제외하고는 주변 사람들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모두가 다 아는 사내연애 소식, 이혼소식, 각종 가십들을 가장 늦게 알아차리는 스타일이었다. 욕할 일도 이해할 일도 공감할 일도 없었다. 그게 편했다. 그냥 가볍게 깔깔거리며 농담하는 게 제일 편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내고 다양한 일을 겪으면서 책을 가까이하게 됐다. 이해의 폭이 점점 넓어지는 걸 느낀다. 예전과 같이 다른 사람의 사생활에 대해 수군거리거나 과하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은 여전하지만, 지금은 예전처럼 귀찮아서라기보다는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은 그들이 나에게 속마음을 꺼내 보인다면 두 팔 벌려 마주 보고 공감할 수있을 것도 같다.
나를 이해하는 순간이 늘고 있다.
나의 감정을 잘 모른 체 살아왔다. 회피했다기보다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생각 없이 해맑게 살았다. 내 마음을 알아차려야 할 만큼 화가 나는 순간도, 특별한 사건도 없이 그저 순탄하게 살아오기도 했다. 철 없이 살았다. 그래서일까. 예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늘 따뜻했던 엄마와 가족들이 막연히 떠오르긴 하지만 내가 어땠었지, 내 감정은 뭐였지를 떠올려 보면 생각나는 게 거의 없다. 다만 예전의 내 감정을 지금의 내가 헤아릴 수는 있게 됐다.
지금은 내 감정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었다. 내 마음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 늘고 있다. 내가 어떤 때에 화가 나는지, 어떤 때에 행복을 느끼는지, 내 감정을 조금은알아차릴 수 있다. 화가 날 때는 어떻게 해야 화가 가라앉는지에 대해서도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는 기억하는 것도 많아졌다. 물론 좋은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안 좋은 기억이 올라올 때면 철 없이 살던 예전이 가끔 그립기도 하지만. 그래도 둘 중 하나 선택하라면 나에 대해 이해하는 지금이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