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에서 온 사람, 금성에서 온 사람.

서로 다른 차이의 인정에 대해

by 이유진

출근길 라디오에서 음악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그리고 음악과 그에 관한 설명을 하면서 중간중간 청취자의 질문을 받았다. 게스트가 뇌 과학자 박사님이라 그랬는지 뇌에 관한 질문이었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처럼 남자와 여자의 뇌 구조가 다른가요?


박사님의 답변은 “아니요”였다. 말씀에 따르면 남녀 그룹 간의 차이는 없고 단지 개인차가 있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그러기에 사람(상대방)에 대한 끊임없는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이 마무리였다. 질문을 보낸 청취자의 의도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남편에 대한 정당화를 찾고자 했던 것 같은데, 아쉽게도 원하는 답은 아니었을 것이다. 박사님 역시 그 점을 인지했다. 청취자가 원했던 답은 이런 것이겠지?


그럼요, 남자랑 여자의 뇌 구조는 아주 다릅니다. 남자는 원래 그래요. 그러니 남편을 그냥 그러려니 하고 이해하세요.




우리는 각자가 모두 다르다는 것을 학교에서 혹은 독서를 통해 혹은 영화 혹은 드라마 등 각종 매체를 통해 끊임없이 배운다. 그리고 실제로 살면서 시시각각 그것을 마주한다. 일단 취향에서부터 알 수 있다. 물론 대중이 좋아하는 것들은 정해져 있을 수 있지만 시장은 매우 다양한 취향의 제품들로 넘쳐난다. 당장 드러그 스토어에만 가봐도 엄청난 종류의 화장품들을 마주할 수 있다. 립스틱의 색깔만 봐도 사람들의 취향이 얼마나 각양각색인지. 혹은 편의점에만 가봐도 과자의 종류가 상당히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가령 우리 아들이 좋아하는 빼빼로만 봐도 그 종류가 5가지 이상은 된다. 나는 퍽퍽한 과자는 싫지만 내 친구는 그런 과자를 좋아한다. 인간의 다양성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을 때면 편의점이나 화장품 가게에 가 보기를 추천한다.


하지만 인간은 한결같게도 본인이 좋아하는 취향에서 쉽게 벗어나질 못한다. 늘 하던 것, 늘 먹던 것, 특히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보다는 작가 지금껏 고수해온 방식을 선호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 옆에 있는 사람의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다. 아마 회사의 마케팅 부서에서는 그런 고정적인 취향에 대해 많은 분석을 할 것이다. 뭔가 특이하지만(그것도 자기의 입장일 뿐) 고정적인 수요가 있는 제품들은 꾸준히 생산되는 것을 보면 사람의 취향이 얼마나 다양한지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서 타인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나의 취향을 접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학교에서는 친구들의 성향을 맞춰야 하고 회사에서는 상사나 동료들의 성향을 맞춰야 한다.(물론 이런저런 거 눈치 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과연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내 바로 옆에 있는 가까운 사람에게 그 관대함을 접어버린다. 가족이 바로 그 대상이 되는 것이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말이다.


나의 아내 혹은 남편, 그리고 아이들. 혹은 나의 아빠, 엄마, 혹은 나의 형제들. 여간해서는 쉽게 분리될 수 없는 구조를 가진 나의 만만한 가족 구성원에게는 밖에서 맘껏 펼치지 못한 나의 취향을 쉽사리 포기하지 않는다. 그게 조금 더 나아가면 나의 취향을 강요하게 되는 우를 범하게 된다.


특히 요즘같이 남녀가 모두 일을 하고 자녀를 키워야만 하는 세상에서는(물론 육아를 전담하는 사람이 정해진 가정도 마찬가지다) 서로의 그런 취향이 다르다는 것을 알지만, 일상의 치열함과 고단함에 그걸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단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를 과시하며 가정 내에서 만이라도 나의 안식을 찾으려고 들면서 서로가 양보하지 않으려고 하기에, 결국 서운함과 혹은 분노만이 서로를 감싸게 되는 것이다.


연민을 가져라


김영민 교수가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라는 책에서 소개하는 주례사 중에 나오는 말이다. 그는 신랑 신부에게 서로에게 연민을 가지라고 말한다. 학벌 좋고, 직업 좋은 게다가 외모도 준수한 두 사람, 서로에게 꿀릴 것 없다 생각하면 싸움밖에 날 것이 없다고 그러니 서로 잘난 거만 내세우려 하지 말고 서로에게 연민을 가지라고 한다. 그러면 싸울 일이 조금은 줄어들 것이라고 충고한다. 나는 그 대목에서 공감 아닌 공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남녀가 차별 없이 교육을 받고 자란 섿대중의 한 명으로 결혼을 하면서 특히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무엇인가 억울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많다. 실제가 어떻든 내가 느끼기에 억울함이 밀려올 때면 자연스레 싸움이 시작됐고,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때에는 싸움의 빈도가 꽤 잦아졌다. 특히 나만 억울하다는 생각은 남편에 대한 원망만 들게 했다. 그래서 라디오에 사연을 보낸 여자분의 마음이 어떤 건지 이해가 됐다. 아마 그녀는 전문가의 답변으로 본인이 억울한 상황을 합리화시킬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을 것이다. 답변은 비록 그녀가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뇌 박사님은 친절하게 그녀를 위로했다. 남녀가 다르다는 생각을 넘어서 그저 개인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더 필요할 것이라고. 남자와 여자가 달라서 우리 남편이 이런 거야 하지 말고 그저 사람이 서로 다를 뿐이라고 생각하라는 것이 김영민 교수의 연민을 가져라는 말과 함께 와 닿았다.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실체 없는 무엇인가에 홀려 결혼을 한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 우리는 ‘사랑’ 하나에 모든 것을 집어넣으려고 한다. 사랑한다며 그 정도도 이해해 주지 못하냐고, 사랑한다면서 이 정도 들어줄 수 없는 거냐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4살 아기가 부리는 떼만큼이나 억지에 불과한 일들을 우리는 서로의 배우자에게 혹은 자녀에게 강요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가 아닌 우리 모두는 화성에서 온 사람, 금성에서 온 사람, 토성에서 온 사람처럼 서로 다를 뿐이다. 너무 다르지만 망망대해를 함께 건너자고 약속을 했으니 그저 자기 잘났다고 외치는 대신 서로에게 연민을 가지며 주거니 받거니 하며 함께 노를 저어가자는 것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어떡하겠는가. 가족이라는 이유로 뭉친 이상 그렇게 타협하지 않으면 싸움밖에 날 일이 없다. 아니면 진짜 남보다 못한 관계가 되던지. 어쨌거나 둘 다 썩 좋은 결말이 아님은 확실하다.


개인차에 대해 극복하기 위해서는 배우자 혹은 나의 가족에 대의 다름에 대해 인정하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싶다. 가장 가까운 나의 사람(들)에 대한 수용과 인정이 밑바탕에 깔릴 때 우리 사회는 비로소 서로의 차이에 대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은 결국 가화만사성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