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대기와 돌담길
이 곳 제주는,
우리 동네를 둘러싸고있는 이 길은,
온통 돌담길이다.
얼기설기 얼레털레 쌓아올린 돌틈 사이로 바람이 숭숭 지나가고,
맑게 해가 비치는 날에는 반짝반짝하고 낮에도 별이 보이는 듯 하고,
비가 쏟아지는 날에는 미처 피하지 못한 작은 벌레 친구들이 한 숨 돌리기도 하는 곳이
제주의 돌담이다.
제주의 이 돌담길 문화는 나에게는 꽤나 낭만적으로 다가왔다.
스무살 때 처음 제주로 내려오면서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학교 수업이 없던 어느날
큰 맘 먹고 버스를 타고 외곽지로 나섰던 적이 있었다.
투박하게 주욱 이어지는 돌담길을 보면서
그때, 돌담길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문득 한 적이 있었다.
겉으로 보았을 때는 고급스럽고 대단해 보이지 않지만,
태풍과 비바람을 이겨내고 흔들림없이 한결같은 돌담처럼.
어디하나 흠맞는데 없이 굴러다니는 돌을 쌓아올린 것 같지만,
나중에 완성해서 보았을 때는 작은 그 돌 하나 빠질 수 없이 촘촘히 아귀가 맞는 것처럼.
제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하디 흔한 길이지만,
그 모든 길이 제주를 이어주고, 제주를 설명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된 것처럼.
소소하지만 무게감있고 대충사는 듯하지만 자세히보면 성실하게 인생을 살아가고있는
돌담같은 사람이 되고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어느 덧 시간이 흘러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내 등에 업고 선선한 어느날에 자장자장 엄마의 혼잣말같은 노랫소리를 들려주며
우리 동네를 감싸고있는 이 돌담길을 또 걷다보면
등에 업은 아이와 함께 앞으로 가야할 길이 막막해지면서도 또 먹먹해진다.
처음 아이를 업고 길을 걸었을 때가 아이가 6개월이 될 무렵이었다.
어설프게 배운 포대기업기 실력으로 대충 아이를 등에 동여메고 슬리퍼를 질질 끌으며
한 손에는 햇빛을 가릴 우산을 쥐고 8월의 돌담길을 걸으며 옛날에 내가 했었던 생각을 다시금 곱씹었었다.
돌담같은 사람이 되고싶다는 생각은 변함없는 듯 하다.
그래도 가야할 길이라면
혼자보단 둘이 낫고, 둘보단 셋이 낫다.
비가오나 눈이오나 바람이부나,
나에겐 포대기와 돌담길이 있으니.
그리고 혼자 걸을 일은 없을테니.
날이 꽤 따뜻해져서 이번 주말 다시 아이를 업고 돌담길을 걸으며 아이를 재웠다.
아이는 꽤 자라서 내 등은 꽤 무거워졌지만,
기뻤다. 돌담옆으로 보이는 우리의 그림자가 너무 잘 어울려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