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장 > 꿈이 있어 다행입니다.
“선생님 얘가 중간에 쉬는 거 봤어요.”
“그래? 그렇다면 실격이다.”
억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꼴지도 못한 실격처리가 된 것이었다.
4학년 때 쯤 시작한 수영은 제법 소질이 있었는지 선수반까지 했다. 물론 수영 선수를 꿈꾼 것은 아니었다. 그냥 수영하는 아이들 중에 제법 잘하는 축에 낀 것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왜냐하면 진짜 선수를 꿈꾸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정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수반 생활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시 내가 다녔던 수영장은 25m 길이로 한 바퀴 돌면 50m인 거리였다. 대체로 하루에 2000m 즉, 40바퀴 씩을 돌 곤 했는데, 어쩌다가 3000m를 하고 나면 물 속에 있지만 땀이 줄줄 흘렀고, 살이 벌겋게 될 정도였다. 어른이 돼서 어쩌다 한 번씩 자유 수영을 가곤 하는데 한 바퀴만 돌아도 헥헥 거리는 지금과 비교하면 실로 어마어마한 운동량이었다. 4가지 종목 중에서 내 주 종목은 평형이었다. 지금도 포즈는 선수 못지않다.
하지만 축농증에 걸리는 바람에 수영은 관두게 됐다. 의사 선생님이 더 이상 수영장에 가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씀하시는 바람에 끊을 수밖에 없었다. 수영 선수 할 것이 아니었으므로 엄마는 단호했고, 나 역시 고된 연습에 지쳤기 때문일까. 자연스럽게 축농증을 핑계로 관두게 되었다.
당시에는 대회에 나갈 일은 없었다. 그러다가 중학생이 되었는데, 그 학교가 나름 수영을 주 종목으로 내세우는 학교였다. 수영에 대한 전통은 있는 학교가 아닌 걸로 기억되는데 당시 수영 선수였던 그 친구가 그 중학교에 배정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친구는 이후에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다. 아마 더 전문적으로 운동을 할 수 있는 학교로 옮겼을 것이다.
문제는 당시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수영대회가 열리면서 일어났다. 학교에서 대회에 나갈 정도로 수영을 잘하는 학생이 별로 없다는 이유로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인해 나는 대회에 출마하게 됐다. 그때는 이미 수영을 관둔지 2년 정도가 지난 상태였고, 그렇게 관두고는 수영장에 다시 가지 않았기 때문에 한창 열심히 할 때의 실력이 정비되어 있지 않음에는 틀림없었다. 게다가 선수 반 시절에 한창 배우긴 했지만 난 평형 선수였기 때문에 사실 턴이 중요하지 않았고, 다이빙 역시 배우긴 했으나 대회 출전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제대로 배우지는 못했다. 게다가 내가 출전하기로 예정된 종목은 자유형이었다. (왜 자유형으로 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수영 대회에 처음 참가해본 나로서는 모든 게 신기하기만 했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진짜 선수를 준비하던 학생들은) 출전 바로 전에 기록을 측정하며 기록이 좋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코치에게 맞기도 했다. 실로 살 떨리는 장면이었다. 내가 출천한 이유와는 정말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비장함이 있었던 것이다.
실로 초짜였던 나는 제일 끝 레인에 배정되었다. 8번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 되는데, 다이빙대에 올라갔을 때, 느껴지는 물과의 거리는 내가 마치 아파트 옥상에 서 있는 것처럼 멀어보였다. 정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누구 하나 나를 주목하는 사람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떨리던지. 지금도 그 순간의 기억은 생생하다. ‘삐익-’신호와 함께 점프를 했다. 다행히 배치기는 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종목은 자유형 100m였다. 대회 수영장이었기 때문에 단면이 50m라 한 바퀴를 돌면 되는 것이었는데, 정말 너무 너무 힘이 들었다. 완주를 목표로 했어야 하는데 욕심이 좀 났던 겐지 처음에 좀 달렸던 것이 힘을 빠지게 만들어 막판에 가서는 정말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숨이 찼다. 고작 2년 전만 해도 30-40바퀴씩을 돌았는데, 이렇게 지쳐버리다니. 결국 중간에 잠깐 멈춰 버렸다. 주위에는 사실 아무도 없었다. 앞에서는 등수를 책정하고 있는 듯 했다. 그때 저 끝 레인에서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얼른 다시 수영을 해서 꼴지로 들어갔다. 선생님이 기록을 하려는데, 나와 눈이 마주쳤던 그 아이가 선생님께 내가 중간에 잠시 멈춘 것을 일렀다. 결국 내 기록은 인정 되지 않았고, 실격 처리가 됐다. 억울했지만 내가 쉬었던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게 룰이었다.
