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장 > 다양한 아이들을 만납니다.
아이들이 뭐라 해도 허허 웃는 아이, 하루 종일 뛰어다니는 아이, 만화를 그리는 아이, 피아노를 치는 아이, 책에 빠져 사는 아이, 쉴 새 없이 재잘대는 아이, 거울만 보는 아이 등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이들은 참 제각각이다. 학교에 일찍 도착하여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라디오 주파수를 89.1에 맞춘다. 익숙한 아나운서의 목소리나 혹은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온다. 쿨 메신저를 통해 메시지를 확인하다 보면 어느덧 삼삼오오 아이들이 들어온다. ‘안녕하세요?’라고 큰 목소리로 인사하는 아이가 있는 반면, 우물쭈물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인사하는 아이. 혹은 내가 인사를 하면 고개만 꾸벅 숙이는 아이가 있다. 인사를 하는 모습도 모두 제각각이다. 내가 교실에서의 하루를 준비하듯, 아이들도 각각 자기의 하루를 시작한다.
‘선생님 뭐하세요?’라고 배시시 웃으며 다가오는 여학생이 있었다. 늘 고양이 흉내를 내며 웃을 때는 그림처럼 눈이 휘어지는 아이이다. 내 자리에 다가올 때에도 ‘야옹야옹’ 소리와 함께 뛰어오곤 했다. 그 친구가 내 주변에 오면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지금은 선생님 자리에 가는 거 아니고 책 읽어야 해’라고 말하곤 했는데, 친구들의 그런 말에 크게 개의치 않는 아이였다. 내가 ‘이제 그만 자리에 들어가서 책 읽으세요’라고 말하면 그제야 ‘네에 선생님, 근데요... 지금 뭐하세요?’라고 다시 물으며 근처를 기웃거렸다. 아침 책 읽기 시간에 주로 일어난 일이라 아이와 긴 대화를 이어갈 수는 없었다. ‘선생님은 지금 일하고 있어’ 혹은 ‘수업 준비를 하는 중이야. 어서 자리에 들어가세요’라고 말하면 그제야 알겠다는 듯 이번에는 토끼 흉내를 내며 두 손을 머리에 대고 깡충깡충 뛰면서 자리로 돌아가곤 했다.
그 친구는 엄마가 없는 아이였다. 한 번은 가족에 대한 수업을 하던 날이었다. 그 당시에 교과서에 제시된 가족의 모습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함께 있는 대가족부터 해서 아빠 혹은 엄마만 있는 한부모 가족 등 다양한 모습이 제시되어 있었다. 한참을 설명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아이가 누구보다 큰 목소리로 ‘선생님 근데 저는 엄마가 없고, 아빠랑 할머니랑 할아버지랑 살아요.’라고 말했다. 아무렇지 않게 순식간에 튀어나온 이야기에 순간 나도 당황했지만 나보다 앉아있는 아이들이 더 놀랐던 것 같다.
‘아, 그렇구나. 그럼 오늘 아침에는 누가 데려다주셨어?’라는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려고 했다. 아이는 태연하게 ‘할아버지요’라고 대답했고, 다행히 아이와의 대화는 그렇게 마무리지었다. 이후에는 아이들에게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소개해주게 되었다. ‘여러분 세상에는 다양한 가족들이 많이 있어요. 아빠 엄마랑 사는 것이 정상이야.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에요. 할아버지 할머니랑 살 수도 있고, 또 아빠랑만 혹은 엄마랑만 사는 가족도 있는 거예요’ 초롱초롱한 눈망울들은 이내 수긍했고, 깜짝 놀랐던 심장들은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 보였다. 저학년이라 아마 더 그랬을 것이다. 물론 어떡하지라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 아이도 있었다. 하지만 워낙 평소에도 예상하지 못했던 말들을 하면서 친구들을 당황시켰던 전적이 많았던지라 아이들은 그 친구를 그냥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이들은 한 창 재밌게 놀다가도 불쑥 내 자리로 와서는 ‘선생님, 00가 자꾸 고양이 흉내를 내요’라고 불만 아닌 불만을 내비쳤다. 그럴 때 ‘00가 고양이를 정말 좋아하나 보다’라고 말해주면 또 ‘그렇구나’라고 말하고는 다시 돌아가 재밌게 놀고는 그랬다. 그 모습이 얼마나 웃기던지.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그 아이의 돌발 언행들을 받아들이고 품어주었다. 참 착했다. 그 이후로 나는 가정통신문이나 가정에 안내사항이 있을 때 부모님이라는 말보다는 보호자라는 말을 사용한다. 물론 자연스럽게 부모님을 말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게 말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4학년을 가르칠 때였다.
