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있던 조직에서 나가기까지는 생각보다 많은 사고의 과정이 함께한다. 에잇, 더러워서 때려친다! 하고 나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월급은 많은 사람들에게 유일한 수입원이기에 이걸 포기한다는게 쉬운 일이 아니다. 다시 말해 나가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나의 경우 퇴사를 결정하는 데 어떤 순간의 경험이 영향을 미쳤다 .
때는 2022년 가을 어떤 회식자리였다. 당시 나와 전화 혹은 이메일로 자주 소통하던 주재원이 한국에 방문해 회식을 잡았다. 거래 담당자인 나도 자리에 앉아 삼겹살이 뿜어내는 매캐한 연기를 들이마시고 있었다. 우리 부서 리더들은 상기되어 있었다. 앞으로의 팀 실적을 올리는 데 기여할 사람이 함께 하니 연거푸 술이 들어갔다. 그곳은 좁은 골목길의 삼겹살 집이었는데, 인테리어라 할 것은 없어도 노포 느낌으로 많은 중년 남성에게 사랑받는 곳인 듯 했다. 나는 테이블의 저 끝에 앉아 상기된 그들이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xx 시장 이번에는 잘 키울 수 있지? 이번에 물량 잘 잡아올 수 있지? 진심으로 신나하시는 것 같았다. 회식 분위기가 무르익어가자 주재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여러분 모두 주목해주시길 바랍니다!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환호했다. 한마디 해 주시죠! 벌건 얼굴로 우리 팀원들이 그를 향해 눈을 돌렸다. 그는 약간은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건배사를 시작했다.
"제가 주재원으로 발령받은 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여러분의 도움 덕에 좋은 실적을 쌓아올릴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실적이 두배, 세배 되어서 우리 그룹에서 계속해서 주재원이 나올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다함께 건배합시다!"
나도 신난 척을 하며 건배를 했다. 소주를 탄 맥주잔이 여섯개 부딪혔다. 소맥을 꾸역꾸역 넘겼다. 헤일리씨도 앞으로 열심히 할 수 있지? 네 물론입니다! 밝게 대답도 했다. 그리고 그 즈음에 깨달았다. 아, 나는 우리의 실적이 두배, 세배 되는 것이 관심이 없구나. 이 사람들의 신나고 상기된 마음에 도무지 동화될 수가 없구나. 이 회사에서 잘 되고 싶다고 거짓말을 반복할수록, 그 거짓말을 해야 하는 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는 걸 느꼈다. 잘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잘 하고 싶다고 계속해서 말해야 하는 생활. 관심 없는 목표에 관심 있는 척을 해야 하는 매일매일.
그즈음 나는 일을 하면서 중요한 것이 연봉과 복지보다 의외로 '간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일을 하는 내가 스스로 마음에 들어야 한다는 생각 말이다. 지금 비록 하찮을지라도 이 일의 끝에 되는 무언가가 멋있게 느껴진다면 기꺼이 현재의 고통을 감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의 실적을 두배 세배 늘려서 주재원으로 마침내 발령받는 삶을 꿈꿀 수 있었더라면 나는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주재원을 발령 받아도 그리 신나지 않을 것 같았다. 이런 내가 회사에서 월급을 받고 일을 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모순일지도 몰랐다. 대학교 4학년 취업준비생인 나와 내 친구들은 이제 우리가 꿈을 버려야 할 때가 되었다며, 회사 생활에 몸을 맡기는 것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라고 이야기해왔다. 그러나 꿈을 버리는 건 의외로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했을 때 유용하고 멋있는 것과 멀어진다면, 그 생활은 결국 지속 가능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간지'는 오히려 다른 곳에 있었다. 나는 생계를 위해 일을 하다 학업을 시작한 사람을 동경했다. 선생님을 하다 이론 물리학자가 된 사람의 블로그 글, 헬리콥터를 팔다가 동남아시아 연구를 하러 호주에 간 교수님의 이야기. 그냥 공부하고 싶은 것이 생긴 시점에 미련 없이 하던 것을 그만두고 공부를 하러 간 사람들의 스토리를 좋아했다. 그리고 회사를 다니면서 모두 나처럼 그런 스토리에 감흥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언젠가 회사를 관두고 대학원에 진학하는 일에 관심이 있었는데, 누군가는 회사에서 실적을 올려 주재원으로 멋지게 발령받는 삶을 꿈꾸고 있었다. 모두 이런 고민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 순간 자유로워지는 느낌도 받았다. 아, 이건 내가 가지고 있던 나만의 기준이었구나. 그렇게 자신의 성향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니 못할 이유가 없었다.
맥주 잔을 신나게 부딪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머릿속으로 실적을 잔뜩 쌓아올려 신나하는 모습이 아닌 학위 과정을 마치고 기쁘게 웃는 내 모습을 상상하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간지'는 바로 그런 모습에 있었다. 절벽에서 대롱대롱 잡고 있던 손을 놓듯 나는 대학원 합격증을 받은 날 팀원에게 그만두겠다고 말을 했다. 1년 반이 지났고, 나는 현재 석사학위 논문을 쓰고 있다. 내가 그때 손을 놓아 떨어진 이곳은 척박한 사막이었을까, 아니면 찬란한 호수였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가 없다.
분명한 사실은 별로 큰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학업을 시작했노라 이야기하는 나를 대놓고 비난하거나 멸시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렇다고 대단히 칭송하거나 멋지다고 해 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냥 나는 나대로 살아갔다. 대학원의 한 연구실에 들어가게 되었고, 연구 과제를 하나 맡게 되었고,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으며 살아가게 되었다. 놀랍게도 쥐꼬리만한 월급으로도 생활이 가능했다.
나는 회사를 떠나는 일이 많은 모범생들에게 코페르니쿠스적 발견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이들이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세상은 가만히 있으며, 우리는 그 주위를 회전목마처럼 돌고 있다. 세상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아낌없이 줄 뿐, 나에게 큰 관심은 없었다. 나는 그냥 나에게 주어진 것을 누리고 내가 생긴 모양을 잘 찾아가기만 하면 되었다. 어떤 억울함도 분노도 없이 평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