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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일리 Jun 14. 2021

민사고 하위권 학생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우리는 왜 배우나?

나는 민사고 하위권 학생이었다. 중학교 시절 선생님 말을 잘 들은 덕에 명문고등학교에 어찌 발은 들여 놓았지만, 수준 높은 동급생들을 따라가기 벅차하던 사람이었다. 고등학교 3년간 약간의 우울과 열등감을 항상 달고 살았고, 고등학교를 마칠 무렵 어느 대학에도 붙지 못하여 재수를 통해 대학에 입학했다. 옥스퍼드와 다트머스를 붙은 동기들과 쭈뼛거리며 사진을 찍던 졸업식 날에는 정말이지 이 세상으로부터 사라지고 싶었다. 대학을 졸업한지 꽤 된 지금 시점에는 다 추억일 뿐이다.


그런 민사고가 이제 정말 추억의 학교로 남게 생겼다. 2025년이 되면 교문 앞 파스퇴르 우유의 비린내도, 주말에 행복한 마음으로 들렀던 소사휴게소도, 민족교육관에서 눈오는 날 선생님이 끓여주시던 차도 이제 학생들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과거로 남는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엘리트 교육이 폐지되어 잘됐다'는 의견과 '그래도 재능있는 학생들을 기르는 곳인데 폐지하는 것은 아깝다'는 의견이 분분하다. 두 의견 모두 타당하다. 그러나 민사고 폐지를 명문대 입학이라는 결과 관점에서만 논하는 글이 대부분이라, 그 교육의 과정에 대해 논하는 글이 많지 않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민사고에 입학한 학생들이 해외 명문대에 진학하고 서울대를 우습게 본다는 이야기는(사실인지와 관계없이) 그 교육이 어떤 아웃풋을 내는지에 대해서만 논할 뿐, 민사고가 학생들에게 어떤 교육을 행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하고 있지 않은 셈이다. 이 글은 민사고 하위권 학생의 개인적인 경험으로, 민사고의 실험적인 교육이 어떤 시간들을 학생들에게 남겨주는지 공유하는 자료로 남겨두고자 한다.


민사고는 어떤 사람을 교육하는 학교인가?

민사고는 입학생 모두에게 가방을 하나씩 나눠준다. (요즘도 나눠주는지는 모르겠다) 가방에는 '각계각층의 지도자 양성학교'라는 문구가 궁서체로 투박하게 박음질되어 있다. 강원도 산골짜기에 위치한 학교라 수업과 수업 사이 오르막을 오를 일이 많은데, 그럴때면 앞사람의 가방을 멍하니 바라보게 된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매일 각계각층의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에 세뇌당한다는 느낌도 들었다.


각계각층의 지도자라는 말이 다른 사람의 위에 올라서야 한다는 선민의식으로 읽힌 적도 있었다. 분명 민사고의 교육제도 중 어떤 부분은 자칫 사대주의, 엘리트주의로 보일 수 있는 면을 가지고 있다. 평소 생활에서 영어를 꼭 쓰게 만든다거나, 미국 대학 입학을 위한 교과목을 따로 마련한다거나 하는 교육방침을 보다보면 한국 학생들을 미국 명문대에 수출하기 위해 만든 학교인 것 같아 못마땅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민사고 교육에는 엘리트교육 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학생이 직접 수업을 고를 수 있게 하는 수강신청 제도, 학생들이 직접 입법/사법/행정부를 꾸려 학교를 운영하게 하는 자치제도, 마음만 먹으면 예체능 수업으로 꽉 채워도 전혀 상관하지 않는 IR(Indiviual Research) 시간. 위와 같은 여러 장치들은 사실 학생들을 슈퍼 엘리트로 키우려는 욕심에서 나온 제도라고는 볼 수 없다. 오히려 학생 개개인의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하려는 취지로 마련됐다고 보는 편이 적절하다.


학생 구성 역시 다른 특목고와 조금 다른 면이 있다. 외국어에 특화된 학생들을 집중 교육하는 외국어 고등학교, 이공계 심화 커리큘럼을 제공하는 영재고등학교와 달리 민사고는 문/이과 구분 없이 학생을 선발한다. 뿐만 아니라 입학 전형에서 전인적인 역량을 검증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보인다. (민사고는 입학 전 체력 검사를 꼭 실시한다.) 특목고 입시생이었을 당시에도 민사고가 학생의 개성을 특히 중요시한다는 인상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지역 균형을 꽤 신경쓴 느낌도 있었다. 아마 지방 학생이 아니었다면 나는 민사고에 입학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민사고가 키우고자 하는 그 지도자가 당최 어떤 사람인지의 질문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민사고가 양성하고자 하는 그 '지도자'라는 사람은 반드시 어떤 한 분야의 전문가라기보다, 전인적인 역량을 두루 갖춘 사람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런 교육 목표 덕에 3년간 나는 원하는대로 자유롭게 학문의 여러 분야를 탐구할 수 있었다. 고등학생인데도 사회학 수업을 들었고, AP화학 수업도 수강했다.(뒤에서 2등을 해 8등급을 맞았다. 올림피아드에서 수상한 동기가 나를 가르치다 두손 두발을 들었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민사고 하면 학생들을 잠 안 재우고 공부만 시키는 학교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막상 입학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오히려 다른 학교 학생들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동아리 활동/체육/음악 등 공부 외 활동으로 보낸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민사고 교육은 국/영/수/사/과의 교과 과목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았다. 나는 애국심에 관련한 호기심이 생기면 소논문 쓰기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소프트볼에 관심이 있으면 수요일 금요일 오후 다섯시부터는 계속 소프트볼 연습을 할 수 있었다. 만약 민사고가 똑똑한 수퍼 엘리트를 명문대 진학이라는 거대한 목표를 향해 굴리는 학교였다면, 나는 소프트볼 연습을 할 시간에 SAT 문제를 풀고 있었어야 할 것이다. (물론 그런 학생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원하는 방향대로 학교 안의 시간을 보내기를 택했고, 학교는 나의 선택을 100% 존중해주었다. 이는 나를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교육이 아니라, 나를 자율적으로 선택한 결과를 바탕으로 살아가게끔 훈련하는 교육이었다.


