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밀도'

by 문하현

한때, 나는 기꺼이 기다리는 일이 사랑의 일부인 줄 알았다. 내가 책으로만 배웠던 사랑'들'에는, '인내'가 빠짐없이 강조되었다. 나는 성숙한 사랑에는 인내가 필수불가결한 덕목이라고 은연중에 머릿속 좌우명으로 아로새겼던 것 같다.

여기서 내가 미처 간과했던 부분이 있다. 인내는 나의 요구에 응답이 반드시 뒤따를 것이라는 확신 위에서만 온전히 발휘된다. 아무런 기약도, 확신도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버티는 것은 인간의 의지를 거스르는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기꺼이 인내를 자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사람이 그만큼 나에게 유일하고 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 마음을 얻으려면 응당 그에 걸맞은 시간을 견뎌야 한다고 믿기에, 우리는 기꺼이 스스로를 타들어가게 하며 시간을 감내한다.


그러나, 무턱대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기다릴 수만은 없다. 응답이 돌아오지 않는 인내는, 시야를 가로막는 거대한 벽을 멀뚱히 쳐다보는 일과 다를 게 없다. 그 침묵의 벽 앞에서 하염없이 서성이며 나 자신을 서서히 갉아먹는 일은, 사랑이라기보다 나 자신에 대한 방치에 가까웠다.


인내는 사랑하는 일에 있어 빠질 수 없는 덕목이다. 하지만 '사랑의' 인내에는, 상호 간의 응답이 전제조건이다. 사랑하는 일이 단 하나뿐인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라면, 그 사람의 마음이 완전히 메말라 바스러질 때까지 기다리게 두지 말고 기꺼이 응답해주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약 없이 기다리게 하는 것은, 그를 쓸쓸하고 차가운 감옥에 가두는 형벌과 다르지 않다.


앞으로 사랑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할 사람에게는 스스럼없이, 기꺼이 마음을 활짝 열고 응답해 줄 것이다. 사랑을 위해 문을 두드리는 일에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문 건너편에서 인기척조차 없는 적막을 견디는 데에 그 용기를 쓰고 싶지는 않다. 이제 나는, 기꺼이 문을 열고 마중 나오는 사람에게 내 용기를 건넬 것이다. 소중한 사람의 용기를 별볼일없는 쓰레기처럼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서는 안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