‘아 근데요. 선생님 오늘도 남아야 돼요?’ 또래에 비해 키가 작고 얼굴에 주근깨가 종종 붙어있는 아이가 물어온다. ‘오늘 남아야죠’라고 대답하면 ‘네, 거봐 오늘 남아야 된다잖아’라고 말하며 씩 웃는다. 그러면 옆에 있던 남자아이가 ‘근데요... 선생님 오늘 엄마가 일찍 오라고 했는데...’라며 입을 내민다. 방과 후에 놀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얼굴에 근심이 가득인 그 얼굴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곤 했다. 또래에 비해 키가 크고 덩치도 크고 눈이 왕방울 만한 아이. ‘엄마가 공부하고 와도 된다고 하셨는데? 엄마한테 전화해볼까?’라고 되물으면 ‘에이 선생님도 참’이라며 금세 또 씩 웃는다. 둘은 마치 6학년과 1학년이 함께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매일 남아서 공부하다 보니 어느새 단짝이 되어있었다. 둘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너무 진지해서 그렇게 웃길 수가 없었다.
수업이 끝나면 방과 후며 이것저것 할 일이 많은 아이들을 붙잡고 기초 학습이 부족했던 아이들을 남겨서 보충수업을 했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하지만 하루 이틀 시간이 갈수록 아이들은 왠지 남고 싶은 듯한 어투로 수업이 끝날 때쯤 내 곁을 맴돌았다. 늘 자신감 없이 조용했던 키가 작은 아이, 자신의 큰 덩치와 느릿느릿한 행동으로 늘 친구들의 핀잔을 들어야 했던 키가 큰 아이는 그 시간이면 물 만난 고기 마냥 조잘조잘 이야기를 하며 그렇게 즐거워했다. 둘을 세워놓고 한 명은 국어책을 큰 소리로 읽기를, 또 한 명은 수학을 가르쳤는데, 어떤 날은 내가 하는 이야기보다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가 더 많아서 한참을 웃다가 결국엔 어서 집에 가라고 재촉하기도 했다. 그 시간은 나도 즐거웠고, 아이들도 즐거웠다.
아이들은 집단의 성향으로 한 사람을 비난하는 경향이 있는데, 덩치 큰 그 아이가 그 대상이 되었다. 말과 행동은 느릿느릿, 게다가 큰 덩치가 의도치 않게 아이들의 책상을 건드리곤 했던 게 늘 사건의 발단이 되었다. 한 번은 아이를 향한 비난의 정도가 심하다고 판단되어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수업시간에 슬쩍 ‘얘들아, 이담에 많이 자라면 여러분의 모습은 지금 그대로가 아닐지도 몰라. 00가 조인성이 될 수도 있어. 선생님이 보기엔 그래, 눈도 크고 이목구비가 엄청 뚜렷하잖아. 게다가 우리 반에서 키도 제일 크고 말이야’ 나의 말에 일부 여자 아이들은 야유를 보내고 손사래를 쳤다. ‘에이, 선생님! 말도 안 돼요’라고 소리쳤지만 그 이후로는 비난의 정도가 많이 줄어든 게 사실이다. 정작 본인은 아이들의 야유에도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조인성이 누군데요?’라고 물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을까?
