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장 > 다양한 아이들을 만납니다.
임용 시험에 떨어져서 혹은 임용 시험을 통과한 후에 기간제 교사를 하면서 비 고정적으로 출근하던 때가 있었다. 그중에 한 번은 6학년 담임을 맡았던 적이 있는데, 당시 그 반에 등교하지 않는 아이가 있었다.
대부분의 날들을 정상 등교시간(8:40분)은 커녕 10시가 넘어서 어슬렁어슬렁 학교에 오거나 아예 나타나지 않기도 했다. 인수인계를 통해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학교에 나오지 않으니 아침마다 애가 탔다. 50분쯤 까지도 오지 않으면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통화 소리와 함께 그제야 잠에서 깬 듯 졸린 목소리를 들으면 그나마 안심을 했던 기억이 난다. 아이의 출결상황은 부장 선생님을 비롯한 6학년 선생님들이 다 알고 있었고, 급기야 교감선생님께서 가정방문을 독려하셔서, 한 번 집에 찾아가 볼 일이 생겼다.
몇 번의 초인종을 누르고 누르니 그제야 아이가 문을 열고 얼굴을 삐죽 내밀었다. 머리는 까치집에 갑자기 들이닥친 햇빛으로 온 눈을 찌푸리던 아이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손등으로 눈을 비비며 벌써 아침이냐고 물어 오는 아이에게 얼른 씻고 학교에 오라고 채근하며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아침에 깨워주는 사람이 없을 만큼 집에서 관리가 되지 않는 아이였지만 신기하게도 학교에 오면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고 선생님 말에도 순순히 따르던 착한 아이였다.
가정 방문을 했던 날에 아이를 붙잡고 상담을 했다. 알고 보니 밤새도록 게임을 하느라 매번 늦잠을 잤던 것이다. 엄마와 단 둘이 살고 있는 아이였는데 어머니는 일 때문에 항상 바쁘셔서 늦게 집에 오시고 아침에는 아이를 깨우지 못하고 출근하셔야만 했던 것 같다. 6학년이었으니 엄마가 하는 말을 흘려들어버릴 나이이기도 했다. 그냥 담담하게 이야기했던 것 같다. 게임하는 게 좋으니 밤새도록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는 것이다. 어떤 악의도 비치지 않는 그 모습에서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지만 그냥 그 아이를 존중해 주기로 했다. 게임을 하지 말라 혹은 시간을 정해서 하라는 이야기는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어쨌든 아침에 정해진 시간에 학교에 나오는 것이 좋겠다고 말해주었다. '엄마가 너를 챙기지 못하면 스스로 챙겨야지'라고 말해주었다. 다행스럽게도 그 이후에는 지각을 해도 학교에 꼭 나왔다. 종종 등굣길에 아이를 마주치는 일도 있었다.
‘오~ 오늘은 일찍 오네?’
‘선생님이 일찍 오라면서요.’
쑥스러운 듯 씩 웃으며 휘적휘적 걸어가던 아이. 마르고 키가 뻘쭘히 컸던 그 아이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역시 기간제로 잠깐 출근할 때, 4학년 담임을 맡았던 적이 있다. 그때는 발령을 앞두고 있던 때라 정말 편안한 마음으로 학교에 출근했고, 게다가 업무도 없었기에 아이들이 하교하고 나면 퇴근 시간까지 여유로웠다. 그런 여유 때문이었는지 매일 방과 후에 한 아이를 남겨 집중적으로 가르칠 기회가 있었다. 아이는 단원 평가 형식으로 수학 시험을 보면 20개 문제 중 한 두 개를 맞출 정도로 수업을 따라가지 못했던지라 보충 수업이 정말 필요했다.
아이는 늘 주눅 들어 있었고, 반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생활하고 있었다. 친구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아이들과 크게 소통하며 지내는 편은 아니었다. 그렇게 출근하는 동안은 매일 그 친구와 오후에 남아 30분 정도 수학을 가르쳐주었다. 가르치다가 너무 답답해서 화를 낸 적도 있다. 했던 이야기를 똑같이 여러 번 반복해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예시 문제를 같이 풀고 난 뒤, 똑같은 문제를 혼자서 풀라고 하면 하지 못할 정도였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 건 아니었는데, 받아들이는 속도가 현저히 낮았던 것 같다. 나중에는 정말 이렇게 까지 모를 수가 있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아이는 나와 단 둘이 교실에 남아서 공부를 한다는 자체에 큰 의미를 두는 것 같았다. 또래보다 통통한 편에 속했던 아이는 평소에는 거의 말을 안 했지만 나와 단 둘이 남겨진 상황에서는 조근조근 자기가 하고 싶었던 말을 했다. 그런 아이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면 주눅 들어 있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다. 수학을 가르치는 것보다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더 닦달했던 것 같다. 나랑 단 둘이 있을 때에도 자기가 잘 모른다 싶으면 바로 옆에 있어도 목소리가 들리지가 않았다. '모른다'는 말도 큰 소리로 이야기하라고 다그쳤다. 자꾸 주눅 든 모습을 보는 게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났던 것 같다. 최대한 나의 감정을 누르고 이야기를 했지만 아마 아이도 나의 답답함과 짜증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자기를 걱정해주는 마음을 더 알아주었던 것 같아 아이에게 참 고맙다.