열심히 했지만 실격 처리 된 것이 적잖이 실망스러웠다. 미리 수영장에서 가서 연습 좀 할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아빠 엄마한테는 별일 아닌 거처럼 말했지만 사실 속이 좀 많이 상했던 사건이었다. 그래서 자주 그 때를 회상하게 됐는데, 문든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때 나는 도중에 멈출 핑계가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힘이 들었으니 중간에 멈출 핑계가 필요했다. 그 핑계는 '이 정도면 됐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 나도 모르게 이정도면 됐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수영 선수 할 것도 아닌데 오랜 만에 수영장에 와서 '이만큼 했으면 됐지 뭐' 라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힘이 들었다. 하지만 도착지점까지 불과 얼마 남지도 않은 거리에서 그렇게 멈춰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힘이 든다는 핑계로 나를 합리화 시켰고 결국 그 생각이 나를 멈추게 한 것이었다.
돌이켜 보면 나는 뭐든 적당한 선에서 멈추었던 것 같다. 어느 정도 잘한다는 말을 들을 정도가 되면 이후로는 전진하지 않았다. 임용 시험에 2번 정도 떨어지고 마지막에 붙으면서 사실 공부하는 거에 진절머리가 났다. 그래서 대학원 가는 것도 피하고, 그저 출근했다가 집에 오면 학교에 대한 모든 것을 잊었다. 그 어렵다는 서울에서 선생님 하고 있는데, ‘뭐 이정도면 됐지’ 라는 생각으로 선생님이 되는 순간 내 인생은 또 거기서 멈춰 버렸다.
카르페 디엠! 이라는 말을 알고 있을 것이다. 중학교 시절 한창 비디오를 빌려다 볼 때 <죽은 시인의 사회> 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었다. 우울한 영화였지만 감명 깊게 봤다. 에단호크, 로빈 윌리암스 역시 좋아하는 배우들이었기 때문에 더욱 재미있게 영화를 봤던 기억이 난다. 그 영화를 보면서 막연히 키딩 선생님 같은 선생님이 되어야지 하고 꿈꾼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영화의 본 의도와는 다르겠지만 당시 그 영화를 보고 얻은 것은 바로 ‘carpe diem’ 이라는 한 문장이었다. ‘현재를 즐겨라’ 혹은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그저 너무 멋진 말이라 생각했다. 한동안 그 문장을 어디든 적어 두고 어디 써먹을 때 있으면 써먹고는 했다. 문장의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알려고도 하지 않고, 그저 멋지다고 생각하며 남발했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긴다’는 것을 ‘이정도 했으니 이제는 놀아도 돼’라고 내가 해석하고 싶은 대로 그 의미를 받아들였다. 나의 나태한 생활에 그럴 듯한 면죄부였다. 2017년에 유행한 YOLO라는 말 역시 그런 나를 더욱 부추겼다. 지금껏 열심히 살았으니 이제 하고 싶은거 하면서 적당히 즐기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것은 틀렸던 것이었다. 나는 이제야 ‘카르페 디엠’ 그리고 ‘YOLO’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비로소 알게 됐다.
그것은 그저 이 시간을 즐기며,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낭비하라는 것이 아니었다. 헛되이 시간을 흘려보내라는 뜻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은 돌아오지 않을 이 순간을 그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고 지금 이 순간을 누구보다 충실하게 살라는 뜻이었다. 인생을 소중하게 여기며 정말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이 순간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라는 뜻이었던 것이다. 지금이라도 깨달아서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는 것일까?
<행복한 이기주의자>를 쓴 웨인 다이어는 말한다.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고 과거나 미래에 매몰되어 현재의 순간들을 허깨비처럼 보내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 숨쉬고 있는 것은 지금 이 순간뿐이다.
그리고 무익한 자책감과 걱정은 모두 현실도피 안에서 자행되고 있는 행위다.
그랬다. 나는 현실에 불만만을 가진 채 자책감과 걱정을 이고서 하루 하루를 후회했다. 그런데 자책하고 후회해봤자 과거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고, 걱정하고 앉아있는다고 해서 내 미래가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나는 작은 습관들을 만들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최대한 그 일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렇게 까지 해야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오늘은 그냥 미룰까 하는 생각도 매번 든다. 하지만 생각일 뿐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 그렇게 하고 나면 후회할 내 모습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을 돌고 돌아, 지금의 순간들이 쌓이고 쌓여서 내가 원하는 미래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순간이 참 소중하다.
<이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