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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iley Dec 05. 2023

수박 겉핥기 같은 관계의 필요성

각자의 상처와 비밀을 공유해야 깊은 관계가 되는 걸까요?

나는 글에서 내 얘기를 하는 것만큼 말로 내 얘기를 하는 걸 참 좋아한다. 친구 중에 한명은 그런 나를 보고 참 잘 '쫑알쫑알' 거린다고 표현했었다. 누구든 그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 시간들 중에 에피소드화가 될만한 일에 대해 쉬지 않고 계속해서 떠드는 내 모습을 본 친구의 반응이었다. 가끔은(혹은 더 자주) 떠들고 싶어서 친구들과 약속을 잡기도 한다. 나이가 들면서 이런 생각이 좀 이기적인 것 같아 친구들과 시간을 보낼 때 입을 놀리기보다 친구들 얘기를 더 많이 들으려고 노력하고 있기도 하지만.


항상 궁금했다. 내가 말이 많은 편이기에 나는 내 주변 사람들이 본인의 이야기를 쉽게 꺼내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으므로 나는 그들과 다르게 왜 이렇게 말이 많고 말 하는 걸 좋아하는 것일까? 고민했었다. 어렴풋이 추론해 본 첫번째 이유는 나는 지독한 회피형으로서 보통 내게 일어난 일을 잘 파악하지 못하는 편이라는 것이다. 내게 일어난 일로 인한 나의 상태나 기분이 어떠한지, 내가 어떤 반응이나 행동을 해야하는지를 잘 알지 못한다. 예를 들어, 나는 몸살이 나도 잘 모르고 일상을 버텨낸 다음 몸이 괜찮아지고 나서야 '아, 내가 그 때 확실히 아프긴 아팠구나.' 새삼 깨닫는 편이며, 심지어 번아웃이 와도 그 번아웃이 지나고 나서야 '오, 내게 번아웃이 왔었구나!'하는 편이다. 어릴 땐 이게 내가 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보통 자신의 감정이나 상태를 쉽게 파악하지 못하고 외면하는 특성이 성인 애착 유형 중 '회피형'에게서 특히 발현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 나는 보통 내게 일어나는 상황이 정확히 무엇인지 파악이 되지 않을 때 주변에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얘기를 하는 과정에서 내 생각이 정리가 되기도 하고, 상대방의 반응이나 조언을 듣고 알게 되는 점도 있으며, 또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내 내면의 솔직한 목소리를 듣기도 한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이렇게 나의 결정을 남들에게 의지하는 내 모습이 싫기도 하고, 주변 지인들에게도 가끔은 너무 크게 빚지는 느낌이라 최근에는 그냥 묻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려고 노력하고 있긴 하다.


또 두번째 이유는, 이 이유가 첫번째보다 더 핵심적인 것 같은데, 나는 서로의 일상이나 비밀, 생각을 공유해야 친한 것이라고 느끼는 편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에게나 다 쫑알거리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낯을 많이 가리고 선이 분명한 성격으로 개인적으로 '내 사람'과 그 외 사람으로 나뉘는 그 선이 특히 분명한 편이다. 보통 내 사람으로 분류되지 않는 사람에게는 나의 개인적인 그 어떤 것에도 입을 열지 않는 반면, '내 사람'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에게는 TMI일지라도 우리집 숟가락 갯수가 몇 개인지까지 오픈하는 편이다. 이처럼 서로 비밀을 몇 개나 공유하고 있는지가 관계의 친밀도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다보니, 나는 내가 '내 사람'으로 분류하는 사람 모두에게 나의 에피소드를 공유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보통은 내게 일어난 일을 누군가에게 카톡으로 보내어 공유를 하면, 그 화면을 캡처해서 또 다른 친구에게도 공유하는 식으로 유난히 모두에게 나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에 집착하곤 했다.


