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울증과 함께한 10년의 기록
내가 전화를 받은 것은 밤늦은 시간이었다. 전화기에 표시된 발신자 번호를 보며 기분 좋게 대답을 했다. 아마도 술 마시고 생각나서, 혹은 술 마셔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아쉬워서 전화한 게 아닐까 생각했다. 전화를 받자마자 대뜸 한마디 던졌다.
‘야, 이 시간에 웬일이냐, 술 마시냐?’
수화기에서는 말이 없었다. 그냥 거친 숨소리만 들렸다. 잘못 전화를 한 것이거나, 전화를 걸고는 또 다른 사람과 얘기하느라 딴짓하고 있을 거로 생각했다.
‘전화했으면 대답을 해. 끊는다. 졸려.’
천천히 그는 내 인생을 바꾸고,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송두리 채 무너트려 버린 한마디를 했다.
‘XX가 죽었어.’
믿을 수 없었다. 어제만 해도 생일이라고 전화했는데. 스트레스를 받기는 했지만, 한국에서 일한다면 그 정도 스트레스는 누구나 받는 것이었을 뿐이었는데. 수십수백 어쩌면 수천 가지의 생각이 머릿속을 휘저었다.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단어는 많지 않았다. 그리고 물었다. 제발 이것이 같이 술을 마시다가 어떤 반응이 나올지 궁금해서 저지른 장난이라고 믿고 싶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있었다. 다른 설명은 들어올 수 없었다.
‘장난치냐? 그게 뭔 개 소리야? 왜? 언제? 어떻게?’
‘자살했데. 오늘 오후에.’
장난이었다. 그래야만 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렇게 무너졌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들어본 가장 듣기 싫은 한 문장이 나를 쓰러뜨렸다. 슬픔이 오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멀었다. 허무함 그리고 화, 황당함 그 어떤 것도 설명될 수 없었다. 바닥에 쓰러져 한참은 있었다. 갑갑함에 터져 나오는 모든 소리는 내 안에 갇혀버려 나오지 않았다.
‘미친놈. 말이 돼? 왜? 나한테 전화 한번 없이? 누구 마음대로?’
그렇게 쓰러져서 한참은 있었다. 도저히 속이 답답해서 집에 있을 수도 없었다.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돌아버리겠네. 어떻게 하지. 아 이놈 어떻게 해야 하지?
그냥 목적 없이 불안함에 공포에 질려 입이 아무렇게나 떨어대고 있을 뿐이었다. 아직 겨울인 9월이어도 그렇게 추운 날씨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내 몸은 속에서부터 떨리고 있었다. 어떻게든 침착하려고 해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고 해도, 가슴 깊은 곳에서 울려오는 떨림은 이미 내 주변의 공기까지 떨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계속 붙이는 담뱃불은 채 한 모금을 빨기 전에 담배를 태우고 손에서 타들어 갔고, 다음 담배도 그다음 담배도 손에 들고 소리 지르다가 바닥에 던져버렸다. 차분해져야 한다. 침착하자. 이 미친놈이 어딘가에 있을 하늘을 바라보고 냅다 소리를 질렀다. 죽은 놈을 살려서 내 손으로 죽여도 속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XX의 전화기로 전화를 했다. 받아라. 받아라. 받아라. 하지만. 받지 않았다. 다시 전화하자 받은 것은 XX의 아내였다. 옆에서 어머니의 소리도 아버지의 소리도 들렸다. 어떻게 해야 하지? 무슨 말을 해야 하지?
“XX한테 전화했지?”
목이 멘 그의 아내가 물었다. 나는 여전히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올 다음 말이 두려웠다.
“XX가 잘못됐어.”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한 채 전화를 끊었다. 최소한 XX에게서 왜 그 따위 선택을 했는지 설명이라도 듣고 싶었지만, 들을 수 없었다. 더 이상 그가 이 세상에 함께 있지 않다는 생각이 어지럽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