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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록 Jan 19. 2022

비로소 내가 선택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나의 인생은 이 곳 호주에 오기 전과 후로 나뉘었다. 환경이나 나의 직업의 변화를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고 나의 마음가짐이 달라졌다는 이야기인데, 쉽게 말하면 움츠러있던 마음이 펴졌달까.

내가 한국에서 짧게 다녔던 회사는 인성검사와 mbti로 채용의 여부를 결정할만큼 사람의 성향 테스트를 중요시하는 회사였다. 그래서 나는 이른 나이에 나의 성향에 대해서 빠르게 파악했다.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라는 걸 테스트를 통해 알긴했지만 글로 보는 나의 모습은 크게 와닿지가 않았다. '나는 끈기가 없고 재밌는걸 추구하는 사람이구나.' 정도로만 알고 있었지 실제로 나에게 크고 작은 경험들이 많지가 않으니 나를 잘 알지 못했다고 해야할까.

이 이유에는 가정환경의 영향도 있었다.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해야한다는 압박감과 보란듯이 사회적으로 성공해야한다는 사고방식이 내 안에 잠재적으로 주입되었던 것 같다. 내 성향이 어떻든 간에 내가 해야할 일은 좋은 회사에 가는 것이었고, 주변인들에게 당당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지는게 나에겐 주 목표가 되었다. 회사를 퇴사하고 아무런 흥미가 없는 공기업에 가려고 준비했고, 재미가 일순위인 나에겐 정말 그 길이 고행길만큼이나 버거웠다. 그렇지만 계속했다. 스펙왕이 되기위해 자격증을 끝없이 준비하고 아득하게 보이지도 않는 끝지점을 향해 달렸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미련하고 멍청한 짓인지 지금에서는 알겠다.

재무관리 인강이 죽도록 듣기 싫던 어느 날, 남자친구의 최종합격 탈락 소식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그냥 해외로 갈까?' 막연하게 생각했던 해외생활이었지만, '해외생활에 대한 관심과 재미'라는 작은 불씨는 순식간에 커졌다. 정말 거기에 빠져서 나는 2주동안 방구석에서 밥먹는 시간도 아까워하며 해외로 갈 계획을 세웠다. 내 인생의 갈림길에서 자발적으로 선택한 건 아마 그 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 때의 나는 호주로 도망쳐온 것이지만, 지금의 나는 그 때 나의 선택이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감히 말하고싶다. 그 이유는 이후로 나는 내 스스로 선택하는 삶을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의 기대에 부응해야 할 필요도 없고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내가 하는 것을 언제나 응원해주는 남자친구는 나의 이런 습관을 만드는데 고맙게도 큰 도움이 되었다. 대학시절까지 거의 공부빼고는(그렇다고 공부를 뛰어나게 잘하는 것도 아니지만) 해본 적이 없었고 고작해야 짧은 직장생활이 내 사회생활의 전부였다. 공부를 잘해야 먹고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나는 지금 공부와 전혀 관련이 없는 바리스타 일을 하고 있다. 누군가에겐 별거아닌 아르바이트일 수 있겠지만 나에겐 이 직업이 내가 원하는 삶을 걷는 하나의 과정이다. 사람들과의 갈등 속에서 부딪히며 싸우고 울고 불고 난리를 치면서 나는 정말 많이 단단해졌다. 더이상 일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아도 크게 눈물이 나지는 않는다(눈물이 워낙 많은 편). 그리고 어떤 어려운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는 대처능력과 여유로움이 생겼다.

서른 살을 한 달 남기고 호주로 오면서 나의 20대를 돌이켜봤을 때 나는 20대를 알차게 보냈다고 말 할 수 가 없었다. 열심히 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나의 노력들이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한국에 있을 때는 30대에도 인생이 크게 바뀔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는데, 이 곳에서의 나는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이제서야 8년 전에 했던 그 성격검사의 모습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내가 되었다.

아직도 나는 하고 싶은 게 많다. 뭐든 빨리 식는게 나의 성향이지만 어제 읽은 책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했다. 뭐라도 해보고 부딪히면서 분명 얻는게 있으리라 생각해본다. 또 다른 하고싶은 것을 계획하기 전에 이렇게 끄적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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