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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iley Feb 03. 2016

만약 접대비 항목이 없어진다면 어떤 사회가 될까요?

상상해봤습니다. 기업 회계 기준에서 식음비를 아예 인정하지 않는다면?

아리랑TV 방사장님의 법인카드 사용내역이 요즘 이슈죠? 전 회계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지만 예전에 건설사에서 신입사원으로 2년 근무하면서 보아온 것들, 그리고 현재 스타트업 CEO로서 직접 회계/세무 업무를 처리하면서... 이런 상상을 해봤습니다. 만약 음식점이나 술집에서 쓴 돈을 전혀 회사 경비로 처리해 주지 않는다면, 즉, 접대비, 그리고 복리후생비에 음식점, 유흥업소, 카페 등 모든 식음비를 회사 경비로 인정하지 않는 새로운 회계 기준을 도입하여 실제로 지켜진다면 어떨까 하구요.


처음 몇년 간, 어쩌면 매우 오랫동안은 기존의 업무방식 때문에 직원의 사비를 들여서라도 카페에서 커피 한 잔 하면서 일 얘기를 하고, 음식점에서 식사와 반주를 하고, 유흥업소에서 업무의 연장을 하겠죠. 그러나 월급이 많이 오르지 않는 이상 점점 부담스러워질 거고, 대면 업무가 점점 줄어들지 않을까 싶어요. 직원들 입장에서는 이메일이나 전화로 하거나 아님 업무만 간단히 얘기하고 헤어져도 일을 할 수 있으면 그 돈 아낄 수 있어서 좋겠죠. 물론 꼼수의 대마왕들은 어떻게든 다른 비용을 우회 사용할 방법을 찾아내겠지만 예전처럼 접대비 한도에 맞춰 카드 몇 개씩 나눠서 몇백만원 어치를 결제하는 꼼수는 못 쓰겠지요. 직원이 직접 그 비용을 결제해야 한다면 영업 실적에 따라 몇억대 연봉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면 최대한 그런 자리를 피하게 될거구요.


직원들 회식 자리에서 쓴 음식 값, 술 값도 전혀 비용으로 인정하지 않게 된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그에 해당되는 부가세 10%를 돌려받지 못하고 + 소득세 공제받던 부분 (매출 규모에 따라 10-22%)도 내야 하므로 예전에 비해 세금 부담이 최고 32%까지 늘어나게 됩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회식 자리도 줄게 되고, 회식을 하더라도 일찍 끝나게 될 수도 있겠죠. (물론 한참 지나 익숙해지면 그 정도 세금 손해 따윈 신경 안 쓰게 될 수도 있을까요? ^^)


회식과 접대가 줄어들면 일단 와이프나 자녀들에게 일 특히 접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저녁 먹고, 또는 술 마시고 늦게 들어간다고 하는 핑계거리 대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러면 또 친구들이랑 사적으로 술 먹는 자리인데도 일 하고 있다고 뻥 치기가 어려워지구요. 그러면 전에 주5일 밖에서 식사를 하고 (보통은 반주 또는 2,3,4차) 들어가던 것이 그 횟수가 1-3일 정도로 줄어들 수 있을 거에요. 술이란 게 또 버릇이라 처음에는 금단 현상이 오겠지만, 회식이나 접대자리에서처럼 마구 들이부어면서 비용 걱정 없이 시킬 수 있는 상황이 안 만들어지다보면 알코올 소비가 줄 거고, 자주 안 마시면 예전처럼 술을 많이 마시는 능력도 퇴보하게 됩니다. 얼마 시간이 지나면 술이 술을 불러서 먹는 상황이 좀 줄겠죠.


식음비를 일절 인정하지 않게 되면 비지니스를 상대로 하던 음식점, 유흥업소가 폭삭 망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사비 내고도 먹을 만한 곳들만 살아 남던가요. 그러면 자연스레 친구 만나면 1차 밥 먹으며 반주하고 2차 술먹고 3차 단란주점 가고 4차 더 좋은데 가고 하던 습관을 지키기가 어려워지겠죠. 갈 곳이 없으니까요.


모든 직원들이 예전에 비해서 회식, 접대를 하지 않게 되어 집에 일찍 들어가는 일이 잦아진다고 칩시다. 그러면 처음에는 가족도, 직원도 괴로울 거에요. 왜냐면 같이 시간을 보내는 법을 연마하지 않았으니까요. 어쩌면 이미 밥과 술이 사교생활의 전부로 굳어져 버린 20대 이후 세대는 영원히 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할 지도 몰라요. 그러나 시간이 많아진 가족들은 어떻게든 그 시간이 덜 괴롭게 될 지 고민하다가 해결 방법을 어느 정도는 찾을 겁니다. 그러면 이게 또 습관인지라, 그게 또 재밌어져요. 공동의 취미가 생길 수도 있고, 좀 더 서로의 생활에 대해 자세히 알면서 더 큰 것들에게도 관심을 갖게 될테구요. 직접 아이들의 공부를 가르쳐 줄 수도 있고, 커가면서 갑자기 뚝 하고 단절되어 버리는 일도 덜 생길 거구요. 상사가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쓸데없는 야근을 하지 않고 일찍 들어가면 팀원 전체가 일찍 들어갈 분위기가 되겠지요.


20대 때부터 사회 생활의 준비 일환으로 술을 강요받는 게 제 대학생활의 현실이었습니다. 그러나 밥과 술이 아니더라도 더 의미 있는 인간관계를 만들어 가는 방법을 어릴 때부터 터득한다면 조금 덜 공허한 삶을 키울 수 있지 않을까요. 자신만의 취미, 자신만의 철학 이런 것들이 어릴 때부터 생기면 커서도 사회에 끌려다니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이런 사람들이 가정을 만든다면 가정이 더 즐겁고 행복해서 출산율에도 도움되지 않을까요? 북유럽 어딘가에서 정전이 오랜시간 되었을 때 아기들이 갑자기 많이 생겼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다른 자극적인 놀거리가 별로 없다면 자연스레 집에서 시간을 더 많이 보내게 되고 그러면 (물론 많은 다른 요소가 있지만) 꽁닥꽁닥하다가(히히) 출산율이 높아질 수도 있습니다. 육아에 쏟을 시간이 좀 더 많아져서 덜 부담스러워질 거구요.


사실 오랫동안 밥과 술로 인간관계를 형성해왔던 우리에게 식음비를 회사 비용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건... 아마도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사회적 변화일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작은 핀 하나를 뽑아버림으로써 얼키고 설킨 많은 사회적 현상들을 한꺼번에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이상주의자인 저는 꿈꿔 봅니다.






추신

* 모든 회사들이 제가 겪은 것 같은 상황도 아니겠지만 제가 관찰한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상상했습니다

* 회계/세무에는 많은 요소들이 있을테고 저는 잘 모릅니다. 그치만 식음비가 작지만 모여서 굉장히 많이 나간다는 사실, 그리고 그게 판관비로 들어가서 글로벌 회사들에 비해 우리 기업의 마진율이 낮은 요소로 작용한다는 기사를 참고했습니다. (샤오미와 삼성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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