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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iley Aug 22. 2023

쉰다는 것에 대하여

하루종일 누워서 주말을 보내면 우울하지 않나요?

금요일 퇴근을 하자마자 영화관엘 갔다. 엘리멘탈을 보면서 눈물 콧물 다 짜고 나와 근처 마트에 들려 두 손 무겁게 장을 보고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마트에서 구매한 불고기를 열심히 구워 저녁을 먹고, 먹자마자 설거지를 하고 씻고 책을 읽기 위해 앉았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 참 잘 쉬었다. 

나는 오늘 쉰 건가? 나는 오늘 일을 했고, 굳이 영화관까지 가서 영화를 봤고, 두 손이 무겁도록 장을 봤고, 또 불 앞에서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씻었다. 나는 오늘 쉬었는가?


'쉰다'는 건 무엇일까? 어떤 행동이나 모습이 쉰다는 걸까?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주말 내내 손가락 까딱할 기력도 없어서 하루종일 누워서 넷플릭스를 보면서 주말을 다 보냈다. 월요일 출근 후 동료에게 주말에 넷플릭스 보면서 시간을 낭비해서 기분이 좋지 않다고 했더니 동료가 "그게 쉬는 거 아니야..? 그렇게 쉬고 나면 너무 뿌듯하지 않아..?"라고 하는게 아닌가! 동료의 그 말은 개인적으로 내게 굉장히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는 '오늘은 끝내주게 누워있어야지!' 라고 각오를 하고 시작하더라도 오후 5시부터 물리적으로도 머리가 아프고, 심리적으로도 현타가 오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잠들기 전에는 굉장한 우울감에 몸부림치며 오히려 더 잠이 더 안오거나 잠으로 도피하게 되곤 한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우리 부모님의 주말 풍경에서도 항상 발견할 수 있는 것이었기에 나는 '원래 사람은 누구나 하루종일 누워있으면 머리가 아프고 우울해지는구나'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세상에 그걸 정말로 뿌듯하게 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니!


그렇게 쉬는 날 저녁 무렵이면 항상 우울감이 찾아오다보니 '도대체 난 어떻게 쉬는 날을 보내야할까?'라는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모처럼 쉬는 날인데도 평일처럼 회사에 가거나 하루종일 운동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도대체 무얼해야 우울감이 찾아오지 않을까 고민했다. 그러다가 왜 애초에 나는 하루종일 끝내주게 누워있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건지에 대해 궁금해졌다. 언젠가부터 집순이, 집돌이란 단어가 유행하기 시작하고 직장인의 주말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마치 미덕같이 여겨지는 분위기가 감지되기 시작한 시점이 있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평일의 삶에 지친 직장인들의 자연스러운 주말 생활이었겠지? 그래서 나도 자연스럽게 내가 직장인이 되면 더 이상 학생 때나 취준생 때처럼 평일과 주말 구분 없이 목표를 위해 매일 뛰어야 하는 삶을 살지 않아도 되므로 이를 누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여러번의 현타와 우울감을 느끼며 깨달은 것은 나는 그런 식으로 쉬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 후부터는 한동안 주말인데도 열심히 무언가를 하려고 노력했다. 주말마다 약속을 잡은 적도 있었고, 영어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으려고 카페나 도서관에 간 적도 있었고, 뒷산에 가거나 집 앞 산책로에서 만보를 걸은 적도 있었다. 그렇게 지내다보면 확실히 침대에만 있는 주말보다는 덜 우울했는데, 또 어느 순간부터는 주말에까지 해야할 것을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또 다른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은 그 두가지를 적절하게 섞고, 최대한 나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여 행동하려고 노력하면서 쉬는 날을 보낸다. 뒹굴거리고 싶은 날에는 밥도 안 먹고 내내 누워있기도 하고, 그러다가 머리가 아프기 시작할 느낌이 오면 귀찮음에 몸부림치더라도 대충이라도 옷을 갈아입고 30분이라도 걷다오자며 나가거나 책을 챙겨들고 카페에 가는 식이다. 그렇게 잠깐이라도 밖에서 무언갈 해내고 집에 돌아오면 하루를 비생산적으로 보냈다는 자괴감도 덜하게 된다. 


그동안 우리는 열심히 사는 것에 대해서는 충분한 이야기를 해왔던 것 같다. 나도 내가 어떻게 열심히 살 때 가장 만족을 느끼는지는 상대적으로 잘 아는 편이다. 그러나 우리는 열심히 사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큼 잘 쉬는 것에 대해도 이야기할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쉬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부족하여 모두가 너무 단편적인 방법으로만 쉬는 것을 알고 있지는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내가 그동안 나에게 맞지 않는 방식으로의 쉼을 선택한 것이 아니었을까? 


물론 나는 아직까지 내게 어떤 방식으로 쉬는 것이 정답인지 잘 모르겠다. 저렇게 다양하게 시도하는 방식도 항상 잘 되는 건 아니다. 어떤 날에는 나가야 하는 걸 알면서도 뭉개져 누워있다가 어김없이 현타를 맞곤 하고, 또 어떤 날에는 그래도 나갔다가 정신적, 체력적 한계를 느끼고 비척대며 다시 집으로 금방 돌아와 쓰러지기도 한다. 그런 순간마다 '열심히 사는 것보다 잘 쉬는 게 더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나는 여러 방식으로 계속해서 다양한 쉼을 시도하며 내게 제일 잘 맞는 쉬는 방식을 찾아가고 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사람들과 함께 각자의 '쉼'에 대해서 의견을 나눠보고 싶다. 사회 전반적으로 만성 번아웃을 앓고 있는 상황에서 나는 이제 우리가 쉼에 대해서 더 많은 의견을 나누고, 쉼의 방식을 다양화 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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