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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파즈 Dec 14. 2022

나의 전 직장 동료들에게

에세이 #71

 2년 10개월을 일했던 세 번째 회사를 떠납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일과 다른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나의 한계를 이처럼 뼈저리게 느낀 일터도 없었습니다. 


 그만큼 고군분투했으니 아쉬움이 크지 않고,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쏟았기에 별다른 감흥이 크지 않습니다. 다만 늘 만나고 함께 일했던 이들과 시간을 나누지 못한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매일 보는 얼굴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순간은 꼭 그 관계가 끝난 이후입니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닙니다. 


 자기 일에 책임지고 끈질기게 일하는 좋은 동료를 만났습니다. 그러니 나 또한 일을 허투루 할 수 없었습니다. 설렁설렁 대충대충 일하며 살고 싶은 이들이 각광받는 시대에 드물게 내 일은 내가 책임지겠다는 생각이 가득한 분들과 함께했습니다. 출장길을 오가며 나눈 대화와 함께 듣던 음악도 생각나는 걸 보니 여러모로 참 감사한 인연이었구나 싶습니다.


 인연의 한 단락이 끝납니다.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함께 일했고 연봉이 아주 높거나 보너스가 두둑하지 않았는데 참 열심히 일했습니다. 자기 자신에 충실하고 열심히 살았던 시간은 어디 가지 않고 고스란히 나에게 남는 것이니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이 글은 나와 함께했던 동료들에게 남기는 글입니다. 그러니 그들만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한 사람 한 사람을 묘사하며 감사를 전하고자 합니다. 




 파리지앵 J, 따뜻한 마음을 가진 책임감 넘치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이 분야의 '최고'가 되어가는 중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가장 험난한 시간을 함께 버티며 넘어줘서 참으로 고맙습니다. 


 미쿡박사 K, 언제나 넉넉한 마음으로 모자람이 많은 저를 도와주겠다는 마음이 느껴져서 고마웠습니다. 제가 아는 미국 박사 중에 제일 재밌는 분이 되어줘서 더 고맙습니다. 


 레드햇 H, 몇 번이나 퇴사하겠다는 사람을 붙잡는 저를 너른 마음으로 받아줘서 고마웠습니다. 부드러우나 강한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친구가 되어도 참 좋겠다 싶었습니다. 


 강릉사람 O, 누구보다 많은 노력을 쏟아붓고 짧은 시간 동안 가장 크게 성장했습니다. 스스로 자랑스러워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까지 함께해줘서 고맙다는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만큼 고맙습니다.


 키만큼 목소리가 큰 J. 투덜투덜하면서도 자기 일을 깔끔하게 하고 진지하게 일하는 모습을 보니 좋았습니다. 어려운 시기에 함께해줘서 참 고마웠습니다.


 남자보다 잘생긴 W, 첫 직장에서 버티는 것이 녹록지 않았을 텐데, 끈기와 근성을 가지고 버티면서 결국 성과를 만들었습니다. W의 첫 번째 성공을 도울 수 있어서 좋은 마음이었습니다. 이제 어딜 가도 버틸 수 있을 겁니다.


 수원시민 Y, 더 나은 계획을 고민하는 태도가 좋았습니다. 자기 일을 조금이나마 진전시키겠다는 마음을 잃지 않는다면 더 좋은 기회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참, 고생 많았습니다.


 힙한 댄서 K, 상대를 배려하는 모습과 넘치는 에너지는 어딜 가든 좋은 영향을 줄 겁니다. 고난도 인간들과 함께하는 프로젝트가 쉽지 않았을 텐데, 끈질기게 마무리해서 참 고마웠습니다.


 농구광 J, 우리가 하는 일에 퀄리티를 부여하는 일을 참 잘했습니다. 무엇보다 더 나은 결과를 만들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더 성장하기를 바라며 참 고마웠습니다. 

   



 제가 정말 싫어했던 전 직상 상사는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뭘 그렇게 열심히 일해? 일은 다 잊혀진다. 사람이 남는 거지.'


 그에게 이 말은 게을리 일하는 이유였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속으로 욕했습니다. '당신처럼 일하면 일도 사람도 남지 않을 거다.' 물론 직접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습니다. 조금 용기가 부족했으므로.


 그런데 그 말이 불현듯 생각났습니다. 고단하고 힘든 프로젝트를 함께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일은 기억에 남지 않고 함께했던 이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면 잊힐 겁니다. 인연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노력합니다. 자기 삶을 살고 자기 사람을 챙기다 보면 직장 동료는 서서히 멀어져 갑니다.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그래서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나는 함께했던 동료들이 앞으로 더 잘되기를 바랄 겁니다. 어딜 가든 자신 있게 자기 말을 하고 자기 삶을 살아가기를 응원할 겁니다. 좋은 인연을 만나고 누군가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을 믿습니다. 그렇게 기도할 겁니다.


 나의 부족함을 뼈저리게 느낀 일터에서 부족한 나와 함께한 동료들에게 참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것으로 충분한 일터였다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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