민사고에서 교육은 학생에게 무엇으로 남는가?

민사고에서 가장 좋아했던 수업은 글쓰기 수업이었다. 과목은 국어였지만 사실상 철학 시간이었다. 수업 시간에는 철학 개념을 하나 공부하고, 숙제로 A4 한장 분량의 글을 하나 써 오면 됐다. 주제는 자유다.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서로의 글을 익명으로 돌려 읽으며 다른 학생의 글에 대한 자신의 감상을 댓글처럼 남기는 것까지가 수업에 포함되었다. 그게 수업의 끝이었다. 성적은 매 수업 쓴 글들을 배경으로 산출됐다. 인기 많은 글을 쓰면 성적을 잘 받을 수 있었다. 지금도 그 당시 내가 쓴 글을 읽고 깜짝깜짝 놀라고는 한다. 우연과 운명에 대하여, 일상 속 권태에 대하여, 종교적 믿음에 대하여, 고등학생으로서 꽤나 열심히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졸업 후 재수학원에 들어가 접한 국어는 민사고 시절의 국어와 사뭇 달랐다. 내 앞에는 읽어야 하는 국어 교과 과정의 텍스트가 있었다. 수능을 잘 풀기 위해서는 그 텍스트를 빠른 시간 안에 소화하여 최대한 많은 정보를 빼내와야 했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방식으로 그를 표현할 수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정해진 텍스트와 그 속의 정보들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재수학원에서 국어를 제일 잘하는 학생 중 하나였다. 그것은 내가 수능 지문에 나올 법한 텍스트를 삼년 내내 연습해서가 아니라(나는 재수학원에 들어가 관동별곡을 처음 봤다), 민사고에서 꾸준히 읽고 쓰는 연습을 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본인의 주장을 정리하는 연습을 하다 보면 타인의 주장에도 민감해진다. 수능 지문을 잘 풀기 위해서는 수능 지문을 계속 들여다보는 것 보다 여러가지 텍스트를 꾸준히 접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만약 민사고가 자율형 사립고가 아니었다면 학생들은 철학 개념을 바탕으로 한 글쓰기 수업을 듣지 못했을 것이다. 글쓰기 과제만으로 성적을 산출하는 방식은 받아들여지지 못했을 것이다. 평가의 공정성을 위해 글쓰기는 수행평가 항목으로, 성적은 중간고사/기말고사 점수로 산출됐을 가능성이 높다. 자율형 사립고라는 제도에서 학생 뿐 아니라 선생님도 자율적으로 교과 과정을 변형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교육이었다.


민사고 수업은 여러 텍스트를 소화할 수 있는 사고력과 그 텍스트를 기반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기르기에 적합하다. 편하게 말하면 학생들은 3년 동안 '줏대'를 기른다. 난 이렇게 생각해, 넌 아니니? 그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3년 내내 학생들은 결국 어떤 사안에 대해 논리적으로 말하고 쓰는 연습을 하는 셈이다.  


우리는 왜 배우나?

우리가 한 인간을 교육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결국 그 사람이 자유로운 인간으로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게끔 양성하는게 목표라면, 과연 지금의 교육이 모든 학생에게 적합하다고 할 수 있을까? 한국 공교육에 대한 비판은 이제 새롭지도 않다. 우리는 끊임없이 주입식 교육이 학생과 사회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고 불평한다. 고교서열화 완화는 물론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민사고가 폐지되는 것이 우리가 학생들을 교육하는 데 반드시 더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까?


민사고는 단순히 명문대 입학생을 많이 배출하는 엘리트 학교가 아니다. 학생을 전인적으로 교육하는 하나의 대안 교육 실험장에 가깝다. 개성 강한 학생들을 모아 기존 교육에서 벗어난 자율적 교육을 경험하게 해 보자. 학생과 선생에게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여러가지 방법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주자. 그게 결국 한 명의 인간을 지도자로 만드는 방법이라고 학교 측은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어떤 인간으로 자라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각자 자신의 길을 잘 헤쳐나가고 있는 동문들을 보고 있노라면 지금까지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정답은 없다. 고교서열화의 폐혜에 집중하는 사람은 민사고라는 학교가 가져오는 결과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셈이고, 학생의 교육 자율권을 주장하는 사람은 민사고의 교육이 어떤 과정을 통해 학생에게 전달되는지를 더 중요하게 치는 셈이다. 이 글은 교육 과정을 좀 더 강조하고 싶었던 한 졸업생의 정답도 아니고 팩트도 아닌, 그냥 한 쪼가리의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끝으로 남기고 싶은 말은 있다. 민사고에서 보낸 3년의 시간이 복잡다단한 세상을 줏대있게 살아가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는 점, 자신의 판단과 표현력을 믿으며 하나의 고유한 인간으로 자라나는 데 분명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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