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는 마음
“당연한 거 아니야?”
남의 싸움만큼 흥미진진한 게 있을까. 허겁지겁 뛰어서 버스를 타고 남는 자리가 있어 서둘러 자리에 앉는데 뒷자리에 앉은 여자분이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듯 이야기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목소리가 냉랭한 것이 누구랑 싸우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버스 앞뒤 자리는 생각보다 가까워서 여자분의 목소리는 잘 들렸고, 괜한 호기심에 귀를 쫑긋 세우게 됐다.
앉기 전에 얼핏 보기로 젊은 여성이었던 것 같은데, 아마 남자 친구와 싸우는 듯했다. 나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서운함보다는 날 선 경계심이 가득한 말투에 무언가 단단히 화가 난 듯싶었다. 싸움의 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이런저런 대화가 오가던 중에 갑자기 당연한 거 아니냐고 맞받아 치던 그 문장이 너무도 크게 띵하고 울렸다. 별거 아닌 그 문장이 내 귀에 쏙 박힌 이유는 그 말이 얼마나 상대를 지치게 하는지 이제는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랬었다. 남편과 싸울 때면 입 밖으로 꺼내 든 그렇지 않든 내 머릿속에는 늘 당연한 거 아니냐는 그 공식이 나를 지배했다. 젊은 여성분의 그 목소리는 마치 데자뷔처럼 예전의 나를 마주하게 했다.
세상에 당연한 게 얼마나 있을까?
하다못해 매끼 챙겨 먹는 밥 조차 당연한 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다 보면 내게 익숙해지는 것들에 대해서 매우 당연하다고 여기게 된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아는 것처럼 어떤 것이 대가 없이 계속해서 제공될 때, 당연하다는 것으로 여기는 때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가령, 엄마가 내게 해주던 것들을 당연하게 여겼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정작 내가 엄마가 되어보니 당신이 우리 가족을 위해 했던 것들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됐다. 엄마는 당연히 밥을 차려주는 사람이라고 여겼고, 이리저리 일이 많은 가운데도 불구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김치 담그고 하는 일들은 당연한 것이라 여겼던 철없던 시절의 나. 그때를 생각하면 참 부끄러워진다. 이렇듯 엄마에 대한 고마움은 아이를 낳으면서 일찌감치 깨우쳤지만 정작 나와 함께 사는 이에 대한 고마움에 대해서는 전혀 인지하지 못했었다.
우리 아이들이 아직 갓난쟁이였을 때, 육아는 정말 전쟁이었다. 도무지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아이들과 하루 종일 씨름을 하노라면 하루에 열두 번도 짜증이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했고, 체력적으로도 지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게다가 남편은 이른 출근과 늦은 퇴근으로 인해 평일엔 육아를 할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나는 좀 더 힘들다고 느꼈던 것 같다. 물론 남편은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본인의 공백을 메꿔주려 노력했다.
남편이 하는 일은 주로 분리수거, 쓰레기통 비우기, 설거지, 집 정리, 빨래 개기 등이 었는데, 싸움이 잦을 무렵에는 나는 그 일들을 해주는 남편에 대해서 고맙다고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내가 평일에 하루 종일 애들 보느라 정신없으니 그 정도는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당연하게 여겼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남편에게 고맙다 수고한다라는 말이 잘 나오지 않았고, 남편이 내게 하는 ‘고맙다 혹은 항상 고생이 많다’ 등의 말을 오히려 도와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변명으로만 받아들였다. 그러니 일상의 피곤함과 짜증이 반복되면서 일어나는 싸움에서는 각자 처한 상황에 대해서 억울함을 토로하는 일들만 빈번하게 이어졌다. 나는 나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서운함이 쌓여갔던 것이다. 특히 남편은 자신이 하는 일들에 대해서 한 번도 고맙다 어쩌다 말이 없는 내게 서운하다고 몇 번을 말했지만 당시에는 사실 그 말이 잘 와 닿지 않았다. 어째서 내가 고마워해야 하는지에 대해 납득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하고 있는 일들(육아 및 살림)이 내게는 너무 큰 일이라 여겼고, 그 일들에 비하면 남편이 하는 일들은 매우 당연하고 사소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지금에 와서는 그 일들이 참 미안하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당시 서운하다 토로했던 남편이 어떤 마음이었을지도 공감이 된다. 한편으로는 고맙다는 그 한마디가 뭐가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그리 야박하게 굴었을까 싶다. 