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시작해봅니다.
새 학기가 시작될 무렵인 2월 말이 되면 항상 하는 일이 있었다. 친한 친구와 시내 큰 문구점에 가서 다이어리를 구입하는 것이다. 동네 문구점이 아닌 꼭 시내 큰 서점에 갔다. 그곳에 가야지 좀 더 다양하고 예쁜 다이어리들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다이어리 구입은 연례행사 같은 것이었다. 다이어리를 고르는 일은 꽤나 까다로웠다. 일단 표지가 예뻐야 했고, 두께는 적당한 것이어야 했다. 이것저것 열심히 뒤져보며 비교하여 심사숙소 끝에 다이어리를 고르면 필기구 구입은 그에 따른 필수 코스였다. 그렇게 다이어리와 필기구를 구입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문제는 그렇게 애지중지 구입한 다이어리는 늘 1년을 채운 적이 없다는 것이다. 항상 앞부분만 새까만 정석처럼 다이어리 역시 초반 3,4월만 빽빽하게 쓰고는 그 이후로는 흐지부지 되기가 십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매년 2월이 되면 다이어리를 사러 문구점에 들렀던 기억이 있다. 심지어 올해 초에도 스타벅스 다이어리를 공짜로 얻기 위해서 커피를 사 마시고, 지인들에게 커피 쿠폰을 얻어서 다이어리를 받았다. 그런데 그 다이어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커피를 사 마실 돈으로 책을 샀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렇게 다이어리를 모았던 이유를 한 번 생각해 보았다. 그건 아마도 기록하고 싶은 욕구가 아니었을까 하는 결론이 내려졌다. 늘 무엇인가 쓰고 기록하고 싶었는데, 그것을 꾸준히 하지 못했고 어떻게 해 나가야 하는지를 잘 몰랐다. 다이어리를 꾸준히 쓰진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이 들 때면 신을 찾는 대신 일기장에 꾸준히 무엇인가를 적었다. 구입한 다이어리 대신에 책을 사고 부록으로 받은 작은 노트에 토해내듯 무엇인가를 적고 나면 그렇게 후련할 수가 없었다. 아무도 볼 수 없는 나만의 일기장에 그렇게 조금씩 적었다. 아주 드문드문 적는 일기장이었기 때문에 기록의 두께는 기간에 비해서는 매우 얇다. 하지만 그런 행위를 통해 내가 적고 싶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글을 쓰는 일이 꽤나 재미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책을 다시 읽게 되면서 나도 책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해졌다.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만이 글을 쓰는 것이라 여기며 생각지도 않고 살았다. 그런데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매일 조금씩이라도 글을 쓰다 보니 글을 쓰면서 재밌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아이와 함께 지내지만 생각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인지라 문득문득 떠오르는 생각들이 많아졌다. 설거지를 하면서, 꽃을 보면서, 아이를 돌보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불쑥 떠오른다. 재빨리 메모를 해 둘 때도 있고, 그냥 그렇게 흘려버릴 때도 있다. 그런 생각들을 좀 더 선명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사진도 찍어둔다. 매번 아이들 사진만 찍었는데 나의 글쓰기를 위한 사진도 찍고 있다. 그런 짧은 생각들이 한 편의 글로 이어지는 상상을 하면 그 상상 만으로도 짜릿하다. 이런 기분은 물론 난생처음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생경한 느낌이다. 내 글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봤기 때문일 수도 있다.
물론 한 페이지를 채워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다. 더 잘 쓰고 싶어서 강의를 들어야겠다는 생각도 한다. 중요한 것은 내가 매일 쓰느냐의 문제라는 것이다. 알랭 드 보통,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했다. 그들이 직업인으로서의 작가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출근하는 직장인들처럼 하루에 일정 시간을 정해 글을 쓴다고 하는 말을 처음에는 이상하다 생각했다. 읽을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그 말이 지금은 무엇을 뜻하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새벽이나 둘째가 낮잠에 든 시간에 글을 쓴다. 새벽시간에는 책을 읽거나 운동하기 그리고 블로그 쓰기를 위해 할애하는 경우가 많아 주로 둘째가 낮잠 자는 시간만이 내가 집중적으로 글을 쓸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된다. 지금도 둘째가 한 창 잠들어 있는 시간이다. 예나 지금이나 둘째가 어서 잠들기를 바라는 것은 똑같다. 하지만 잠들고 나서 하는 일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오롯이 쉬기 위해서 그 시간을 바랐다. 아이가 잠들면 못 본 드라마를 보거나 웹툰을 보면서 같이 잠들었던 나였다. 지금은 아이가 잠들자마자 컴퓨터를 켠다. 예전과 다른 목적으로 말이다. 그리고 자판을 두드리는 시간이 즐겁다. ‘즐겁다’라는 말 대신 무엇으로 대체할 수 있을까. 써야 하는 압박감은 있지만 쓰고 싶은 양가감정. 이를 어떻게 말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중요한 건 드디어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는 것이다.
이 글은 책을 내겠다는 호기로운 목적으로 썼던 글이다. 투고 메일을 보냈지만 연락이 오는 곳은 없었다. 어쩔 수 없다 생각하면서도 조금 서글퍼졌다. 그러다 문득 브런치에 발행해보자 싶었다. 나만 읽기 위해 쓴 글이 아니기 때문에 아쉽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누군가 이 글을 읽고서 '꿈'이라는 것을 다시 마음에 품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그 마음 하나로 부끄럽지만 용기를 내본다.
- 차 례 -
< 들어가는 글 >
< 1 장 > 다양한 아이들을 만납니다.
1. 완벽하지 않은 아이들
2.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
3. 강한척하는 아이들
4. 흔들리지 않는 아이들
5. 작은 가슴속에서
6.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 2 장 > 소중한 삶을 전하려 합니다.
1. 아이들이 만나게 될 세상
2. 아름답고 가치 있는 시간들
3. 무한한 가능성
4. 나는 잘했다를 외칠 수 있도록
5. 하루하루가 소중한 일상
6. 아이를 낳으면서
7. 기록의 소중함
8. 나의 아이들 그리고 우리 아이들
< 3 장 > 내 안에 꿈 있습니다.
1. 책을 읽다, 글을 쓰다
2. 답답한 마음
3. 이상과 현실 사이
4. 내 꿈을 찾아서
5. 선생님이 되기까지
6. 즐거운 학교 생활
< 4 장 > 자기 연민은 이제 그만입니다.
1. 나는 호구인가
2. 나약한 마음
3. 비관적인 생각들
4. 절실했던 자존감
5. ‘오리지널’에 대한 갈망
6. 우울감에 사로잡히다
7. 내가 해야만 하는 것은
< 5 장 > 꿈이 있어 다행입니다.
1. 어제와 다른 삶
2. 지금, 참 소중합니다.
3. 나의 꿈 나의 인생
4. 슬램덩크의 단호한 결의
5. 유튜브 선생님
6.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에서 찾기
7. 블로그를 통한 소통
8. 오늘은 기분이 좋아
<마치는 글>
* 표지사진 : Photo by Sharon McCutcheon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