그러나 나의 이런 특성은 30대에 들어선 후 나를 당황하게 한 순간을 여럿 만든다. 보통 매일 보는 것이 일상이며, 주변에 사람이 많아 내게 맞는 특정인들을 만날 기회가 더 많은 10대와 20대 대비 30대는 이미 10년을 넘게 본 돈독한 관계 외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것이 힘들기에 이미 있는 관계를 계속해서 유지해나가야 했지만, 그마저도 서로 바쁜 탓에 일정을 굳이 맞춰서 만나지 않으면 같은 일상을 공유하기에는 어려웠다. 이런 이유로 가끔 같은 이야기를 전하더라도 이미 나와 생각하는 결이 비슷하고, 오랫동안 꾸준히 자주 만나왔던 친구들과 다르게 내가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 나오는 경우가 더러 생기기 시작했고, 처음에 나는 그런 반응을 하는 지인들에 외려 내가 더 당황하곤 했다. 20대의 나였다면, 그런 당황스러움에 그들과 자연스레 연락을 끊었을테지만, 30대의 나는 이제 더 이상 그런 이유로 누군가를 끊어내고 싶지 않기도 했거니와 그런 식으로 끊기에는 그와의 쌓은 추억과 시간이 아깝기도 했다.


이런 일이 계속되던 어느 날, 막연히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왜 애초에 나는 왜 우리가 꼭 우리 안의 깊은 비밀을 나누어야만 친한 관계가 된다고 생각했을까. 수박 겉핥기 같은 이야기일지라도, 혹은 정말 의미 없는 농담 따먹기 같은 이야기일지라도, 우리가 함께 웃고 재밌게 보냈던 시간이 있다면 그 관계는 그 자체로 이미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각자가 각자의 마음 속 상처나 비밀이나 고민을 꺼내놓더라도 이미 이 사회에 바쁜 사회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모두 제 손톱 밑의 가시가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일뿐인텐데 말이다. 특히 그런 생각이 들고 나서 더더욱 내 얘기를 공유하는 행동을 그만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어차피 내 얘기를 더하지 않아도 그들 모두 그들 각자의 짐을 짊어지고 버티고 있으니 충분히 힘들테니.


더 나아가, 더 이상 나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끊어내지 않는 성숙한 어른으로 자라나고 있던 나는 모든 이에게 나의 이야기에 대해 모두 같은 반응을 기대하는 마음 자체를 접기로 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더 이상 같은 일상을 공유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각자가 바라보는 세상은 아마도 천지차이일 것이고, 그 시선에 따라 나의 이야기는 굉장히 다양하게 해석될 것이다. 지금보다 어린 나는 나의 이야기를 그렇게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들을 쳐내면서 살아왔다면, 지금은 나는 오히려 그 다른 시선을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오히려 그 시선에서 배우는 것도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최근에는 모두에게 같은 이야기를 천편일률적으로 공유하는 행위를 그만두었다. 내가 '내 사람'이라고 분류하는 그룹에는 나와 말 그대로 10대부터 같이 커온 친구들부터 이미 머리가 클대로 다 커서 회사에서 만난 인연들도 있다. 이렇게 나와 공유한 시간이 각자 다른 인연들에게 같은 이야기를 전하고 같은 반응을 기대하기보다는, 그 관계의 특성에 따라 어떤 관계에서는 정말 깊은 얘기까지 나누는 시간을 가진다면, 또 다른 관계에서는 가볍게 하하호호 웃고서만 끝나는 이야기만 나누는 방향으로 다변화 하는 편이 각 관계의 개성과 특성을 더 살려서 즐기기에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혹자는 인생에 친구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존재라고도 하지만, 내게는 여전히 친구들이 주는 즐거움과 깨달음, 위로가 정말 크다. 그래서 내 주변의 '내 사람'들을 얇게 오래오래 보며 앞으로도 많은 추억을 함께 공유하고 쌓고싶다. 그리고 나 또한 그들에게 즐거운 시간을 주는 좋은 친구가 되고 싶기에 나는 앞으로도 다양성을 좀 더 포용할 수 있고, 입을 닫고 귀를 더 여는 어른이 되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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