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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 Mar 21. 2023

사과를 보면 떠오르는 얼굴

우리 엄마

내 어린 시절 40대였던  엄마의 삶은 고단했다.

생활력이 없는 남편을 만나 한 집의 가장 노릇을 온전히 다 했던 그녀였다. 없는 살림에 주렁주렁 달린 자식들을 먹여 살려야 하니 쉰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동이 트기 전에 일을 하러 나갔고, 저녁 시간이 다 되어서야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상을 반복했던 그녀였다.




어느 수업에서 '어머니'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브레인스토밍 해보는 시간을 가졌었다.

엄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 사과‘ 

생각할 것도 없이 사과가 생각났다.

10명의 수강생들이 있었고 그 수만큼이나 다양한 엄마의 모습들을 보게 되었다.

대부분 수강생들의 기억 속 엄마는 우아하고 여유가 넘치는 그런 밝은 분위기의 모습들이었는데 내가 떠올린 우리 엄마의 모습은 헌신적이고 지친 모습이었다.

생각하면 코 끝이 찡해지는 그런 엄마.

같은 시대를 살았던 수많은 엄마들 중 가장 고단한 삶을 산 것 같은 우리 엄마.


내가 나고 자란 곳은 사과로 유명한 곳이다. 엄마는 과수원에서 품삯을 받고 일을 하셨다. 하루종일 내리쬐는 따가운 햇볕을 온전히 받으며 사다리를 타고 사과나무 위를 수도 없이 오르내렸다. 그렇게 탐스럽고 예쁜 사과를 수확할 때까지 계절계절 열심히도 일하셨다. 저녁 시간이면 엄마가 언제 돌아올까 목을 빼고 골목을 살폈다. 그러다 돌아오는 엄마를 발견하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땀에 흠뻑 젖은 모습에도 우릴 보고 웃어주는 엄마의 미소가 참 좋았다. 고단한 하루를 보낸 그녀지만 저녁 식사 준비도 온전히 그녀의 몫이라 쉬지도 못하고 밥을 차려 주었다. 그땐 몰랐다. 당연한 줄 알았고, 고마운 줄 몰랐다.

'나이 먹으면 다 알게 된다' 던 그녀의 말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엄마의 나이가 되어보니 알겠다.

그녀가 얼마나 고단한 삶을 살았는지 얼마나 좋은 엄마였는지 말이다.


우리 집엔 사과가 끊이지 않았다.

엄마가 일을 하실 때도 그랬고, 일을 그만두고 나서도 사과 철이 되면 항상 제일 맛있는 사과를 사서 우리에게 주셨다. 그래서 사과는 내게 너무나도 흔한 과일이다. 결혼한 첫 해에 엄마가 부사를 보내주셨는데 평소 과일을 잘 먹지 않았던 남편은 이렇게 맛있는 사과는 처음 먹어본다며 감탄했었다. 어른 주먹보다도 큰 새빨간 사과. 반을 쪼개면 씨 주변으로 노란 꿀이 가득 들어있는 달콤한 사과와 남편은 사랑에 빠졌다.

사과를 보면 엄마의 고단했던 젊은 시절이 생각나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과일을 좋아하게 해 준 장모님의 고마운 사과로 기억하겠지.


일흔이 넘은 연세에도 무엇이든 자식에게 더 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그녀의 고운 마음만큼이나 엄마를 참 많이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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