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다 제 잘난 맛에 산다.

비교하지 말기

by 이유진

사교육에 대해 여러 가지 말이 많지만 개인의 수준에 따라서 혹은 취향에 따라서 적절한 사교육을 받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본다.(물론 그것을 조장하는 분위기에는 동조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나 역시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과 함께 학원을 다녔는데, 주로 예체능 계의 학원을 다녔던 지라 이런저런 잡기(?)에 능하게 되었고 이는 교대에 진학하게 되면서 꽤 쓸모가 있었다. 그중의 하나로 서예학원이 있다.


사실 서예학원을 다니게 된 계기는 잘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특히 당시 나와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과 함께 다니지 않았던 걸로 봐서는 친구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배움에 대한 열정 때문이었던 것 같다.(당시의 나는 그런 편이었다.) 게다가 서예 쓰기가 쉬운 일은 아닌 만큼 학교에서 또래 친구들보다 잘 쓰게 되니 거기에서 오는 우쭐함도 한몫했으리라 본다.


내가 기억하는 학원은 아파트 단지 내 작은 상가에 위치하고 있었다. 책상마다 깔린 두툼한 담요 위에 놓인 두꺼운 벼루들. 원래는 도착하자마자 먹을 갈고 붓글씨를 써야 하지만 언젠가부터는 누군가가 미처 치우지 않고 간 남은 먹물을 재빠르게 캐치하여 사용하곤 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선생님께 발각되면 다시 먹을 갈아야 했다.


학원에 들어서면 마치 다른 세상에 온 듯한 기분을 마주했다. (지금 생각하면 인테리어를 전혀 손보지 않은 듯한) 하얀 시멘트 벽과 일열로 놓인 책상들. 특유의 먹 냄새. 그리고 마치 여기가 어디 청학동 서당과도 같은 곳인가 싶게끔 느끼게 만드는 외모와 복장을 하고 계신 원장 선생님. 당시 학원은 부부가 운영하고 있었는데, 동글동글한 얼굴의 사모님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수염 그득한 원장 선생님이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선생님은 독특한 외모만큼이나 말씀도 생각도 남다른 분이셨다. C컬 파마라도 한 듯한 단발머리의 헤어스타일에 개량 한복 비슷한 옷을 입고, 코에는 콧수염이 늘 상주하셨던 얼굴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학원에서 특이했던 점은 글쓰기를 마치고 나면 꼭 명심보감을 외워야하는 것이었다. 선생님께서 직접 붓글씨로 한자로 써 두신 명심보감을 한 구절 읽어주시면 그 한자를 따라 말하고 연이어 뜻을 외우는 것이 었는데,


“자왈 위선자는 천보이지복하고, 위불선자는 천보지이화니라.”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은 하늘이 복으로서 갚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하늘이 화로써 갚는다.”


이런 식으로 공부를 하는 것이었다. (그 많은 것들 중에 기억나는 것은 저 문장 하나이다.) 문제는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 들어와도 나갈 때에는 통과를 해야지만 학원 문 밖을 나갈 수 있었기에 아이들은 저마다 자왈 위선자는 하면서 학원 내를 빙글빙글 돌면서 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좋은 교육이다 싶지만 당시에는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니었다. 한자도 어려운 데다 도대체 ‘자왈위선자’는 무슨 말인지, 그걸 풀어서 설명해주시는 선생님의 뜻을 해석하려하기 보다는 그저 빨리 외워야 한다는 마음만 급했던 것 같다.(이리 생각하니 우리 반 아이들이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그런 학원의 방침 때문이었는지 학원은 크게 인기 있는 곳은 안되었다. 그래서 따로 스케줄이 정해져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언제 가도 글씨를 쓸 자리가 있고 붐비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아이들이 많건 적건, 아이들이 외우지 못하겠다고 떼를 쓰건 말건 선생님은 전혀 동요하지 않으셨다. 딱히 화를 내시는 것도 아니었고, 마치 훈장님처럼 반복적으로 문구를 외시면서 아이들에게 일정한 톤으로 말씀하실 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사모님이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든다. 크게 돈벌이되지 않는 학원을 운영하고, 게다가 공자왈 맹자왈만 읊어대시고, 있는 모습을 보고 계시면서 답답하시지 않으셨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것은 나만의 편견이겠지?


뭐가 됐든 원장 선생님은 여러모로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분이셨다. 미술이나 피아노 학원 선생님들처럼 친구처럼 친근하게 다가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불가했고, 그저 글씨 쓰기를 지도받고 명심보감을 다 외면 ‘안녕히 계세요’ 인사를 하고 학원 문을 나서는 것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서예학원을 꽤 오랜 기간 다녔는데, 무엇 때문이었는지 나도 참 궁금하다.


그런 가운데 내가 선생님과 대화를 나눴다고 여겨지는 일화가 하나 있다. 명심보감을 외던 중이었는지 아니면 아이들 전체로 설교를 하던 중이었는지는 정확하지는 않은데, 누군가가 질문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 ‘누가 제일 잘났냐’는 질문이었던 것 같은데, 선생님은 그 답변을


‘사람은 다 제 잘난 맛에 산다.’


