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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일리 Sep 16. 2024

어떤 가족

나의 어머니는 딸이 네명 있던 집안의 다섯번째 딸로 태어났다. 그 시절 딸을 계속해서 낳았다는 말은 아들을 낳는 데 줄곧 실패했다는 말과 같았다. 집안 어른들은 또 딸을 낳았냐며 절망했고, 아기를 밖에 내다 버리라고 했다. 아기엄마는 포대에 싼 아기를 내다 버리려 범일동의 고개를 넘어 아기를 안고 갔다. 그러나 이내 칭얼거리는 아기의 얼굴을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요 아가 얼굴이 예쁘장하이, 대통령 부인이 될 수도 있겠다."


그리고 아기를 다시 데리고 들어와 계집 아자를 써서 현아라고 지었다.


현아가 태어나고 2년 후, 아기엄마는 또 한명의 아이를 낳았다. 다섯번의 시도 끝에 태어난 아들이었다. 현아가 태어나던 날과 다르게 집안은 축제 분위기였다. 여섯째 아들은 수박을 자르면 그 가운데의 가장 큰 토막을 차지했다. 떡을 먹을 때면 제일 예쁜 걸 골라 먹을 수 있었다. 집안에서 유일하게 과외를 받았고, 3대 독자라는 기대에 부응해 서울대에 진학했다. 현아는 항상 동생이 먹은 이후에 자신이 먹을 것을 고를 수 있었다. 현아에게는 따로 과외 선생님이 없었다. 그래도 얼굴이 달덩이 같이 예뻐서 언니들이 많이 예뻐했다고 한다. 현아는 부산대 사학과에 진학했다. 과외 선생님이 붙지 않고 혼자 공부했는데도 대단한 성적이었다. 똑똑하고 예쁜 그 여자는 이후 8년간 연애한 남자와 결혼하여 딸 하나와 아들 하나를 낳았고, 그 딸이 오늘 이 글을 쓰는 내가 되었다.


나는 줄곧 할머니를 미워했다. 할머니가 외삼촌과 우리 엄마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 다르다는 걸 어릴 때부터 느꼈다. 할머니는 엄마를 사랑하는 것 같다가도, 그녀를 외삼촌 앞에 잘못 찾아온 불청객 아기로 대하는 것 같기도 했다. 엄마는 그 후로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유지했지만, 이따금 밤에 자고 있다 무의식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악! 하는 그 소리에 일어나 무슨 일이 있나 하고 살피면 별 일이 없다는 듯 쿨쿨 자고는 했다. 현아는 엘리베이터에서 오래 있지 못했고, 영화관에 가지도 못했다. 영화를 좋아하는 아버지는 집에서 DVD를 빌려다가 혼자 영화를 보는 습관이 생겼다. 이따금씩 알 수 없는 공포와 답답함을 느끼며 주저앉던 그녀는 50대가 되어서야 자신의 병명이 공황장애임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의사는 그녀의 정신 병력이 아마도 태어난 날 집안의 절망적인 분위기에서 시작되었을 거라 진단한다.


어제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아흔 둘의 나이였다. 아침에 둘째 딸이 노치원에 데려다 주기 위해 방문했더니 숨이 멎어 있었다고 한다. 경찰이 집에 방문해 그녀를 살필 당시까지만 해도 몸이 따뜻했다고 한다. 의사는 그녀가 고통받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을 거라며, 아픔 없이 갔을 거라 위로를 건넸다고 한다. 언젠가 일어날 거라 생각했지만 이렇게 빠를 줄 몰랐던 막내딸은 상복을 입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엄마는 이틀 전 할머니 댁에 방문했다. 그날 따라 할머니 상태가 많이 좋지 않아 눈이 흐렸다고 한다. 엄마, 나 신랑 밥 챙겨주러 이제 갈게. 누구보다 사위 밥 챙겨주는 걸 우선시했던 할머니는 그날 따라 별 말이 없었다고 한다. 몰래 일어나려는 막내딸을 붙잡고 할머니는


"야야. 가지 말고 내 다리 주물러도. "


라고 했다고 한다.


"아 엄마, 이서방 기다린다. 나 빨리 가야된다."


현아는 잡는 어머니를 두고 집으로 가서 신랑을 챙겼다고 한다. 그게 마지막 순간이었다. 엄마는 나를 꼭 안고, 엄마가 가지 말라고 잡았는데 내가 뿌리쳤다며 펑펑 울었다. 엄마의 어깨가 동그랬다. 크다고 생각했던 등짝도 왜소해 진 것 같았다. 파들파들 떠는 엄마를 붙잡은 나도 울었다. 모진 사람들의 말을 듣고 아기를 버리러 범일동의 고개를 넘었을 내 엄마의 엄마. 예쁜 얼굴을 보고 아기를 먹여 살려야겠다고 결심했을 젊은 시절의 할머니. 어찌됐든 둘은 서로를 아주 많이 사랑했다는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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