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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유진 Oct 06. 2017

나를 들여다볼 때 생기는 변화들

"저 휴학하기로 했습니다."

한 청춘이 내게 말했다.

특목고를 2년 만에 졸업하고 대학 입학 후 공대를 다니는 학생이었다. 3학년 2학기를 막 마친 상태였다.

"휴학하고 뭐 할 건데?"

"만화를 실컷 볼 거예요."

"만화?"


"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돌아보니 제 인생에는 오로지 공부밖에는 없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를 잘했고, 늘 1등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공부가 그다지 어렵지 않았습니다. 경쟁이 치열한 고등학교도 무난히 합격했고 대학에 들어와서도 성적이 좋습니다. 하지만 그게 문제입니다. 공부는 잘하는데 왜, 무엇을 위해 열심히 하고 있는지 저 스스로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 사는 게 재미가 하나도 없어요. 의욕도 없고 미래에 대한 기대도 없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좋아하는 게 없는 사람은 없다, 자신을 잘 들여다봐라,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라,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조금이라도 젊을 때 해봐라' 하는 말씀을 반복해서 해주시니 조금씩 이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나도 좋아하는 게 있었나... 정말 즐기며 하던 게 있었나.. 나를 위해서 해 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그러다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만화! 내가 만화를 정말 좋아했었지! 어릴 때 유일하게 좋아했던 건 만화를 보는 거였습니다. 손에 잡기만 하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푹 빠지곤 했지요. 하지만 그마저도 중학교 1학년이 초반이 끝이었습니다. 합격이 어려운 고등학교 입학 준비를 본격적으로 하면서부터는 만화책을 한 번도 손에 잡아보지 못했습니다. 공부하고 성적확인, 공부하고 성적확인. 남보다 얼마나 잘했는지, 누가 나보다 더 잘했는지만 관심을 두고 살아왔습니다. 지금까지 계속 늘. 그런데.. 이렇게 나이가 들면 좀 슬플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간이 지나면 졸업하고, 남들 보기에 괜찮은 곳에 취직하고, 남들에게 지는 것을 싫어하니 또 일도 열심히 하고, 속으로 의욕은 없고... 그렇게 계속 의미 없이 살아가겠지... 싶습니다. 저는 너무 건조한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시간을 좀 주려고 합니다. 숨통을 열어줄 시간, 숨을 쉴 수 있는 시간, 웃을 수 있는 시간, 내가 하고 싶은 걸 해보고 싶은 시간, 나를 위한 미래를 계획해볼 시간. 사실 전 만화를 보면서 정말 재밌는 만화를 저 스스로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곤 했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아직도 그런 바람과 열정이 제 안에 살아있는지도 알아보려고 합니다. 그동안 과외를 하면서 모은 돈을 저를 위해 써보려고 합니다. 혹시 아나요 제가 과학을 전공한 만화가가 될지."




"제가 생각을 좀 했습니다." '

"무슨 생각?"

"'내가 이대로 살아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요. 사실 전 제 전공에 만족합니다. 제가 선택해서 온 학교, 학과이고요. 즐겁게 생활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며칠 전 잠을 자다가 문득 '내가 이대로 살아도 괜찮을까? 이게 내 최선인가?' 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다른 길, 더 나은 길도 있을 수 있겠다 생각이 들더군요. 아직 젊은데, 조금 더 어려운 곳으로 도전해볼까 싶었지요. 고민하고 결정했습니다. 도전하기로요."

2년 후 그는 학교와 전공을 바꾸는 시험에 합격했다. 시험공부를 준비하며, 그리고 학교와 전공을 바꾼 후 공부하느라 힘들어 얼굴이 새까맣게 된 것을 보며 나는 물었다.

"힘들어 보인다. 후회 안 하니?"

"전혀요! 힘들지만 뿌듯합니다. 저는 저에게 다른 인생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과 얘기를 나누며 나와 내 인생에 대해, 내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니 머리가 복잡해지더군요. '이거 말고 다른 게 있을 것 같은데, 이게 전부는 아닌 것 같은데, 더 나은 무언가가 있을 것 같은데, 한 번 시도해 봐도 좋을 것 같은데,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점점 생각이 발전했습니다. 나를 위해 무얼 해야 할지 조금씩 보이더군요. 그때 고민하고 실행하길 정말 잘했다 싶어요."




"사회나 부모님, 어른들, 친구들의 말에는 그렇게 귀를 기울여왔지만 정작 내 마음의 소리는 듣지 않고 살아왔다."


"문득 지금의 내가 앞으로 있을 어떤 나보다 젊고 아름다울 텐데 이렇게 어영부영 보내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쟤는 저거에 미쳤다'는 소리 한 번 들어보고 싶다."


"나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니 나는 잘하는 것도 많고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를 더 많이 사랑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앞으로도 계속 지금보다도 누구보다도 나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졸업 후 진로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어떤 방향으로 살아갈 것인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생겼고 전공에 대한 회의도 있었다. 그러다가 근시안적으로 미래를 내다보는 것은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잘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 내 힘과 노력을 끌어낼 수 있는 열정을 태우게 하는 것에 더 집중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시각이 달라지고 시야를 돌리게 되자 더 많은 것이 보였고, 고등학교 때부터 열망하고 있었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접어버렸던 *** 에 대한 꿈이 보이기 시작했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것마저도 사치라고 생각한다. 열정도 많고 재능도 많은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내가 잘 하 수 있을까라는 고민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 마음 또한 불완전한 만큼 뜨겁고 거세기에 기죽지 않으려 한다. 지나간 시간에 불평하기보다 앞으로 쌓아갈 더 긴 시간들에 채워질 것들을 기대하고 나 자신을 쏟아보기로 했다…."




자신을 들여다보고, 내면의 목소리를 들으려 노력하고, 자신의 인생을 깊고 넓게 바라보려 노력한 청춘들이 말과 글을 통해 나에게 전해준 내용이다. 매번 내 가슴도 뜨끈해졌다. "잘 생각했다, 잘했다" 칭찬하며 진심을 담아 응원해주었다.


만일 당신이 오늘 불안하고, 혼란스럽고, 겁이 난다면, 무엇보다 시간을 들이고 공을 들여 자신의 내면을 파고들어라. 답은 거기에 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에겐 이것뿐이라고, 난 이것뿐이니 갈 수 있는 건 이길 뿐이라고 규정해버리지 말자. 당신 안에는 큰 가능성이 있다. 그 가능성은 "나 여기 있어요!"하면서 자발적으로 손들고 나오지 않는다. 수줍음이 많은 녀석이다. 자꾸 들여다보고 알아주고 좋아해 주어야 조금씩 고개를 든다. 수줍어하고 주저하는 내 안의 가능성을 알아주고 키워주는 건 바로 내 몫이다.

불안하고, 혼란스럽고, 겁이 난다면 시간을 들이고 공을 들여 자신의 내면을 파고들어라. 답은 바로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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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il - grace@hainstitu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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