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최전선> 은유
책을 읽으면서 문장에 밑줄을 긋는다. 한 권을 다 보면 독서노트에 책 제목과 저자 이름, 읽기 시작한 날짜와 마지막 장을 덮은 날짜를 기록한다. 밑줄 그었던 문장도 옮겨 적는다. 마지막으로 내 소감을 짧은 문장으로 적고 주관적인 별점을 매긴다. 나만의 독서노트가 만들어진다. 한 권씩 읽은 책 목록이 늘어갈 때 느끼는 뿌듯함은 덤이다.
이렇게 독서노트를 적는 과정 중 가장 많은 시간이 걸리는 건 밑줄 그은 문장을 정리하는 일이다. 책을 읽다 마음에 드는 구절에는 꼭 밑줄을 긋는다.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거나, 나중에 내 생각을 덧붙이고 싶은 문장들이다. 읽는 중에 밑줄칠 땐 그 양이 별로 안 되는 것 같은데, 막상 다 읽고 확인해보면 생각보다 많은 양에 놀란다. 놀란만큼 좋기도 하다. 그만큼 생각할 거리가 많아졌다는 거니까.
오늘 아침에도 눈을 뜨자마자 짧은 요가를 마치고 따뜻한 커피를 한 잔 준비한 뒤 책상에 앉았다. 노트북을 켰다. 왼쪽에는 전자책 앱을 켠 아이패드를 두고 어제까지 읽은 책을 다시 열었다. 최근 며칠 안에 읽은 책인데도 내용이 가물가물하다. 밑줄 그은 문장을 한 문장씩 눈으로 훑는다. 읽는 중에 했던 생각들이 알아서 다시 떠오른다. 반복하여 문장을 읽고 생각을 곱씹는다. 가끔 멍하게 책상 너머 창 밖을 본다. 다시 노트북 자판 위의 손가락들을 움직인다. 타닥타닥 소리를 들으면 마음도 차분해진다. 한 시간, 두 시간이 쉽게 지나가버린다. 두리뭉실했던 책의 내용이 조금 더 선명해졌다.
요즘도 글이 안 써질 때, 심심할 때, 심란할 때, 책에서 본 한 줄 잠언에 전율할 때, 인터넷 댓글에서 삼라만상의 진리가 읽힐 때, 유독 그 단어가 섹시해 보일 때, 수첩을 펴고 노트를 열어 그대로 따라 쓴다. 긴 글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는 일종의 백팔 배를 하는 심정과 비슷한데 의식의 따라감은 없고 관절의 움직임만으로 시간이 채워지는 충만함이 좋다. 군더더기 없으면서도 빠뜨린 것 없는 지적인 글의 권위에 압도당하는 기분이 달콤하고, 멋진 글을 보면서 모처럼 질투심과 소유욕에 휩싸이기도 한다.
<글쓰기의 최전선> 은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