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이 지났다

1994년부터 2020년까지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by 헤일리

딸이 스물 일곱이 되던 해


아버지는 어느때와 다름없이 TV 속 전쟁에 빠져 있었다. 기괴하고 현실에 없을 것 같은 이야기를 좋아하는 그는 주말이 되면 어김없이 하루 종일 TV를 시끄럽게 틀고 좀비물에 빠지고는 했다. 일주일 중 5일간 쉴 틈 없이 일하는 사람을 두고, TV를 좀 그만 보라며 말릴 수 있는 가족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가정의 안락한 이불 같은 존재였다. 딸은 덕분에 고등학교 3학년 때는 도서관에 가면서 아무 생각 없이 빵을 사먹을 수 있었다. 스무 살에는 고민 없이 대학을 고를 수 있었다.


그는 산업화 과정의 한국과 온몸으로 부딪힌 노동자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석유화학 공장에 취업해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을 받으며 27년간 일만 하고 살았다. 딸이 태어나고부터 한번도 그는 일을 쉰 적이 없었다. 그의 인생은 스물 일곱살의 딸 하나, 스물 네살의 아들 하나, 해운대의 집 한채를 남겼다. 다른 것은 어떤가? 약 20kg의 살, 하루도 쉬지 않고 담배를 피워대 망가져버린 폐, 그리고 좀비물 중독 정도일 것이다. 아마 스물 일곱 해 동안 회사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으니 회사 생활과 관련한 눈치나 지식도 확실히 늘었을 것이다. 그러나 퇴직 이후에 그걸 과연 쓸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아마도 뉴스를 보며 아는 척을 조금 할 수 있을 뿐이겠지. 그리고 그 뉴스를 진행하는 사람들도 아주 운이 좋지 않은 이상, 쉰 네살에 아마 일을 그만두고 또다른 뉴스를 보는 퇴직자가 되어있을 것이다. 일을 그만둔 이후 가장 쓸모 있는 것은 좀비물에 대한 지식일 거라고, 그는 막연히 생각하고는 했다.


그렇다면 그가 석유화학 공단으로 매일 아침 여덟시 반에 출근하고 저녁 여덟시 반에 퇴근하는 동안, 그의 스물 일곱살 딸에게는 무엇이 남았나? 어릴 적 꽤나 머리가 좋다는 이야기를 듣던 그녀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해 무역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그간 27년동안 대학 교육, 구김살없이 자라 얻게 된 쾌활한 성격, 그리고 대학 시절 만난 조금 똑똑한 친구들이 아마 남았다. 그녀는 매일 여덟시까지 출근하여 오후 다섯시 반이 되면 칼같이 퇴근한다. 그렇게 일찍 퇴근하면 상사로부터 미움을 받을 거라는 아버지의 말에 "상관없어, 어차피 3년만 다니고 그만둘 거니까" 라고 대꾸하고는 한다. 아버지가 일한 세월의 약 10%만을 노동에 바치겠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그녀를 두고 미운 마음이 치솟지만, 아버지로서는 뭐라 말을 꺼낼 수가 없다. 하루종일 일하며 20kg의 살과 망가진 폐를 감수하라고 말하기엔 그녀를 향한 사랑이 너무 깊었다.


세상이 변하는 동안 우리에게 남은 것


1994년과 2020년 사이에는 무엇이 남았나? 끊임없이 일한 사람들은 집을 샀고, 그 집값은 예외없이 올랐다. 자산가격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속 386세대의 자녀들은 풍요롭게 자라났다. 딸은 어머니가 감히 상상하지도 못했던 영어 학원이라는 곳에 다녔고, 바나나를 간식으로 먹었으며, 국립대가 아니더라도 서울에 있는 대학엘 갈 수 있었다.


chart (1).png 출처: 한국부동산원


그러나 오히려 과도한 교육이 독이 된 것일까, 386 세대의 자녀들은 아버지 세대처럼 살기를 거부하고 있다. 그녀는 한 직장에서 평생 일하지 않을 것이며, 노동이 아닌 자아실현을 꿈꾼다. 심지어는 노동의 가장 큰 이유였던 가족을 형성하는 일 조차도 망설이고 있다. 27년 동안 한국 사회를 이끌어왔던 성장, 노동, 가정이라는 큰 기틀이 무너지고 있다. 삼성, 대우, 현대가 탑이었던 구직시장엔 네이버, 카카오, 배달의 민족이 들어섰다. 여자들은 더이상 남자의 배우자로만 자신을 한정짓지 않는다.


