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言)이 나를 빛나게 하지 않아.
일과 글 #20
많은 말을 쏟아낸 하루는 집에 가서 쉽사리 잠들기 쉽지 않습니다. 내 입을 가지고 내가 말했음에도 무엇인가 찝찝함이 남습니다. 그런 날이면 으레 TV 시청으로 멍하게 있거나 와인 한 잔을 마시곤 합니다. 맥주 한 잔으로 달래던 헛헛한 밤을 노브랜드 와인으로 대체한 지 2~3주 정도 됩니다. 꽤 괜찮은 선택이었습니다.
자주 말하고 적게 들으며 살고 있는지 살펴보면 대체로 듣는 시간보다 말하는 시간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많은 말이 내 존재를 빛나게 한다는 착각을 버려야 하는데 어휴.. 여전히 그 생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말은 묘한 구석이 있습니다. 숨기고 싶어도 어느 시점에 드러납니다. 진심은 대체로 스르륵 입에서 흘러나옵니다. 어렵지 않습니까? 타인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부족한 나의 인격이 말 한마디로 까발려지기도 합니다. 심사숙고해서 결정한 판단도 모든 감각을 통해 느껴지는 누군가의 말 한마디로 완전히 바뀔 때도 있습니다.
자주 많이 말해야 하고, 때론 어려운 자리에서 딱딱한 내용을 쉽게 말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조용히 앉아서 두 가지 원칙을 생각하며 말이 오고 갈 공간을 상상합니다.
첫째, 재미있는 이야기인가?
내 이야기가 재미있는가? 상대방의 흥미를 유발할 내용이 있는가? 한 걸음 더 들어가 '감동'이 있는가? 그런 질문을 합니다. 말하는 사람이 재미없는데 듣는 사람은 오죽하겠습니까? 내 말이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재미없는 말하기.. 그것은 무엇이 되었든 간에 끔찍합니다.
배우자와의 대화, 친구와의 대화, 상사와의 대화, 동료와의 대화.. 뿐만 아니라 갑-을 사이의 대화, 자녀와의 대화 등등 참으로 많은 상대와 대화를 하고 생각과 감정을 교류합니다. 결국 무엇인가를 말한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내 뜻이 도달하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전달되면 큰 기쁨을 느끼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대게 말하는 내가 아니라, 상대방에게 달려있습니다. 상대방이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이야기를 알고 내가 할 말이 있는가를 살펴보는 게 먼저입니다. 만약 그런 화제가. 없다면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낫습니다. 그럴 때는 그냥 듣는 것입니다. 먼저 말하는 것이 반드시 대화의 주도권을 가져오지 않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정보가 없는 가운데 먼저 말하다 보면 실수합니다. 소극적으로 대화에 임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차근차근히 상대방을 알아가려는 자세는 필요합니다. 한 번에 모든 것을 채워 넣는 대화는 실패합니다. 한 번에 하나씩 알아가고 빈 공간을 채워가는 것이 재미있는 대화가 아닐까 합니다.
둘째, 누가 듣는가?
회사에서 보고를 할 때와 입찰에서 프레젠테이션 할 때, 그리고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때마다 서로 다른 말하기 방식이 필요합니다. 대게 상사는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보고자는 상사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던지면 됩니다. 물론 그와 동시에 본인이 업무를 하고 싶은 방향을 스며들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상황이든 사실부터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상사가 판단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기다리고 나서 의견을 덧붙여야 합니다. 상사 입장에서 자기 의견부터 주장하는 보고는 의심이 생겨납니다. 왜냐하면 그 판단은 자기 몫인데 오히려 본인이 보고자의 의견을 판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실로 미묘한 부분입니다만 꽤 큰 중요한 영역이기도 합니다.
몇 년 전, 선정 심사를 받기 위해 중앙부처에 갔습니다. 7명의 심사위원이 회의실에 앉아있었고 저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질문에 대답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긴장하고 자리에 섰는데 심사위원의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한 위원이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는데 저로서는 적절히 대응해야 하는 입장이었지만 딱히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 위원이 했던 말이 전적으로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그 말씀이 정확히 맞습니다. 그 부분을 보완해서 저희가 맞춤형 지원을 실시해서 본 사업에 차질이 없도록 만전을 기하겠습니다.'
결과는 미선정. 부족한 부분에 대해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던 심사위원은 저와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끄덕 했습니다. 자신이 말했던 내용에 대해 동의했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누가 듣는지 알고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 참 어렵지만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그것만 잘해도 꽤 윤택한 사회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사회 초년에 빨리 팀장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적어도 윗사람 눈치를 덜 보면서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짧디 짧은 생각에서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새 후임 동료가 생기기 시작하는 때부터 눈치를 덜 보는 것이 아니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직장생활 눈치 총량의 법칙은 여전히 적용되니깐.
누군가의 윗자리에 있거나 앞에 선다는 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늘어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누군가를 대신해서 말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무엇보다 사람에 대해 공부하고 배워야 하는 것이 점점 늘어가기만 합니다.
나의 선택이 옳지 않다면 리더십은 타격을 받습니다. 할 말을 하지 않으면 비겁해 보입니다. 그렇다고 과도하게 말이 많으면 실수를 하고 가벼워 보입니다. 무엇보다 말로 빚어지는 애매한 상황 속에서 언제나 스스로를 돌아보면 얼굴 붉어질 일만 늘어나고 있습니다.
서른 후반 즈음을 지나면 삶도 인격도, 말도 행동도 어느 정도 정돈이 끝날 줄 알았습니다. 그러면서 꽤 균질한 일상을 살겠거니 했으나 짧은 생각이었습니다. 여전히 철이 없고 바닥을 다지고 있을 따름입니다. 아마 백 세를 산다고 해도 그렇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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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핀 봄날, 봄비가 추적추적 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