기간제였기 때문에 계약된 기간이 곧 끝이 났고 우리의 방과 후 수업도 끝이 났다. 물론 짧은 기간 동안 아이의 성적은 크게 오르지 않았다. 그전에 비해 한 두 문제를 더 맞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아이의 모습은 조금씩 달라졌다. 친구들과 조금씩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매번 기어들어갈 듯 말하던 개미 목소리가 조금씩 커졌다. 몇 년의 세월이 지나고 휴대폰 메신저에서 아이의 프로필 사진을 볼 수 있었다. 어느새 중학생이 된 아이는 (지금은 고등학생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예전과 많이 달라진 모습이었다. 여느 또래 아이들처럼 맘껏 꾸민 모습으로 친구들과 즐겁게 웃고 있었다. 누구와도 눈을 잘 마주치지 못했던 아이였는데 이제는 카메라를 또렷이 응시하고 사진을 찍을 만큼 많이 자라 있었다.
정식 발령을 받고서 6학년을 맡았을 때였다. 한 여학생이 전학을 왔다. 어떤 이유 때문인지 6학년 전체가 난리가 났다. 쉬는 시간마다 다른 반 친구들이 교실 뒤편으로 빼곡히 모여들었다. 그녀를 둘러싼 소문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했다. 소위 우리 학교의 짱이라고 불리었던 여학생이 언제 접근했는지 모르겠는데 둘은 어느새 절친이 되어있었다. 한 판(?)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는데 다행히 아이는 보통의 아이와 다를 바가 없었고, 사교성도 좋았다. 소문이 무성한 데에는 아이의 성숙한 외모도 작용했는데, 내가 봤을 때는 그저 또래에 비해 키가 좀 더 큰 것 말고는 그저 평범한 외모였다. 내 기억 속의 아이는 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생긋이 웃는 모습이 참 예뻤던 평범한 여학생이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랬다. 그런데 평범하고 싶었던 아이의 바람과는 달리 주변은 늘 시한폭탄이었고 결국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어느 날 한 번은 옆 반 선생님(학교 짱이 그 반이었다)께서 나를 부르셨다. 그 반의 학교 짱과 우리 반의 말 많던 전학생 두 아이가 절도를 했다고 한다. OO역 일대를 돌아다니다 들어간 몇몇의 가게에서 물건을 훔친 것이었다. 정말 충격이었다. 그 아이의 학교 생활과 평소 나에게 했던 말들을 지켜보며 아이의 소문에 대해서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아이를 믿었던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었다. 그런데 절도라니! 믿고 싶지 않았지만 아이를 통해 물어본 결과 본인이 한 일이 맞음을 자백받았다. 일단 일이 벌어졌으니 사건을 수습하고자 두 아이를 불러다가 어떻게 할 것인지 이야기했다. 우리는 다시 가게로 돌아가 직접 사과하며 돌려줄 것을 제안했고, 아이들은 동의했다. 그날 수업을 끝내고 학부모님과 교장 선생님의 허락 하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게마다 들러서 물건을 되돌려주었다. 가게 주인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이었다. 이렇게 돌려주어서 고맙다고 하신 분들이 있는 반면 가게에서 일어난 모든 도난 사건이 이 아이들 책임인 양 훈계를 하는 주인들도 있었다. 그런 주인들을 보면서 되려 내가 기분이 나빴던 기억도 난다. (아이들이 훔친 물건은 사실 별거 아닌 사소한 액세서리였다. 물론 별거든 아니든 중요한 사실은 남의 것을 대가 없이 함부로 취하려 했다는 것이므로 아이들의 행동은 명백한 잘못이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한동안은 잠잠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크고 작은 사건의 가운데에 항상 그 여학생이 있었던 것 같다.
