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장 > 다양한 아이들을 만납니다.
“아이, 씨X.”
내 귀를 의심했다. 도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임용 시험에 합격하고 발령받은 첫 학교에서 6학년 교과 수업을 맡았던 해였다. 수업시간 내내 딴짓하며 집중하지 않는 아이에게 몇 번 경고를 주었던 것 같은데 난데없이 욕을 들었다. 앉아 있던 나머지 아이들이 모두 얼어붙었다. 그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남학생은 소위 말하는 노는 아이도 아니었다. 평소 담임 선생님을 통해 교과 선생님들 앞에서 굉장히 무례하게 군다는 이야기는 종종 들어왔지만 그 일이 나에게 찾아올 줄은 상상조차 하지 않았었다. 불과 얼마 전에 시간제 영어 선생님께서 그 아이에게 들은 욕으로 큰 충격을 받아 울면서 하소연한 일이 떠올랐다. 아이들이 이렇게 무서운 지 미처 몰랐다면서 너무 힘들다고 하시며 끝내 눈물을 보이시던 선생님을 위로한 일이 있었는데, 지금 그 상황이 나한테 찾아온 것이었다.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는 사실 '남 일'이라 여겼는데, 내가 직접 '욕을 얻어먹고' 나니 선생님이 당시 왜 눈물을 흘리셨는지 백 번 이해가 됐다.
일단은 강하게 맞섰다. 다른 아이들 역시 '이건 아니다'라는 식으로 그 남학생을 말리려 들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아이의 흔들리는 눈빛을 보았다. 역시 본인이 순간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와 달리 아이의 태도는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냐는 듯 강경했다.
“지금 뭐라고 했니?”
“......”
“먼저 잘못했다고 이야기해야 하는 거 아니야?”
“어쩌라고요. 쌤이 먼저 뭐라고 했잖아요!”
아이도 나도 흥분했다. 더 이상 이야기를 해서 될 상황은 아니었다. 마침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했고, 다른 아이들은 교실로 돌아갔다. 아이를 남겼지만 자기가 한 일에 대한 잘못 보다는 교실에 혼자 남겨졌다는 억울함만 하나 더 쌓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 아이가 어떤 기분이었는지 살필 수 없을 만큼 나 역시 너무 흥분된 상태였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일단 담임 선생님께 오늘 일은 알리겠다고 말하고 아이를 교실로 돌려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너무 수치스러웠다. 나는 욕하는 것을 싫어해서 입에 욕을 담은 적도 거의 없지만 그만큼이나 평소 욕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어린 학생으로부터 욕을 들을 것이라는 상상은 해 본 적도 없었기에 나의 놀란 심장은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 아이가 돌아가고 얼마 안 있어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죄송하다는 메시지가 왔다. 그리고 방과 후에 담임 선생님과 아이를 데리고 직접 교실로 찾아오셨다. 선생님께서 이야기를 잘하셨는지 아까보다는 한 풀 꺾여있었다. 죄송하다는 말을 들었다. 나도 자꾸 지적한 부분에 대해서는 잘못했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그렇게 욕을 하는 것은 정말 잘못된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아이는 돌아갔고 선생님과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담임 선생님은 정말 힘든 눈치였다. 교과 시간에 자꾸 이런 일이 발생하니 죽을 맛이라고 하셨다. 가정에 약간 문제가 있다고 하셨는데 자세한 이야기는 말 않으셨다. 골치 아파하시는 선생님을 보며 이 일은 그냥 넘겨버리자 싶었다.
아이들은 욕을 하면 강해 보인다고 생각한다. 욕은 그들의 문화이고 안 하면 왕따 혹은 찐다가 되는 세상이었다. 많은 선생님들이 수업시간에 욕을 하면 안 될 이유를 가르친다. 실험 동영상, 욕의 의미, 설문조사 등 다양한 방법으로 가르치지만 아이들은 계속 욕을 한다. 단지 어른 앞에서 안 하기 위해 자기들 나름대로 노력할 뿐이다. '강한 척' 혹은 뭔가 있어 보이기 위한 수단으로 욕만 한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왜 아이들은 이렇게 '강한 척'을 하는 것일까?
나에게 욕을 했던 남학생만큼이나 잊을 수 없는 여학생 한 명이 또 생각난다.
