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나는 한 친구를 잃었다 (4)

- 우울증과 함께한 10년의 기록

by 하현

그를 보낸 다음날 다른 친구 둘과 함께 동네의 고깃집에서 만났다. 시간은 이제 오후 1시. 아무런 생각도 하기 싫었다. 그냥 술이 필요했고, 함께 의지할 친구가 필요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고기 제일 좋은 걸로 3인분 주세요. 젠장. 죽기 전에 맛있는 거라도 잔뜩 먹고 죽어야지. 이 새끼 보란 듯이 미친 듯이 맛있는 것 다 먹고 미친 듯이 재미있게 살 거야. 나중에 만나서 잔뜩 놀려주게.’


오후 2시. 많은 말이 필요 없었다. 이미 셋 모두 취해 있었다.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고, 서로 떨어지고 싶지도 않았다. 그가 다녔던 회사 근처로 발걸음이 옮겨졌다. 다시는 쳐다도 안 볼 거라고 했던 그 건물 앞에 셋이 섰다.


‘미친놈. 정말 높지 않냐? 높은 거 싫어하고 아픈 거 정말 싫어하고 엄살 심한 놈인데.’


까마득하게 높다. 건물의 꼭대기를 보고 있으니, 지금이라도 누군가가 뛰어내릴 것 같고, 내가 옥상으로 떨어져 버릴 것 같았다. 현기증이 몰려온다. 두 달 전 친구와 앉아서 맥주를 마셨던 정자에 앉았다. 셋이 아닌 한 명 더 함께 있어야만 할 것 같다. 이 자리에 없다는 것이 어색하다. 친구 하나가 건물에 들어갔다. 한참을 경비와 말싸움을 하는 듯하더니 나왔다.


‘가자.’

‘어딜 가?’

‘이쪽 이래.’


말없이 따라나섰다. 참 남들한테 보이지도 않는 구석진 곳으로 잘도 뛰어내렸다. 누워있는 그가 보인다. 누워서도 피식 웃고 있을 그가 보인다. 제발 마지막 순간에 후회하지는 않았기를 간절히 바란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후회를 한다면 얼마나 속이 아플까. 그 마음이 전해져 온다. 후회했을 친구가 아니다. 셋 모두 동의한다. 마지막 순간에 정신을 차렸더라도, 차라리 잘됐다. 날 괴롭히던 놈들 엿 먹어봐라.라고 생각했을 놈이라고. 한 발 내딛는 그 순간 얼마나 무서웠을까. 세상이 얼마나 아프게 했길래 버려야만 했을까. 저려온다.


‘나가자. 못 있겠다.’


발걸음이 더욱 무거워졌다. 혹시라도 누가 봤다면 살릴 수 있었을까? 건물을 다시 올려다보니 살아있길 바란다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상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나만의 처절한 바람이었겠지.


‘아 젠장. 이 자식 죽기 전날도 통화하고. 다음날도 면접 끝나고 만나자고 했었는데. 내가 잡아만 줬어도 되는 거였는데.’


그게 어찌 너만의 탓이겠냐. 막지도 못하고, 나를 보면 속이 뚫린다는 놈을 내버려두고 먼 타국으로 이사 가버린 나도 있는데. 이게 어찌 너만의 탓이겠냐. 옆에서 지켜주지 못한 모든 사람의 탓이겠지. 그리고 내 탓이겠지. 이게 내 탓이 되지 못한다는 것에 질투심마저 난다. 모든 책임을 내가 떠안고 가야 할 것 같다. 그렇게 내가 아꼈고 나를 아꼈던 친구이기에. 최소한 내 생각에는.


더 많은 친구들이 모였다.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도 함께 술을 마셨다. 항상 기분 좋은 자리였는데. 이 자리도 두려워진다. 선생님께도 죄송하지만, 다른 친구들에게도 미안하다. 모든 것이 다 내 탓인 것 같다.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보게 된다.


‘어찌 세상을 살면서 모든 게 다 마음대로만 되겠냐. 오늘 1등 하다가 내일은 꼴등 할 수도 있는 것이고, 그 반대이기도 하고. 그래야 세상 사는 게 재미있지 않게냐?’


그에게는 그렇게 중요했던 것 같다. 언제나 1등이었고 언제나 그 1등을 놓친 적이 없었던 놈이기에, 1등을 놓칠 수도 있다는 강박관념이 그렇게 크게 작용했었나 싶기도 하다. 그다지 1등과는 인연이 없었던 내가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이제는 떠나버린 친구가 갖고 있는 아픔을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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