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나는 한 친구를 잃었다 (2)

- 우울증과 함께한 10년의 기록

by 하현

가장 빠른 비행기를 예약했다. 다음 날 새벽 6시. 지금은 밤 12시. 멍하니 집 천장을 눈을 감고 잠이 들면 이 모든 것이 사실이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긴 네 시간이 흘러갔다. 함께 찍었던 수백 장의 사진을 돌려보고 다시 보았다. 사진에서 웃고 있는 그의 모습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지금이라도 전화를 하면 받을 것 같은데. 그의 번호를 누르고는 통화 버튼을 누르지 못하기를 반복했다. 혹시라도 받지 않으면 모든 희망은 무너져 버릴 것 같았다. 그렇게 그 밤을 지새웠다.


꼬박 24 시간이 걸려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밤에 전화를 해서 나를 무너트린 친구가 나와있었다. 택시 타고 가면 된다는데 기어이 나왔다. 다행히 시간상 발인을 놓치지는 않을 것 같다. 마음이 급하다. 황망하고 어이가 없다. 언제나 인천공항에서 서울로 들어가는 길은 아름답고 좋은 기억들 뿐이었다. 1년 만에 집에 가는 길인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그리웠던 가족들과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기억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중 한 명을 어이없이 보내려고 가고 있다.


‘친구라는 놈이 나를 이렇게 소환할 수 있는 거냐? 이게 말이 되는 거냐?’


운전하는 친구에게 말을 건다. 말이 없다. 이미 며칠 동안 자리를 지켜 지쳤을 터였다. 별 다른 말이 없이 병원에 도착했다. 여전히 악몽에서 허우적 대는 것 같다. 어젯밤에 더러운 악몽을 꾸고 여전히 잠에서 깨지 않은 것이다. 확실하다. 잠에서만 깨면 모든 것이 없던 일처럼 그렇게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제발 살아만 있어라. 많이 다쳤어도 좋으니까. 평생 내가 돌봐줘야 한다 해도 그리 해줄 테니까. 제발 살아만 있어라. 그 모든 상상은 영안실 앞 그의 이름을 그리고 환히 웃는 그의 사진을 마주 보는 순간 철저하게 부서졌다. 차마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현실이라고 믿을 수도 없었다.


어이없음이 웃음이 비집고 나올 때 XX의 아버지와 동생이 보였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한참을 끓어 안고 울었다. 죄책감에. 이 모든 게 내 탓이었다. 친구라고 지껄이기만 했지 지켜주지 못한 내 탓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동생. 한참을 끌어안고 그렇게 울었다. 말을 할 수도 없었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나에게는 원망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어리석게도. 아픔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것을 누군가에게 덮어씌울 사람이 필요했다. 그런 대상이 되어버린 그의 아내는 정말 보고 싶지 않았다. 바로 옆에서 그를 지켜주지도 못했다는 원망도 있지만, 그 마지막 순간에 찾은 것이 내가 아니라는 것에 대한 질투도 있었다.


날은 정말 더럽게 좋았다. 화창하고 파란 하늘. 구름 한 점 보이지 않았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따뜻한 날. 철저하게 계획적인 이 놈의 성격을 생각하자면, 발인 날 날씨도 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여럿이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다. 한 개. 두 개. 타들어가는 담배만큼 속도 타들어 간다. 미친놈처럼 웃어도 보고, 울어도 보고. 어떤 방법으로도 미칠듯한 허전함을 채울 수가 없다.


‘야 들어와라. 이 새끼 기다린다.’


안에서 부른 친구의 한마디에 들어간다. 이 자식아. 내 손으로 널 보내줘야 하냐. 나쁜 놈아. 내가 두 손으로 보내줄게. 제일 앞에서 널 지켜줄게. 아무도 그 자리가 내 자리라고 의심하지 않았다. 당연스레 나에게 자리를 비워주었다. 눈치 없는 회사 사람만 빼고는 말이다. 평상시 같으면 웬만한 것은 다 양보했겠지만, 그 사람이 회사에서 어떤 관계에 있건 회사에서 어떤 눈치를 보고 있건 내가 상관할 바 아니었다. 친구를 보내는 길을 정치적으로 이용해 먹으려 했다가는 당장 같이 묻어버려도 속이 시원치 않을 판이었다.


무거웠다. 팔이 아플 만큼. 도무지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가 도저히 가기 싫은 것인지 내가 보내기 싫은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내가 세상에서 짊어진 어떤 짐보다 무거웠다. 훈련소에서 처음 들었던 총의 무게만큼 아니 그것보다 훨씬 더 아프게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였다.


뜨거운 불에 그를 밀어 넣었다. 내 가슴 한쪽의 빈 공간마저도 그와 함께 밀어 넣어 태워버렸다. 다시는 채워지지 못할 공간을 태워 없어버렸다. 재가 되어 나온 그의 모습에 재가 되어 버린 내가 비추어졌다. 내 가슴이 태워져 나온 것이 보였다. 인천 앞바다에 그를 뿌렸다. 한 줌 쥐어 바다로 뿌렸다. 바람을 타고 재가 다시 나에게 밀려왔다. 깊게 들이마셨다. 내 가슴 한쪽 구석에 태워 없애 버린 자리를 채워주기를 바라면서 더 깊게 들이마셨다.


‘넌 이제 내 안에 살고 있는 거다. 잘 봐라. 내 두 눈을 통해서. 네가 못 본 세상. 네가 만나지 못한 사람. 네가 살아보지 못한 삶을 내가 살아줄 테니까. 네가 살고 싶었던 그런 멋진 삶을 살아줄 테니까.’


배 난간을 붙들고 소리쳤다. 보고 싶다고. 사랑한다고. 뛰어들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저 물 다 마셔서 다시 다 내 안에 들어오게 할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하고 싶었다. 다른 친구들이 온몸으로 나를 붙들고 있었다.그렇게 그를 보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갑갑함에 남아있는 가슴마저 아픔으로 찢기면서 그를 보냈다.

이전 01화그날 나는 한 친구를 잃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