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등이 아니어도 괜찮아.
5살. 꽤 어린 나이에 혼자 한글을 뗐다.
7살. 종이에 동시를 끄적거렸다.
9살. 동화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선생님들은 내 일기장이 재미있다며 칭찬을 해주셨고, 그걸 기회 삼아 학급 문고에 여는 시를 쓰기도 했다. 가족들이 모이면 내 일기장을 몰래 훔쳐보기 바빴다.
스스로 깨닫기도 전에, 이미 글쓰기는 나의 타고난 특기였다.
다만 불행한 것은, 내가 완벽주의자의 성향이 있다는 것이었다. 어린 나이였는데도, 나는 그저 “잘한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리하여 내가 내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최고가 되기를 꿈꾼 유일한 것은, 글을 쓰는 일이었다. 누가 봐도 감탄할 만큼 완벽한.
애석하게도 그건 불가능했다. 이래저래 작은 상을 타오긴 했지만 전교 1등은 아니었고, 그것이 어린 나이였음에도 나의 글은 보잘것없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한낱 서울 변두리의 학교에서도 1등을 못 할 정도면, 나는 영영 성공하지 못하겠구나.’라는 걸, 너무 일찍 깨달아버렸다. 그렇게 글쓰기를 내려놓았다.
국어국문학과도, 문예창작과도 아닌 과에 갔다. 영 적성에 맞지 않던 터라 방황이 길었다. 그 방황의 끝에, ‘문예창작과 복수전공을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리 써놓은 글을 인터넷에 올리면, 교수님과 수강생들이 글을 읽고 강의 시간에 피드백을 주고받는 수업이었다. 애매한 재능도 재주라고, 글을 정식으로 써 본건 오랜만이었는데도 여러 사람의 호평을 받았다. 서른여 명이 넘는 학생들 중, 교수님의 댓글을 받은 건 내가 유일했다.
확실히, 그때쯤엔 조금 자신감이 붙었던 것 같다. 관련 없는 전공 수업 레포트에도 어울리지 않는 소설체로 독백을 읊어갔으니. 그러나 그조차도 오래가지 않았다. 소설 창작 수업 성적은 B+였다.
나는 또 나의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 다시 글 쓰는 것을 접었다.
글 밖에 내세울 게 없는 심심한 인생이라, 그 후로도 종종 창작에 대한 욕구는 잔잔한 파도처럼 울컥울컥 밀려왔다 다시 사라지곤 했다. 그러나 반짝이던 어린 시절과는 달리, 이제는 나이가 들어 창의력이 소멸된 평범한 인간은 도대체 무엇을 써야 할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러다 아이를 낳았다. 부모님과 함께 돌도 안 된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떠났다. 흔히들 “어릴 때 데리고 가봐야 아이는 기억도 못 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기록을 했다.
막상 기록을 하고 나니 욕심이 났다. 여행 사진첩을 만들어, 사진첩 한편에 그날그날의 일기를 요약하여 작성했다. 자꾸 보다 보니 요약된 기록이 아쉬웠다. 아이와 함께 느꼈던 감정, 부모님과 나눈 대화, 시시콜콜한 농담은 빠져있었다.
그러다 브런치를 알게 되었다.
나는 브런치를 통해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이와의 여행을 담담히 갈무리했다. 그것은 내 아이의 기억이 없던 시절의 기록이자, 부모님께 바치는 작은 선물이었다.
여전히 나의 글은 최고가 못 된다. 나는 고작 좋아요 20개 남짓에 불과 한, 지나가는 수많은 브런치 작가 중 한 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번만큼은 글을 놓고 싶지 않다. 그래야 나중에 내 아이에게도 말해줄 수 있을 것 아닌가.
일 등이 아니어도 괜찮아.
나는 오늘도 애매한 재능으로 꾸준히 글을 쓴다. 별로 잘하지는 못 한다. 그저 오랜 꿈을 품은 평범한 사람이자 한 명의 엄마로서, 계속 글을 써 나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