임용을 합격하고 대기발령 중에 집 근처 학교로 잠깐씩 출근한 적이 있다. (워낙 학급 수가 많은 큰 학교였기 때문에 임시 교사를 구할 일이 빈번했다.) 그날은 6학년 선생님을 대신하여 수업을 하러 간 날이었다. 정확하게 어떤 상황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않고 자꾸 친구 이야기를 나누는 여학생에게 경고를 주려 아이의 옆 자리에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학년 여학생들은 아무래도 민감한 시기이기 때문에 내 딴에는 아이의 기분을 고려하여(교실 앞에서 지적하면 아이의 기분이 상할 것 같았다) 직접 자리 옆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아이는 그런 나를 눈 하나 깜짝 않고 노려보았다. 무섭도록 빤히 노려보는 그 눈빛에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던 것 같다. 애써 침착한 척했지만 어떻게 해야 하나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여학생은 밖에서 만나면 아가씨라고 해도 될 만큼 성숙했다. 긴 생머리에 키도 나만했고, 화장은 나보다 더 잘했다. 아마 그 여학생은 나를 선생님이라 여기지 않았던 것 같다. (자기 담임 선생님을 대신하여 잠깐 땜빵(?)하러 온 사람 정도로 여기지 않았을까.) 게다가 내가 알기로는 당시 학교 '짱' 타이틀을 가진 아이였다. 그런 아이 앞에 나는 단지 자기의 영역을 침범한 병아리 교사에 불과했던 것이다. 당시의 내 상식으로는 어린아이가 눈 하나 깜짝 않고 어른과 눈을 빤히 마주한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소리치고 싶었지만 나는 어른이었고, 교사였기 때문에 그에 맞는 대응을 해야했다. 그냥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그 자리에서 아이에게 크게 소리치거나 혼을 낸다고 해서 아이가 자기 잘못을 인정하거나 나에게 사과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말이다. 불과 몇 분 되지 않는 대치 상황이 너무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나만큼이나 옆에 앉은 아이들이 더 긴장한 것이 느껴지는 상황에서 내가 아이를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은 찾기 힘들었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이미 그 여학생에게 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찌어찌 수습하고 수업을 계속 이어갔지만 그 아이로부터 어떤 사과와 변명을 들을 수는 없었다. 이후로 그 반에서의 수업은 더 이상 없었기 때문에 마주칠 일은 없었지만 지금도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지금 생각하면 그 여학생도 얼마나 무서웠을까 싶다. 다 큰 어른이 서서 자기를 노려보고 있는데 본인이라고 어찌 무섭지 않았겠는가. 단지 자존심이 정말 센 아이가 아니었을까 하고 짐작해본다. 지금 다시 마주하게 된다면 그냥 씩 웃어줄 수 있었을 텐데 싶다. ‘우리 누가 눈싸움 더 잘하나 시합해 볼까?’하는 시답잖은 농담을 던질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랬다면 아이도 나도 그저 피식 웃고 어쩌면 수업이 끝나고 나서 아이와 잠깐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런 후회는 의미 없다는 것을 알지만 한 번씩 그 날의 그 눈빛이 떠오를 때가 있다.
아이들 마다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이 다르다. 잘 표현하는 아이가 있나 하면 자기의 감정을 꽁꽁 숨기는 아이들도 있다. 교사의 입장에서 보면 감정을 잘 표현하는 아이들이 아무래도 대하기가 편한 것이 사실이다. 특히 고학년보다는 저학년일수록 감정을 파악하기가 쉬운데, 그 이유는 표정에서 이미 다 드러나기 때문이다.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얼굴만 보면 아이가 어떤 기분인지 쉽사리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만났던 아이 중에는 당시 2학년이었음에도 마치 6학년인 양 정신적으로 성숙했던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전형적인 모범생이었다. 늘 단정한 옷매무새와 단 한 번도 숙제를 빼먹거나 준비물을 빠트린 적이 없었다. 수업시간에 집중하고 나에게 할 말이 있을 때면 조곤 조곤 자기의 생각을 조리 있게 말하던 여학생이었다. 당시 우리 반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생일파티를 하는 이벤트가 있었다. 각자 집에서 간식거리 한 개씩을 싸와서 모둠별로 나눠 먹으며 장기자랑을 하기도 하고 서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보통 과자 한 봉지씩을 가져왔는데, 아이들 대부분이 정신없이 과자를 먹을 때 그 아이는 단 한 개의 과자도 먹지 않았다.
“OO야, 과자 먹고 싶지 않아?”
“괜찮아요, 선생님. 전 아토피가 있어서 할머니가 먹으면 안 된다고 하셨거든요.”
아이가 아토피가 있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저 단호하게 말하는 아이가 대단해 보였다. 고작 2학년밖에 안 된 아이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사실 그 아이는 엄마가 일찍 돌아가신 아이였다. 학부모 상담 때 할머니가 오셨는데 아이가 너무 빨리 자란 것 같아서 속상하다고 하셨다. 특히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아이가 울지 않고 그 상황을 넘긴 것이 너무 안타깝다고 하셨다.
