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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희철 Nov 13. 2019

4시간이나 일찍 일어났다

나하

180619_2일 차

4시간이나 일찍 일어났다.


평소보다 4시간이나. 할 일이 있고 없음의 차이가 이렇게나 크다. 짧게 잔 것 치고는 상당히 개운하다. 아침 일찍부터 슈리성을 향해 달리기를 할까 한다. 근처 일본 가정식 집과 우미카지 테라스의 타코 라이스집도 가고 싶다. 관광지의 아침 7시는 전 세계 어떤 여행지에서와 마찬가지로 낮시간의 번화함과 아침 특유의 적막감이 함께한다. 껍데기뿐인 화려함을 느낄 수 있다. 번화가를 가로질러 50분 정도 뛰어 슈리성 입구에 도착했다.


슈리성은 백제왕의 모습을 한 사람이 오사카 성 같은 성벽을 쌓아 놓고 중국풍으로 채색한 유적지이다. 이 모든 것이 실제라면 좋았겠지만, 오키나와 특유의 해풍으로 끊임없는 도색이 필수이며, 전후에 허물어져 있다가 오키나와 합병 20년 맞이로 복원되었다고 한다. 동네 건물의 색이 회색빛이라 대만 여행 중 보았던 건물에서 느낀 우중충함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역시 사람이 공간을 만들고, 공간이 사람을 만든다.


슈리 역 근처의 일본 로컬 밥집에 왔다. 이름은 오야구식당. 역시나 한국어나 한국인은 전혀 없다. 돌이켜 다시 생각해도 정말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 테이블에 앉아 알아듣지도 못하는 텔레비전 방송을 듣고 본다. 여기도 월드컵 열기가 가득이다. 티브이에서는 카카와 신지라는 일본의 걸출한 스타플레이어의 코스프레를 한 사람이 나와서 이번 월드컵을 잘해보겠다고 다짐을 한다. 귀엽고, 우습고, 일본적이다. 자리를 잡아 놓고, 테이블을 떠나 주인장이 있는 부엌 쪽으로 갔다. 서툰 일본어로 '한국인이라 일본어를 잘 못하는데요. 베스트 메뉴가 뭐예요?' 그랬더니, '시방 느가 하는 거이 일본어 아니냐이?' 라며 사투리로 받아친다. 너무 친근해서 그냥 동네 마실 나온 느낌이다. 주문 후에 곧장 나온 커틀렛 세트의 냄새가 아주 좋다.


숙소로 돌아오는 동안에는 문득 든 생각은 내가 눈치가 빠른 편이라는 것이다. 이는 여러모로 유용하게 쓰였다. 새로운 일을 배우거나, 누군가를 만날 때, 아주 작은 부분에서도 특징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일을 숙달하거나, 화젯거리를 만들었다. 나는 이게 재능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노력으로 쌓은 눈칫밥이었다. 눈치 보고, 맞춰주고 하는 것이 공감의 기본인데, 나는 그렇게나 누군가의 마음을 얻고 싶었나 보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보면 이러한 예민함이 없는 삶에서 어떻게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무엇이 필요한가? 무엇보다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나는 나를 배우고, 다른 사람을 배웠다. '발전'이라는 것이 모든 경우에서 긍정적으로 쓰이진 않지만, '도태'되는 것과의 경중을 다졌을 때, 전자 쪽이 낫다. 언제나 이와 같은 새로운 환경에서 발전을 도모하기는 어렵다. 때문에 보통의 것에서 특별함을 찾는 훈련을 평생에 걸쳐 계속해야겠다.




테라스에서 만난 사람들


타코 라이스는 오키나와의 유명 음식이다. 멋진 곳에서 타코 라이스를 먹고 싶었다. 구글 맵스를 켜고 숙소에서 우마카지 테라스까지 갔다. 원래 걷는 것을 좋아하여, 공항 근처까지의 거리가 되는 그곳까지 걸어갔다. 두 시간쯤 걸었는데, 그 정도 걸었다면 뭘 먹든 맛이 있다. 게눈 감추듯 맛있게 먹었고, 해 질 녘까지 한 시간 여가 남았다. 해변을 끼고 있는 그 주변을 배회하였다.


그러다 우연히 서양인 커플과 만났다. 나는 의도적으로 길을 잃었고 그들은 그렇지 않았다. 영어를 할 줄 아느냐는 대답에 길 안내 정도는 해줄 수 있을 것 같아, 그렇다고 했다. 그러자, 본인들은 'real beach'에 가고 싶다고 했다. 구체적으로는 '물에 발을 담그고 헤엄을 치고 싶다.'라고 하였는데, 다행히 내가 어제 그 비슷한 곳을 다녀왔다. 커플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서도, 나로서는 만족했던 곳이기에 추천하였다. 작은 도움을 주며 쓸모 있는 인간이 된 기분을 얻었다.


온전히 이방인일 때의 장점이 있다. 서툴러도 너그럽다는 점. 특히나 외국인 관광객 일 때는. 우연히도 우마카지 테라스에 있는 호텔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버스에서 인도에서 온 약관의 동생을 만났다. 일본이 처음이라고 하던 그 친구는 아버지와 함께 온천 여행 중이라고 하였다. 옆에 계신 분이 아버지인가 보다. 생각해보니 오키나와에 온천이 있기는 하지만, 온천을 위해 오키나와에 온다는 것은 이해되지 않았다. 온천 하면 일본 내에서도, 한국에도 많은데 왜 오키나와 일까 생각하는 찰나에, 아버지의 출장을 따라왔다고 말을 붙였다. 말은 서툴지만, 이해 못하는 내 표정까지 읽으니 크게 답답하진 않았다.


이때까지는 몰랐다. 내가 일본에서 일본어보다 영어를 훨씬 많이 오랫동안 쓰게 될 줄은. 무사시라는 이름은 누가 봐도 일본인의 이름이니 말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희철입니다.


한씨표류기 : 오키나와 편은


- 작성 시점이 2018년 6월입니다.

- 스물아홉 살 백수가 어떻게 서른 살 백수가 되는지에 대한 글입니다.

- 낮은 수준의 여행정보와 높은 수준의 사생활이 함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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