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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현달 Aug 28. 2021

허세와 쫄보 사이

K-장녀들은 알 것이다. 자신의 태생적인 성격이 어떠하든 성장과 함께 책임감과 자립감이 따라붙게 된다는 것을. 전형적인 한국 가정, 심지어 장남과 장녀의 딸로 태어난 K-장녀인 나의 유년시절 모토는‘혼자서도 잘해요. 더불어 남도 잘 챙긴답니다’였다. 그러나 성인이 되고 뒤늦은 반항기가 온 나는 모든 것이 다 귀찮아졌고 부질없이 느껴졌다. 책임감이며 자립감이며 다 중동 가라 그래.


 그리고 이 뒤늦은 반항기를 통해 알게 된 약점이 하나 있는데 바로 내가 쫄보라는 것이다. 사실 책임감이라는 막중한 단어에 눌려있었지만 나는 쫄보였다. 그런 쫄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유럽여행을 결심했다. 그것도 혼자서. 남들 눈에는 혼자 여행을 즐기는 세련된 여성인 것처럼 보였겠지만 사실 같이 갈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2n년간 K-장녀로 살아온 나는 쉽사리 쫄보라는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지 못했다. 고고하고 담대하게 살아온 내가 쫄보라니 말도 안 된다. 여행 준비 때부터 이 양가감정이 나를 좌지우지하였다. 일단 일을 저지르는 것은 K-장녀고 결과에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쫄보였다. 폴란드 항공 티켓값이 너무나도 싸 대담한 K-장녀는  바르샤바에서 17시간 동안 레이오버를 하고 최종 목적지가 파리인 항공권을 결제하고 말았다. 결제 후 물밀듯이 쏟아지는 걱정들. 폴란드 항공이라니 괜찮을까? 하며 탑승 후기 블로그를 모조리 찾아 밤새 읽었다. 쫄보를 안도하게 한 건 안전비행도 친절한 승무원들도 아닌 밥이 맛있다는 후기였다.

 

 항공사에 안도하고 나서 정신을 차려보니 바르샤바에 17시간이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급습해왔다. 17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미리 계획하자는 쫄보와 큰 틀만 짜두고 자잘 자잘한 건 그때 상황에 따라 판단하자는 K-장녀의 한판 승부가 시작됐다. 어째서인지 그때는 K-장녀의 기분이 되어 큰 틀만 짜고 말았다.


 바르샤바 쇼팽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내 안의 K-장녀를 후드려 패고 싶었다. 시내까지 어떻게 나가야 하지? 택시는 어디서 타야 하지? 그런데 택시를 타도 되나? 버스가 안전하겠지? 그래 버스를 타자.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니 망할 승차권 기계가 하필이면 그날따라 고장이었다. 나를 가엾이 여긴 따수운 여성분의 도움으로 무사히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이곳에서도 여성분에게 도움을 받다니! 너무나도 고마운 분인데 얼굴은 기억이 안 나지만 그 여성분이 입고 계신 포근한 갈색 코트만은 선명하게 남아있다. 입고 계신 갈색 코트만큼 포근한 여성분이 버스기사 분에게 나의 자초지종을 설명해주셨다.

“아이고 얘가 말이야 버스카드는 없고 현금밖에 없다는데 근데 승차권 기계가 고장이 났지 뭐야 그냥 대충 현금으로 계산해줘” 대충 이런 말이었을까?(폴란드어는 하나도 모른다.) 무사히 요금을 계산하고 의자에 앉았다. 11월 말의 동유럽은 매섭게 춥고 버스 안에 동양인은 나뿐이었다. 흐어디로 가나요 아저씨.. 동양인 손님은 처음인가요..?


 무사히 도착해서 가고 싶었던 카페에 가서 휴식을 취하다 보니 어느덧 밤이 깊어갔다. 쇼팽 박물관에 가려고 거리로 나섰는데 평생 한국과 일본만 가본 나에게는 너무나도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거리였다. 기념사진 한번 찍자! 근데 누구한테 사진을 부탁하지? 사진을 부탁했다가 내 핸드폰을 들고 도망가면 어쩌지? 어 경찰이다!! 지나가던 경찰을 보고 경찰이 설마 핸드폰을 훔쳐가겠어라는 마음에 쫄보는 다짜고짜 사진을 찍어달라 부탁했다.

“사진 좀 찍어주실래요?”

“나랑 같이? 좋아”

“아뇨 저 혼자..”

경찰 무리는 굉장히 당황해하며 뭐야 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 기분이 사진으로도 전달되었는지 하필 내가 눈을 감고 있을 때 찍어주었다. 민중의 지팡이여도 민중의 사진사는 아니니까.. 찍어준 게 어디야 하며 나를 달랬다.

 

버스가 끊긴 시간이라 택시를 타고 다시 공항으로 돌아갈 때도 쫄보는 핸드폰으로 계속 구글맵을 확인했다. 공항까지의 20분이 억겁의 시간이었다. 구글맵 경로대로 가고 있는데도 말이다. 사실 택시 아저씨는 너무나 친절했고 덕분에 나는 무사히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실 이제야 말하지만 샤를 드골 국제공항에서 지인을 만났을 때는 안 도심에 눈물까지 날 정도였다.


눈물 나는 쫄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 회사에 무사히 복귀하였다. 긴 여행을 보낸 만큼 회사 사람들은 나에게 여행담을 묻곤 했다.  

“어디 어디 다녀온 거야? 오랫동안 자리를 비웠길래 무슨 일 있었나 했지”

“폴란드랑 파리 다녀왔어요”하며 나는 선물로 사 온 과자를 건네며 말했다.

“폴란드 동유럽 아니야? 위험하지 않았어?”B선배가 동유럽으로 여행 가는 사람은 처음 본다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 이런 기대에 쫄보 이야기를 들려줄 순 없지.

쫄보 사건은 싹 다 빼놓고 다시 대담한 K-장녀로 변신. 깍지 낀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선 다리를 꼬며 거만하게 다들 동유럽 무섭다고 하지만 폴란드 사람들 너무 친절하고 좋은 곳이야 라며 기회가 되면 또 혼자서 가고 싶다고 허세를 떨며 미주알고주알 여행담을 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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