라고 하셨다. 나는 그 답이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특히 당시에 한창 위인전 읽기에 빠져있을 때라 선생님이 말하는 ‘자화자찬’에 나는 동참하지 못했던 탓이다. 각자 자기 잘난 맛에 산다니 그게 무슨 말이란 말인가. 게다가 누가 알아주지 않는데 혼자서 잘났다고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나는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물론 선생님 앞에서는 반박하지 못했지만 마음으로는 선생님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요즘 그 말이 한 번씩 뇌리를 스친다. 비교하지 말고 각자 잘하는 것을 찾아서 하라는 말이구나 싶은 생각이 문득 들면서부터였다. 선생님의 답변은 굉장히 단순했고, 당시에는 무성의하다 여겨질 만큼 냉정한 답변이라고 생각했는데, 뼈가 있는 말이었구나라는 것을 20여 년이 지나서야 깨닫게 됐다.


나는 늘 누군가의 칭찬에 목말라하면서 살아왔다. 즉, 누군가의 인정과 칭찬이 중요한 사람이었다. 스스로에 대한 평가는 늘 인색했고, 이만하면 잘했지 라는 생각보다는 ‘겨우 해냈네’라는 정도였다. 이렇게 하면 남들만큼 한 것이겠지 혹은 남들처럼 살 수 있겠지 라는 생각. 지금 생각하면 그 ‘남들만큼’의 기준이 상당히 높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늘 내가 속했던 그룹에서 나는 허덕였던 것 같다. 그들과 비슷해지고 싶어서 말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스스로를 나보다 더 나아 보이는 누군가와 비교했고, 나뿐 아니라 그 잣대를 남편에게까지 들이밀면서 남편을 누군가와 비교했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싸움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다행히 나는 예전의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인지했고, 이제는 더 이상 그러지 않는다. 부부라는 것이 비록 남들이 봤을 땐 ‘바퀴벌레(?) 같은 한쌍’이라 할 지라도 둘이 좋으면 그것이 최고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라고나 할까. 결국 남과의 비교는 스스로를 좀먹는 일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느끼면서, 나는 그냥 지금의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실 내 삶에 만족하게 되면서 누군가의 비교가 덧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 것 같다. 거기에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한다는 것이 큰 자긍심을 준다. 글쓰기든 유튜브든 처음에는 누가 봐줬으면 싶고, 잘한다고 좋아요를 눌러주면 싶고,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들이 부럽고 그랬는데, 결국 꾸준히 하면서 시간이 지나다 보니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감사하게도 내가 직접 해보면서 이런 일들을 ‘내가 좋아하는 일이구나’를 알게 됐고, 하면서 즐거움과 뿌듯함을 느끼다 보니 결국엔 누가 알아주든 말든 상관없이 꾸준히 하게 되었다. 나는 이 사실이 참으로 놀랍다. 아마 서예 선생님도 그랬을 것이다. 본인이 좋아하는 붓글씨를 오래 하다 보니 한자에 관심이 생겼을지도 모르고, 그와 연관해서 ‘논어’ 같은 책들을 접했을 것이고, 공부를 하다 보니 그 즐거움에 빠졌을지도 모르겠다.(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추측이다.) 그렇기에 누가 어떻게 생각하든지 말든지 상관없이 머리를 기르고, 늘 콧수염을 정비하고, 남들이 봤을 땐 일상적이지 않아 보일 옷차림으로(마치 청학동 훈장님 같은 모습으로) 늘 학원에 상주하셨고 또 동네를 돌아다니셨을 것이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는, 자기만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삶을 구축하셨던 것이리라.


물론 나의 세상은 아직 서예 선생님만큼 견고하게 구축되진 못했다. 아직도 누군가가 부러운 마음이 종종 고개를 든다. 특히 요즘은 학교에서 90년대 생들의 능수능란한 모습들을 볼 때, 그들의 당당한 자기주장을 볼 때면 어찌 저렇게 어린 나이에 모든 일을 척척 잘 해내가나 싶은 마음. 나는 당시에 어땠을까, 혹은 지금은 어떤 한가를 반추하게 되지만 어차피 그들과 나는 다르다. 우리 아이들도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아이는 왜 이렇게 수줍음을 많이 타지? 저 아이는 어쩜 저리 씩씩할까? 다른 친구들과 비교를 하다 보면 끝이 없다. 다른 걸 어쩌겠는가. 그들과 우리 아이는 그저 서로 다를 뿐이다. 서로 외모도 성격도 모두 다 다르다는 것. 결국 그것만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사실이다.


우리는 모두가 다르다. 나이, 성별, 생김새, 취향, 니즈 등 쌍둥이라도 그 모든 것이 같을 수는 없다. 그러니 각자의 것을 존중하고 각자 ‘제 잘난 맛’에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저 그 사실을 깨닫고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나는 새삼 깨닫는다. 그러니 더 이상 누군가와 비교하지 말고 나 잘난 맛에 살아갈 수 있는 나만의 무기를 만드는 것에나 더욱 집중하고 살아야겠다. 남들은 내가 생각하는 만큼 나에게 관심이 없고, 나 역시 그들에게 지대한 관심을 쏟을 만큼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맞다. 우리 모두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