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울증과 함께한 10년의 기록
그가 뛰어내리기 하루 전날 점심.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젯밤에도 전화를 했는데 마치 오랜만에 전화를 한 사람처럼 반갑다. 대뜸 한마디 던졌다.
‘생일 축하한다는 말 또 들을라고 전화했냐? 생일인데 뭐하냐?’
‘아. 그냥 혼자 점심 먹고 있어. 사람들도 바쁘고 해서 혼자 먹고 들어가서 일하려고.’
‘그래. 뭐 그건 안 좋은 소식이고. 좋은 소식은 뭔데?’
억지로라도 좋은 얘기를 듣고 싶었다. 내가 듣고 싶어서였는지, 아니면 좋은 생각을 하게 하고 싶어서였는지는 모르겠다. 제발 그에게서 좋은 얘기를 듣고 싶었다.
‘아. 회사 그만두기로 했어. 한 달 정도 후에 말하려고 조금씩 인수인계해야지. 지금부터 다른 자리도 알아보고.’
어쩌면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정말 잘 생각했다. 거의 소리를 지를 뻔했다. 언제나 착한 사람, 착한 친구, 착한 아들, 착한 사회인 등 착한 사람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그에게는 정말 어마어마한 변화였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변한다더니니, 이 자식은 뭔 일이래.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뭘 한 달이나 기다려. 일단 당장 관두고 넌 잘 먹고 운동 좀 해라. 몸에 살 좀 붙이고 하면 훨씬 나아질 테니까. 그 뒤에 일자리 알아봐도 충분해.’
그 날 저녁. 더 이상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 드디어 그가 옳은 결정을 했다는 사실에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마치 당장 내가 갑갑했던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정했던 바로 그 순간처럼.
그를 보내기 두 달 전, 회사 아래에서 그를 만났다. 어쩌면 억지로 끌어냈다는 편이 맞을 것도 같다.
‘맥주 한잔 할래?’
‘안돼. 야근이야.’
벌써 10시가 넘었다. 그렇게 일을 하고 하나하나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회사를 그렇게 다니기 싫어하면서 아직도 바쁘다고 회사에 있어야 한다는 그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오늘은 놔주지 않으리라. 일주일 뒤면 나는 다시 호주로 돌아가야만 했다. 오늘 아니면 이야기할 시간이 없을 것 같았다.
‘헛소리 말고 나와. 회사 앞이야. 소리 질러서 부르기 전에.'
유치하지만 먹혔다. 결국 끌어냈다. 안 마신다는 손에 맥주를 한 캔 쥐어주고 회사 앞의 작은 정자에 앉았다.
‘야 사람들 눈치 보여.’
‘사람들 눈치 좀 작작 봐라. 네가 애냐? 서른다섯이다. 술 마시는 게 불법이냐?’
사실 회사 생활을 해본 나로서도 그가 말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는 갔으나, 그에게는 변화가 필요했다. 최소한 내가 보기에는. 회사가 그를 묶지 못한다는, 회사를 바꿀 수도 있다는, 혹은 될 대로 되라는 자신감이 필요해 보였다. 지난 몇 년간 점점 지쳐가는 그를 보았다. 1년에 한 번 한국에 올 때면, 말할 사람이 있어서 숨통이 트인다는 그의 말에 나는 먹먹해졌다. 한참을 붙들고 이야기를 했다.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지는 않았지만, 실컷 욕이라도 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그 상대가 나여도 상관없었다. 속이 시원해지리 수만 있다면 말이다. 염병할 회사가 돈이 상사가 다 뭐길래 그런 것에 목매달고 힘들게 사는 것인지, 까짓것 다 버리고 살아도 세상 망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었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그에게 문자를 보냈다.
‘친구야. 너는 갖고 있는 게 참 많은 사람이다. 좋은 대학도 나왔고, 직장도 잘 다니고 있고, 결혼도 했고. 너에게 부족한 것은 너를 보는 너의 자신감인 것 같다. 계속 힘들어하고 지쳐가는 너를 보면서 내 가슴이 타들어간다. 친구야. 모든 결정은 네가 내릴 수 있는 거야. 힘들다면. 네가 힘들지 않은 네가 가장 좋아하는 결정을 내리길 바라. 그래도. 세상은 아무 문제없이 굴러가고, 너도 아무 문제없이 살아갈 테니까.’
그는 언제나 멋진 직장인이 되고 싶어 했다. 남들 보기에 멋진 직책을 갖고 싶어 했고, 멋진 차를 갖고 싶어 했고, 누가 봐도 잘 산다 싶은 집에서 살고 싶어 했다. 허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의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가 당연히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철저하고 계산적인 사람이었으니까. 어쩌면 친구로 만났기에 친구가 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블로그에는 멋진 와인바에서 와인을 들고 폼 나게 앉아 있는 사진이 있었고, 갖고 싶은 차의 사진이 있었고, 살고 싶은 집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더 나은 모습으로 살기 위해서 계속 새로운 자격증과 새로운 도전을 하는 그의 모습이 멋지게 보이기도 했다. 어쩌면 성장주의가 만들어 놓은 전형적인 인간의 모습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나에게 물었다.
‘너희는 돈을 어떻게 모아? 도대체 모이지 않아서 걱정이다.’
사실 이해가 안 갔다. 내가 버는 돈의 세배 혹은 네 배는 되는 월급을 받으면서 돈이 모이지 않는다고? 그렇다고 얘가 어디다가 펑펑 쓰고 다니는 그런 사람도 아닌데. 아마 이때가 처음으로 성인으로서의 그의 삶이 더욱 궁금해졌던 때였던 것 같다. 사실 서로 간의 선이 허물어지는 순간이기도 했고, 고등학교 친구에서 성인이 되어서도 허물이 없는 오랜 친구로서 서로의 속살을 보여줄 수 있는 친구로서 발전하는 시점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