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결혼'이라는 단어가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직접 경험과 간접 경험이 조금씩 쌓일수록, 앞으로의 내 삶에서 보다 큰 영역을 차지할 것만 같다. 오랜만에 쓰는 영화 후기의 소재로 '결혼 이야기'를 선택한 이유다. 아직 미지의 세계인 부부의 세계를 '마케터', '영화광'의 입장에서 써 보았다.
# 1.
한껏 상기된 뺨이 그녀가 얼마나 이것에 진심인지 말해준다.
21분 : 이혼 전문 변호사와 여자의 만남이다. '영화 속 장치는 어디까지나 이야기를 잘 표현하기 위한 도구'로서 사용된다. 유려한 카메라 워킹이 인상적이다. 대화의 흐름에 따라 1) 화자에 집중하기도, 2) 관계에 집중하기도, 3) 흐름에 집중하기도 한다. 신을 끊어내는 능력 또한 절묘하다.
영화를 보는 사람이 누구든지 간에 공감할 수 있는 '시스터 후드'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에서 비롯된 큰 공감이 내가 이들 사이의 이해관계자로 스며들 수 있는 틈을 만든다. 깊게 빠져들기 시작했다.
# 2.
아이는 둘 중 한 곳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1시간 22분 : 연극적인 미장센이 많이 나오는 영화다. 그중에서도 이 장면이 별미이다. 문을 닫는다는 물리적인 행위와 이제는 본격적으로 다른 양상이 펼쳐질 것이라는 은유가 잘 곁들여져 있다. 문이 닫히기 직전, 찰나의 교차편집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애달프다. 그리고 집 안에서 닫힌 문을 바라보는 여자의 뒤통수가 그녀가 어떤 눈빛을 하고 있을지 상상하게 한다. 그리고 영화는 극단으로 치닫는다.
# 3.
(스포 주의) 등받이에 기대 있는 남자는 몇 분 뒤에 무릎 꿇는다.
1시간 31분 : 비로소 둘 만의 대화가 시작된다. 영화 내내 관객이 바랐던 순간이다. 이제 문제에 직면하여 본격적으로 문제를 풀어가길 바랐다. 하지만, 이미 복잡해진 상황에서 이 둘이 '우리'의 문제를 풀기에는 너무 많은 감정이 꼬여버렸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다른 공기에 둘러 쌓여있고, 때문에 피하고 다투고 욕하고 망쳐버린다. 각자의 입장이 있고, 이를 받아들이기에 나와 너는 너무 다른 곳에 앉아있다. 다툼은 더욱 심화된다.
영화 내내 천재로 불리던 남자의 멍청한 저주와 그 남자를 너무 잘 아는 여자의 포용으로 씬은 끝난다. 여기서 끝나도 좋았을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후에는 회복에 초점을 맞췄다. 여자가 쓴 글을 남자가 읽는다. 그리고 남자는 울먹인다. 뒤에서 그저 바라보는 여자, 둘은 이미 많이 멀어졌다. 이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대조와 조화, 자생과 규합. 아직 결혼 경험이 없는 내게는 아직도 너무나 크고 어려운 이야기다. 해보지 않았음에도, 막상 하면 잘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적어도 결혼은 해보지 않고는 모를 것 같다. 자세를 낮춰 겸손하게 결혼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주어 고마운 영화로 10년 뒤, 30년 뒤에도 기억될 것이다. 부부의 세계, 선배님들의 많은 조언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