27년동안 세상이라는 그림이 바뀌었다. 아버지 세대는 은퇴를 앞두고 있는데, 자녀 세대는 더이상 아버지들처럼 일하기 원하지 않는다. 노동시장의 지형, 가족의 모습, 삶을 살아내는 태도가 모두 변한다. 옛날 생각은 답답하고, 옛날 방식으로는 더이상 돈을 벌 수 없다. 옛날식 사랑은 딸에게 닿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인가? 추억? 통장에 꽂혀 있는 돈과 반토막이 난 주식? 나를 닮은 자식과 늙어버린 나의 친구들?


남아 있는 나날


행복하고 그래서 끔찍한 사실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지나온 만큼의 시간이 더 남아있다는 것이다. 한국 남성의 기대수명은 79세, 이제 쉰 넷의 아버지에게는 아직 딸 하나를 더 길러낼 만큼의 시간이 남아 있다. 중년이 노인이 되고 청년이 중년이 될 동안, 세계는 또 한번 격동할 것이다. 자신을 지킬 틈새도 없이 노동은 일상을 침투할 것이다. 환경은 파괴되고 사랑의 방식 또한 변할 것이다.


딸은 고민한다. 하기 싫은 일을 3년간 한 후 남은 23년의 시간 동안, 그리고 세계가 내가 예측하는 방식과는 전혀 다른 모양으로 바뀔 동안,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아버지처럼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 좀비물을 보다 보면 나에게도 멀쩡한 집 한채와 똘똘한 아이들이 있을까? 아니, 내가 애초에 똘똘한 아이들을 가지면서도 아파트를 얻을 정도의 월급을 모을 수 있을까? 애초에 내가 원했던 게 아파트와 아이들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녀는 세기의 역작을 써낸 소설가와, 요트를 몇십대 가지고 있다는 자산가의 여름 휴가를 떠올린다. 명품을 몸에 휘감고 다닌다는 유명 래퍼의 3살배기 딸의 인스타그램 사진이 스쳐 지나간다. 불현듯 중학교 시절부터 매일 도서관에서 포스트잇을 붙이며 해왔던 공부가 무엇을 위해서였는지 알 수 없어짐을 느낀다. 우리 가족은 어쩌면 좀비 영화를 좋아하는 것이 아닌 좀비 그 자체는 아니었을까, TV 속에서 오늘도 괴상한 울음을 짖어대는 좀비를 보고 그녀는 지금 당장이라도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지 고민에 빠진다.


인간의 세포 하나에는 인류의 모든 역사와 지식이 담겨 있다고 했던가, 그녀는 자신이 살아온 27년의 세월이 마치 인류 전체의 역사를 다 담고 있는 것처럼 느끼기도 했다. 찰나의 참을 수 없는 가벼운 순간들이 쌓여 이렇게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기시감을 느꼈다. 아버지와 딸의 행복한 미래는 있을까, 언제 붕괴할지 모를 자산가격의 늪에서 우리는 안정적인 의식주, 그리고 그 이상의 행복과 인생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까. 좀비물을 보다 어느덧 코를 골고 있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던 그녀는 유튜브를 틀어 고양이 동영상이나 시청하기로 결심한다. 눈과 귀를 자극적인 무언가로 채워야만 이 모호함이 사라질 것을 안다. 남아 있는 나날에 어쩌면 우리에게는 회한과 후회만이 남을 수도 있겠다는 불안한 예감을 잊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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