아이와 둘이서 이야기를 하면 그냥 천진난만했다. 엄마 없이 아빠와 동생이랑 3명이서 살고 있었는데 사실 아버지와는 상담을 하기가 어려웠다. 학교에 한 번 오시길 바랐지만 오실 수 없는 상황이셨고, 아이와 이야기를 하다 결국 가정방문을 하게 되었다. 그날 아버지를 처음 뵈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버지는 아이에게 매일 얼마의 돈 만을 가져다주신다고 하셨다. 그걸로 두 자매가 생활을 해나가는 것이었다. 그 외에 아버지의 역할을 하고 계시지는 않았다. 생계가 급해서 아이들을 미처 챙길 겨를이 없다고 하셨다. 누가 봐도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나도 그 동생(당시 4학년)의 담임 선생님도 아이들에게 한 두 번 반찬을 싸서 보내기도 했고, 학교에서만큼은 아이들을 단속하고자 했다. 하지만 끝끝내 그 아이들은 가정의 울타리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결국 아동 보호소에 맡겨졌다. 아버지가 선택한 일이셨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그 여학생은 우리 반을 떠났고, 그 이후 잘 지내고 있다는 연락을 한 번 받았지만 그 이후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나는 5학년 때 내가 다 자랐다고 생각했다. 나는 무엇이든 혼자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른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다. 담임 선생님이 매번 잘난 척한다고 생각하고 이래라저래라 잔소리하시는 선생님을 마음속으로는 경계하고 미워했다.(당시 선생님은 나를 예뻐하셨는데도 말이다) 당시 삼총사 친구들과 매일을 같이 다니며 함께 했는데, 그야말로 같이 있으면 무서울 게 없었다. 그래서 더 그랬던 것 같다.
‘ 우리 매일 늦게 나오는 사람은 500원씩 벌금을 내자’
‘오늘 학교 끝나고 롯*리아에 가서 햄버거 먹을까?’
‘주말에 시내에 가볼까?’
우리끼리 모여 할 일을 만들고 부모님께는 간단한 허락만을 받고서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친구들끼리 교환일기를 쓰면서 친구가 전부라고 생각했다. 고민거리가 생기면 그 친구들과 나누었다. 사실 고등학교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부모님에게 반항하거나 싸운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왜 이미 5학년 때부터 컸다고 생각했을까? (엄격하셨던 부모님과 일 때문에 바쁘셔서 집을 자주 비우셨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본인들이 다 자랐다고 생각한다. 내가 5학년 때 그랬던 것처럼 본인들이 모든 것을 알아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 사실을 지금 당장은 모른다. 그런데 내가 아이들을 키워보니 본인의 의지가 생겨나는 돌쟁이 때부터 자기가 다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아이들은 자라면서 친구들의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그보다 부모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
학부모님의 대부분은 아이들이 친구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고 생각하신다. 물론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여러 해 동안 아이들과 함께 하고 지켜본 결과, 친구보다는 가정의 양육방식, 즉 부모로부터 받는 영향이 훨씬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상담을 할 때마다 이를 몸소 체험했다. 한 학기에 한 번씩 있는 상담 기간에 학교를 찾아오시는 학부모님을 마주하는 순간, 아이의 모습은 거짓말처럼 투영된다. 정말 신기한 일이다. 아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어찌 태어날 때부터 함께 해온 부모의 영향이 이제 만난 지 얼마 안 된 친구보다 적을 수 있겠는가. 몇 마디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의외다 싶은 면도 있지만 아이의 학교 생활과 가정에서의 생활이 어떤지 대부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물론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서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이 줄어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갓난쟁이 때부터 함께한 부모의 모습은 아이들에게서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내가 늘 안타까웠던 것은 정작 상담이 필요한 아이의 부모님과는 상담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이었다.
첫째가 올해 5살이 되었다. 다른 엄마들이 그렇듯 아이가 한 번씩 하는 말을 들으면서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36개월이 지나니 어느 순간 언어 구사력이 어른 못지않다. 동생에게 이래저래 한 마디씩 하는데 그 말이 내가 하는 말과 한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다. 한 번씩 정말 진땀이 난다. 아이 앞에서는 찬물도 먹지 말라던 어른들의 말씀이 떠오른다. 나 역시 엄마와 아빠의 좋은 점만 닮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싫어했던 그들의 모습이 내 안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은 누군가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마찬가지이다. 크든 작든 서로가 일정 부분 주고받는 게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무인도에서 혼자 살아가지 않는 이상 항상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치고 영향을 받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 영향 속에서 우리 마음속에는 거인 한 명이 자리하게 된다. 그 거인은 우리의 삶을 조정하려고 들고,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몸집을 키워 나간다. 나이가 들수록 내 안에 자리한 거인은 점점 더 자라나 좀처럼 움직이기가 힘들어진다. 이미 다 자란 어른의 거인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아이들은 다르다. 그들 마음속에 잘못된 거인이 크게 자리 잡기 전에 우리가 그들을 도와주어야 한다.
* 표지 사진 : Photo by Rémi Walle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