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노매드랜드>(2020)는 남편과 삶의 터전을 잃고 미국 서부를 떠돌아다니며 사는 중년의 여성 펀의 삶을 그리고 있다. 영화는 아마존 물류창고에서 일하는 펀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펀은 쏟아지는 택배를 포장하고 분류하여 컨베이어벨트에 올려놓는다. 택배와 펀의 삶은 닮았다. 택배가 트럭에 실려 전국으로 배송되는 것처럼 펀은 밴을 타고 미국 서부 곳곳을 떠돌아다니며 삶을 이어간다.
펀은 결혼 후 남편과 광산 지역에 정착했다. 그러나 폐광과 사별이 겹치면서 유랑의 삶에 들어섰다. 하지만 펀은 자신을 Homeless라고 부르지 않는다. 펀은 Home과 House는 다르다며 자신은 House가 없는 것일 뿐 Home이 없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Home이 마음의 안식을 줄 수 있는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의 집이라면 House는 물리적 실체로서의 집이다.
펀의 Home은 그녀의 밴(van), Vanguard이다. Vanguard는 우리말로 전위대 혹은 선봉으로 번역된다. 혁명 또는 전쟁 등에서 맨 앞에 서서 전투를 벌이는 존재이다. 노매드로서 펀의 삶은 하나의 혁명이자 전투이다. 본래 인간은 떠돌아다니는 동물이었다. 그러다 농경사회로 진입하며 정주의 삶이 시작되었고 입을 것(衣)과 먹을 것(食)에 더해 머물 곳(住)이 삶의 필수적 요소가 되었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머물 곳이 상품화, 자산화되어 거주지의 원시적 의미가 퇴색되었다. 이런 점에서 노매드의 삶은 태고의 인간생활로 돌아가고자 하는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에서 유목은 주기적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시간과 공간이 함께 이동한다. 아마존 물류창고를 시작으로 캠핑장, 주유소, 사막, 산, 식당을 돌아 다시 아마존 물류창고로 여행이 이어지고 반복된다. 먹거리를 찾아 계절에 따라 장소를 옮기는 유목민의 삶처럼 펀은 먹고 살기 위해 일자리를 찾아 때가 되면 여행길에 오른다.
그런데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펀의 유목은 사람 사이를 오가는 것이기도 하다. 스웽키, 린다, 데이브, 밥 등을 만나 우정, 사랑, 꿈, 아픔 등을 키우고 나누어 간다. 만남이 있으면 곧 이별도 있다. 헤어짐은 새로운 인연의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굳이 불교의 오랜 가르침인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返)을 들먹이지도 않아도 누구나 자연스레 인생의 순리로 깨닫게 된다.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인간관계의 한 고리에서 다른 고리로 끊임없이 오간다. 우리는 모두 인간관계 속 유목민이다.
펀이 여행 중 만난 또 다른 노매드, 데이브는 손자가 태어나자 정착을 결심한다. 펀은 데이브에게 친구 이상의 감정을 느꼈다. 외로움에 사무치던 펀은 결국 데이브의 집을 찾아간다. 펀은 오랜만에 추수감사절 식탁에 둘러앉아 가족끼리 식사하는 풍경의 일부가 된다. 그러나 안락한 침대 위에서 불편함을 느낀 펀은 도망치듯 집에서 나와 자신의 밴으로 돌아간다.
누군가는 외로움과 고독을 다음과 같이 구분한다. 외로움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나타나지만, 고독은 자신과의 관계에서 일어난다. 그래서 누군가를 만나서 외로움은 달랠 수 있지만, 고독은 자신을 만나야지만 겨우 사라진다. 그런데 외로움과 고독은 헷갈리기 쉽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고독을 이겨내기 위해 관계에 의존해버리고 만다. 펀이 그토록 강인해 보이는 이유는 고독에 정면으로 부딪치고 견뎌내기 때문이다. 펀의 진정한 강인함은 떠돌이 생활 중 직면하는 고난을 극복하는 장면이 아니라 그녀가 타인과의 동거와 동행을 거부한 채 홀로 유목하며 고독을 직면하고 자신을 찾아가는 모습에서 느낄 수 있다.
새해가 밝고 펀은 아마존 물류창고 아르바이트를 시작으로 유목의 한 주기를 다시 시작한다. 스웽키는 자신의 꿈을 이루고 더욱 먼 유목의 길을 떠났다. 노매드들은 모닥불에 둘러앉아 불 속에 돌을 던지며 스웽키를 추모한다. 밥은 일찍 세상을 떠난 아들을 그리워하며 유목의 삶에 들어섰다고 고백한다. 이 여행길의 끝에 언젠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믿는다며 “다시 만나자(See you down the road)”는 노매드들의 인사를 건넨다.
펀은 남편과의 추억이 깃든 옛집을 찾는다. 수북이 쌓인 먼지가 흘러버린 세월의 흔적을 말해준다. 지난날을 돌이키며 펀은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곧 눈물을 닦고 집을 나선다. 그리고 다시 광야 속으로 걸어간다. 그렇게 삶은 이어지고 유목은 계속된다. 그녀의 여행은 외로울지언정 결코 고독하지 않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