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사이의 이스라엘

by Dancing with Pen

‘이스라엘은 영원히 여호와의 구원을 받아 수치나 부끄러움을 당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이사야 45:17)


구약성경의 예언과 달리, 오늘날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에서 종종 거센 비난의 대상이 된다. 특히 팔레스타인 문제를 둘러싼 갈등에서 이스라엘은 약자보다 강자이고, 피해자보다 가해자로서 묘사되곤 한다. 이러한 네러티브 속에서 이스라엘은 수천 년 동안 원주민이었던 팔레스타인 민족의 영토를 빼앗은 제국주의 국가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팔레스타인 독립을 위한 무장투쟁이 계속되고 폭탄테러의 굉음이 끊이질 않는 나라.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등 아랍국가와 4차례 전쟁(1948, 1956, 1967, 1973)을 벌인 유대국가. 국가안보를 위해 필요하다면 비밀공작, 폭격 등을 결단하는 군사강국. 언론이 주조한 대중의 인식에 자리 잡은 이스라엘의 이미지이다.



내가 이스라엘에 가지고 있던 상(像)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22년 여름 텔 아비브(Tel Aviv)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나는 안전을 걱정했다. 벤 구리온 공항에 무사히 착륙하고서야 어느 때보다 더 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5일 동안 이스라엘의 동서남북을 횡단하고 종단하며 내가 지녔던 허상은 무너져내렸다.



로마의 정치가 키케로(Marcus Tulius Cicero)는 “전쟁과 평화의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다(inter bellum et pacem nihil est medium).”는 말을 남겼다. 이 말은 약 1,500년 후 전쟁과 평화를 법의 지배 아래 두고자 했던 근대 국제법의 아버지 그로티우스(Hugo Grotius)가 인용하며 다시 널리 알려졌다. 이스라엘은 전쟁의 세계에 있는가 아니면 평화의 세계에 있는가?



이스라엘이 수도로 주장하는 예루살렘은 크게 동예루살렘과 서예루살렘으로 구분할 수 있다. 동예루살렘에는 여러 종교의 공통 성지(聖地)인 구시가지(Old City)가 성벽으로 둘러싸인 땅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올드시티는 4개의 서로 다른 종교가 관리하는 구역으로 사분할된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아르메니아정교. 미로처럼 뻗은 골목을 걷다가 보면 기독교 구역에 있다가 어느 순간 이슬람교 구역을 지나고 있다.



올드시티 안에는 예수께서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셨던 터,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곳, 사흘 만에 부활하신 장소 등이 보존되어 있다. 아시아에서 온 순례자는 십자가 앞에서 무릎 꿇고 손으로 한 구절씩 짚어가며 성경을 읊었다. 아프리카인 부부는 갓난아이를 성전 앞에 누이고 기도를 올렸다. 어린 시절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으나 스스로를 파문하고 광야를 미친개처럼 헐떡거리며 쏘다녔던 나는 깊은 생각에 사로잡혔다. 저들은 무엇을 위해 저렇게 정성스럽게 신을 모시는 걸까.



중동의 뜨겁고 긴 태양이 달과 별에 서서히 자리를 내주며 황혼이 찾아왔다. 이윽고 해는 통곡의 벽 뒤로 넘어갔고 어둠이 찾아왔다. 예루살렘의 밤은 완전히 다른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선선한 바람이 땀을 식혔다. 시끌벅적했던 길거리에는 고요함이 덮였다. 그렇게 올드시티의 일상은 또 하루를 버티며 저물었다.



예루살렘 외에도 여러 곳을 찾았다. 남쪽 네게브 사막을 가로질렀고 북쪽 골란고원에서 시리아 땅을 내려보기도 했다. 서쪽 끝에서는 가자지구 접경지역에 이르렀다. 길이 40km, 폭 6~12km, 총면적 약 365㎢. 철조망과 장벽으로 둘러싸인 길게 뻗은 땅에 200만이 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하마스가 최근까지 4천발이 넘는 미사일을 쏘면 이스라엘이 아이언돔으로 방어하는 대표적 분쟁지역이 가자지구이다. 그럼에도 광활한 황토빛 들판 배경 속 녹아든 가자지구와 그 주변은 이상할 정도로 평온해 보였다. 어느 전문가의 설명에 따르면, 하마스가 미사일을 발사하고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보복 공습할 때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서로 사전에 통보한다고 한다. 포탄과 총알을 주고받는 그곳에도 나름의 규칙이 존재하고 있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구석구석 살펴본 이스라엘은 전쟁과 평화 중간의 어딘가에 있었다. 장구한 세월을 거치며 퇴적된 관습과 지혜가 예루살렘 올드시티 내 충돌을 억제하고 공존을 모색하는 길로 이끌고 있었다. 벽과 문으로 구획된 성벽 안에서 그들은 여전히 똑같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예루살렘은 히브리어로 ‘신의 터전’을 의미하고 ‘신’은 곧 ‘평화’를 뜻하기도 한다. 예루살렘. 썩 괜찮은 이름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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