생각해보면 남편 역시도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생계를 위해서 회사를 오가는 것이 결코 룰루랄라 노는 일은 아닐지언데, 그 역시도 결혼을 하고 한 가정의 가장이 되는 현실이 녹록지 않았을 지언데, 왜 더 해주지 못하냐고 늘 불만을 토로하던 아내를 마주하면서 참 힘들지 않았을까 싶다. 나를 방어한다는 이유로 서로에게 상처가 될 것이 뻔한 모진 말을 내뱉었던 것이 떠오를 때면 미안한 마음이 불쑥 찾아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는 달리 지나간 일에 대해 들추지 않고 자기는 다 잊어버렸다면서 내가 왜 그랬을지 이해한다고 하는 그의 말이 참 고맙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은 아마 당연한 것은 없다는 문장과 일맥상통할 것 같다. 나는 일찍이 그것에 대해 안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에서 막상 적용시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물론 ‘감사하다’는 말은 입에 달고 살았다. 하지만 습관적으로 내뱉는 인사와 내 마음이 직접적으로 와 닿았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마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던 것이 우연히 ‘감사일기’라는 것을 쓰게 되면서 조금 뭔가가 달라졌음을 인지하게 됐다. 하루에 3개씩을 적는 것을 목표로 2-3개 정도를 적고 있는데, 매일 쓰지는 못해도 하다 보니 당연한 것은 없다는 이치를 진심으로 깨닫게 되었고, 새삼 감사의 중요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다.
물론 내 삶의 모든 순간에 적용된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감사일기를 쓰는 순간이나 다이어리를 뒤적이다가 그 글귀를 만나게 되는 순간마다 반성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면 뭔가 불편했던 감정들이 사그라들고, 아주 약간이지만 진정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인간은 지루한 루틴처럼 흘러가던 일상에서 벗어나는 어떤 사건에 직면하게 될 때, 새삼 지루한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나 역시 그랬다. 아이들과 하루하루 전쟁 같은 날들을 보냈지만 막상 산티아고에 가서 하루 종일 비를 맞고 걷다 보니 새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느끼게 됐고, 아마 코로나로 인해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지금, 나뿐 아니라 전세계 모든 이들이 그에 대해 뼈저리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는 것이, 혹은 누군가를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 달리하는 것이 우리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것인지를 깨닫는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면서 감사하는 마음은 절로 일어난다. 그러면 늘 불만스럽게 보였던 남편의 행동이 참 감사하게 느껴지고, 아이들의 짜증 조차 그러려니 하는 순간이 오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매 순간이 부처님처럼 모든 것을 수용하는 따스한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아주 조금이지만 마음의 여유가 한 켠 더 넓어졌고, 그로 인해 느끼는 행복감이 조금 더 높아졌을 뿐이다. 하지만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는 유명한 광고의 문구처럼 우리 삶은 ‘로또’ 같은 대박을 맞이해야만 변화하는 것이 아니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에서 매일 1% 의 변화를 꾀하는 것으로 삶이 크게 변화할 수 있다는 것 처럼 아주 사소한 것으로 우리 삶은 크게 바뀔 수 있다. 그것은 선상에서 방향을 바꾸기 위해 키를 비록 1도 돌리지만 그 목적지는 전혀 달라지는 것과도 같은 이치이다. 나는 사소할지 모르는 인식의 변화가 궁극적으로 내 삶을 크게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믿게 됐다.
매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얼마 전 오랜만에 등교한 우리 반 아이들에게 감사일기를 쓰라고 하자 여기저기서 불만이 쏟아져 나왔지만 그들도 쓰다 보면 언젠가는 느끼게 될 날이 오리라 믿는다. 적어도 그 한 줄을 쓰기 위해 하루에 있었던 일들을 돌아보게 될 것이고, 직접 글로 적으면서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아, 하면서 인식하게 되는 날이 오겠지.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는 것보다는 하면서 느끼는게 분명히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주 늦게 깨달은 나보다 조금 더 일찍 깨우쳐 보다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친구들이 되기를 바라본다.
*표지 사진 : Photo by Pro Church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