아이들이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나의 하루는 시작되고 정신없이 지나간다. 아이들의 말소리와 나의 목소리로 시끄럽고 북적북적했던 교실이 3시 이후면 언제 그랬냐는 듯 정적 속에 남겨진다.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지만 잠깐의 휴식을 취하다 보면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떠오른다. 업무가 많을 때는 그 일을 마무리하느라 정신이 없지만 그 일을 마무리 짓고 나면 또 쉴 수 있는 잠깐의 여유를 부릴 수 있다. 아이들이 다 가고 난 텅 빈 교실에 앉아있으면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종종 든다. 매 순간 아이들을 생각하는 건 아니었지만 학교에 있으면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생각하게 된다. 다양한 아이들이 많이 있다. 한 명 한 명으로만 보면 다 예쁘고 그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아이들이지만 학교, 교실이라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 아이들의 개개인의 모습들은 종종 묻혀버린다. 그런 아이들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를 늘 고민했다.
새 학년을 시작하기에 앞서 아이들에게 항상 당부하는 말이 있었다.
‘선생님은 원래 친절하지 않고, 말투가 좀 딱딱한 사람이에요. 그러니 선생님이 나를 미워해서 그러는 거다 라고 생각하지 말아 주세요. 혹여나 여러분이 그것에 상처 받을까 봐 말해두는 거예요’
지금 생각하면 원래 그런 사람이 어디 있나 싶다. 조금 더 친절하게 할 수 있는데, 나 스스로를 말투가 좀 딱딱한 사람이라 규정해버린 것 같다. 칭찬을 많이 해주어야지 하면서 정작 칭찬보다는 혼남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참다 참다 소리를 지르는 거라고 하긴 하지만 아이들 입장에서 내가 참고 있는지 아닌지 알게 무엇인가. 다양한 아이들 만큼이나 나의 모습 역시 다양할 수 있는데 나는 스스로를 좁게 혹은 부정적으로 규정했던 것 같다.
내가 만난 아이들의 모습은 정말 다양했다. 아이들의 모습은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자세히 보면 저마다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때로는 그들이 부러웠고, 때로는 왜 저럴까 고민할 때도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는데 아이들은 늘 성장하고 있었고 점점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가운데 이대로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하지만 그 어떤 시도도 하지 않고서 난 늘 제자리걸음이었다.
2010년 2월 김연아는 세계 신기록을 경신하며 최고점으로 밴쿠버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따냈다. 그리고 나는 그 해 드디어 바라고 바라던 서울 임용고시 합격 소식을 들었다. 나의 합격으로 인해 김연아의 올림픽을 정말 맘 껏 즐길 수 있었다. 진심으로 그녀를 응원했고 그녀의 무대에 감탄했다. 하지만 그저 감탄만 했을 뿐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그렇게 한 길을 오래도록 갈 수 있게 만들었을지에 대한 생각 같은 건 하지 못했다. 그때는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김연아가 대단하다고 생각했고 부러웠다. 나는 2번 떨어진 임용고시에 세 번 도전하여 겨우 합격했는데 어린 나이에 대한민국 최초 타이틀을 달고 전 세계인이 열광하는 스타가 된 그녀가 너무 멋져 보였다. 비교할 대상이 아니었지만 자연스럽게 비교를 했고 나의 합격은 별거 아닌 것으로 여겼다.
우리 아이들이 완벽하지 않듯 나 역시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었는데, 나는 무엇을 더 바랐던 것일까? 예전에는 아이들에게 내가 어떤 기억으로 남을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저 그들이 만나는 많은 선생님들 중의 한 명이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 아이들이 나를 최고의 선생님으로 기억해 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모든 아이들이라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저 내가 만난 아이들 중 한 명이라도 나를 최고의 선생님으로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 완벽하지 않은 아이들처럼 나 역시 완벽하지 않은 선생님이지만 '정말 최고의 선생님이었어'라고 나를 떠올렸으면 하는 바람이 언젠가부터 꿈틀대기 시작했다.
* 표지 사진 : Photo by Robert Collins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