웃을 때엔 영락없는 2학년 꼬마 숙녀였지만 학교생활이 웃을 일만 있는 건 아니었다. 그 아이는 또래 장난꾸러기들이 장난을 쳐서 화가 나는 상황에서도 다른 아이들처럼 일러바치지 않고 화를 참았다. 그러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 한 번씩 내 앞에서 눈물을 터뜨리곤 했다. 하지만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와중에도 안간힘을 다해 입술을 꽉 깨물며 어떻게든 감정을 숨기고 절제하려고 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는 것이 늘 안타까웠다. 그런 모습 때문이었을까, 나도 모르게 아이를 마치 어른처럼 대했던 것 같다. 따로 불러서 이야기하기도 하고 일기를 통해서 해주고 싶은 말을 써 주면서 우리는 소통했다. 단정하게 묶은 머리와 올망졸망한 눈망울이 지금도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아이. 몇 년 후에 아빠가 재혼하셔서 새엄마가 생겼다며 무척 좋아하던 아이를 볼 수 있었다. 지금도 잘 지내고 있으리라 믿는다.
어른이 되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억제해야만 하는 상황이 찾아온다. 단지 어려서부터 그렇게 해야만 하는 아이들이 안타깝다. 누가 뭐라고 하진 않지만 본인이 처한 상황 속에서 살아남고자 본능적으로 취하는 형태일 것이다. '강한 척'을 선택한 그 아이들은 그것만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 믿고 있을 것이다. 자기 보호야 말로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강한 척’이란 혹은 '센 척'이란 무엇일까? 나는 강하지 못한 사람이어서 '강한 척' 하고 싶었는데 그마저도 잘 안 되는 사람이었다. 거침없이 자신 의견을 말하고 자기 기분을 표현하는 사람들을 보면 무례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동시에 부럽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감정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 부러웠다. 누군가와의 싸움에서 억울하다 싶으면 눈물부터 흘렀다. 기쁨을 잘 표현하기도 했지만 슬픔을 잘 숨기지도 못했다.
결혼을 하고 또 다른 어른과 같이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내 감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감정이 쌓이고 쌓이다 보니 결국 폭발하는 때도 찾아왔다. 그 상황을 해결하고자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강의를 들었고 책을 읽고 공부도 했다. 하지만 아직도 잘 되지 않고 어렵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왕왕이다. 방법은 알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배운 대로 적용하기가 말처럼 마냥 쉽지는 않다. 교사이고 아이를 둘이나 낳은 부모이지만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도 숨기는 것도 아직은 어렵기만 하다. 그러니 우리 아이들을 얼마나 더 힘이 들까?
나에게 욕을 했던 남학생은 자꾸 지적받아서 부끄러운 감정을 숨기려 욕을 했을 것이다. 아마 잘못을 인정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자기가 잘못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했을 때, 어떤 처벌이 내려질지 혹은 아이들이 자기를 어떻게 바라볼지 등에 대한 두려움이 아이를 사로잡았던 것 같다. 나를 노려보았던 여학생 역시 '두려움'을 숨기고자 했을지 모른다. 지고 싶지 않은 자존심. 학교 '짱'이라는 타이틀 아래 (선생님 같아 보이지 않는) 젊은 여자의 말에 고분고분했을 때 아이들이 자기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나를 노려보는 눈빛 뒤에 서려있었음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2학년 꼬마 숙녀 역시 마찬가지이다. 잘하지 않으면 엄마 없는 아이라고 놀림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엄마가 없으니 무엇이든 스스로 해야만 한다는 '압박감'이 아이를 온통 사로잡았음에 틀림없다. 어릴 적 엄마의 죽음은 아이에겐 너무 큰 충격이었을 텐데 아이는 슬픔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고, 충분히 슬퍼하고 흘려보냈어야 할 것이 제대로 소화되지 못한 채로 아이의 가슴에 그대로 남아버렸던 것이다.
아직 어른인 나도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감정 다루기'가 우리 아이들에게는 얼마나 어려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내가 만났던 '강한 척'하는 아이들은 '감정의 소화불량'을 겪는 아이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들은 솔직한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진짜 감정을 숨기는 것에 '강했던' 아이들이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가면서 '두려움'의 감정을 제대로 소화할 경험을 갖는 것이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순간 아이들 앞에 더 넓은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들이 꼭 훨훨 날 수 있도록 누군가 도움의 손길이 아이들 곁에 있기를 바라본다.
*표지 사진 : Photo by Timothy Eberly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