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장 > 다양한 아이들을 만납니다.
4학년 때 우리 반 반장이었던 '아름'이는 예쁘고 착한 모범생이었다. 나는 늘 그 아이가 부러웠다. 내 이름이 흔하디 흔한 것이 싫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름'이라는 이름이 내 이름이었으면 좋겠다고 수없이 생각했다. 아름이라는 이름 역시 내 이름만큼이나 흔한 이름이었는데도 말이다.
아름이는 학교에서 하는 방과 후 바이올린 수업을 듣고 있어서 바이올린 수업이 있는 날이면 항상 바이올린을 한쪽 어깨에 메고 등교했다. 한 번은 반 친구들에게 바이올린을 꺼내서 보여주었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멋져 보였는지 그 날 이후로 엄마를 졸라대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하는 방과 후 프로그램이라 수업료는 비싸지 않았지만 일단 바이올린이 있어야 했다.) 늘 무섭게만 느꼈던 아빠에게도 졸라댔다. 결국 나의 고집이 통했던 것일까, 어느 날 나를 악기상에 데리고 가셨다. 너무 싸지도 그렇다고 너무 비싸지도 않은 하지만 당시 넉넉지 않은 부모님의 재정상황에는 부담이셨을 정도의 가격의 바이올린을 하나 사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철없다 생각되지만 욕심 많은 4학년 짜리 여자애의 눈에 그런 것이 보였을 리가 만무했다. 나는 너무 좋았고, 당장이라도 멋진 바이올리니스트가 된 것처럼 들떴다. (선뜻 사주고 싶은 마음과 그럴 수 없는 형편 사이에서 고민하셨을 부모님의 마음이 지금은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죄송스럽고 정말 감사하다.) 그렇게 나의 바이올린 수업은 시작되었다. 당시 피아노도 배우고 있었는데, 자연스레 피아노는 뒷전이 되었다.
현악기는 쉽게 소리가 나지 않는다. 특히 예쁜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정작 나는 바이올린을 사게 된 순간부터 연습보다는 그 가방을 메고 다니는 것에 심취했다. 그런데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방과 후 발표회가 열리게 되었다. 선생님은 실력은 부족하지만 한 번 참여해볼 것을 권유하셨고 나는 아무런 두려움 없이 선뜻 승낙했다. 하지만 무대에 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연습도 얼마 하지 않은 데다가 피아노 반주자와의 호흡 맞추는 연습조차 하지 않은 채(리허설 때 딱 한 번 했다.) 무대에 올랐다. 결과는 안 봐도 뻔했다. 나는 나대로 피아노 반주자는 반주자대로 제각각 연주했다. 피아노 반주자 역시 동학년 중에 피아노를 좀 친다 하는 또래 아이일 뿐이었다. 그 아이가 무슨 아량이 있어서 나에게 맞춰주었겠는가. 그렇게 나는 ‘피아노 연주자가 제 멋대로 하는 바람에 제대로 연주할 수가 없었다’라는 비겁한 변명과 함께 바이올린과는 멀어졌다. 먼 훗날 대학생이 되어 다시 바이올린을 시작하게 되지만 그 연주회 이후로 바이올린은 내 영역에서 사라져 버렸다.
바이올린은 샘 많은 나의 어린 시절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이다. 수영을 배우는 친구가 부러워 수영을 다녔고, 피아노를 잘 치는 친구가 부러워 피아노를 쳤다.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가 부러워 미술 학원에 다녔고, 서예를 잘 쓰는 친구가 부러워 서예학원을 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어머니는 없는 살림에 나에게 꽤 투자를 하셨던 것 같다.) 나는 어려서부터 남이 하는 것은 다 부러워했고 꼭 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정작 내가 하고 있는 일에는 만족하지 못하고 늘 누군가가 하는 것을 쫓아다녔다. 성인이 되어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고서 남들이 하는 것은 다 좋아 보여 이것저것 시도하고 한 번 해보고는 거기에서 멈춰버렸다. '약간' 혹은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수준이 되면 그냥 거기서 끝내고 다른 것으로 갈아탔다. 그러면서도 SNS를 통해 보이는 친구들 혹은 타인의 삶이 늘 좋아 보이고 부럽기만 해서 SNS는 아예 끊어버리고 살았다. 드라마를 보면서도 웹툰을 보면서도 재미는 있지만 뭔가 찜찜한 기분을 가진 채 보고 나서 후회하는 일상을 지속했다. 나의 미래가 막연히 불안하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선생님 됐으면 됐지 뭐, 더 이상 공부하기도 싫고 이제 좀 쉬자라는 생각으로 그냥 나의 일상을 놓아버렸다. 꿈을 꾼다는 것은 그냥 우리 반 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이라 생각했다.
6학년을 가르칠 때, 두 여학생이 있었다. 둘 다 공부도 잘하고 또래에 비해 키가 큰 예쁜 친구들이었다. 한 명은 무용을 전공하고 있어 수업이 끝나면 나머지 시간은 늘 무용을 하면서 하루를 보냈고, 한 명은 늘 쉬는 시간마다 책상에 앉아서 그림을 그렸다. 전형적인 모범생들이었지만 둘은 다른 아이들과 달랐다. 한 번은 급식실에서 밥을 먹는데 무용을 하던 아이가 내 앞에 앉은 적이 있었다. 식판에 담긴 양이 다른 아이들에 비해 적은 것 같아서 혹시나 하고 물어보았다.
“밥을 왜 이렇게 조금 먹어? 지금도 엄청 말랐는데. 혹시 무용 때문에 식단 조절하는 거야?”
“네, 지금부터 식단 조절해야 한다고 엄마가 말씀하셔서 지키고 있어요.”
나는 그때 그 아이가 참 대단하다고 느꼈다. 엄마가 보고 있지도 않은 상황에서도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자기가 먹을 분량만큼만 먹는 아이. 매번 ‘다이어트해야 하는데, 이거 먹으면 안 되는데.’라는 마음으로 정작 먹으며 괴로워하던 나와는 달리 그 아이는 자신이 지킨 약속을 실천하고 있었다. 그 아이는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이미 그렇게 먹는 습관이 몸에 베였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을 것이다. 어린 나이이지만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일상의 모든 습관을 그렇게 맞춰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대단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숙제와 공부를 놓치지 않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그때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실로 대단하게만 느껴진다. 게다가 그 아이는 그냥 취미로 무용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무용가가 되기 위해 전국 무용 대회에서 1등으로 입상하는 실력을 갖춘 아이이기도 했다. 결국 그 아이는 본인이 진학하고자 했던 중학교에 진학했다.
그림을 그리던 또 한 명의 드리머는 겉으로 보았을 땐 정말 평범한 아이였다. 공부도 잘하고 친구들과의 사이도 원만했지만 친구들 사이에서는 약간 특이한 아이로 인식되었다. 보통 6학년 여학생들은 무리를 지어서 다니는 것이 일반적이다. 2명이든 3명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고 일단 친한 친구들과 그룹을 형성한다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 아이는 그런 그룹이 없었다. 대신 자기 여동생과 절친이었다. 당시에는 일기검사를 하던 시기라 일주일에 두 번씩 아이들의 일기를 받아서 읽어보고 답글을 남겨주곤 했다. 나는 일기 답글을 꽤 길게 써주는 편이라 그랬는지 형식적으로 쓰는 아이들보다는 정성 들여 일기를 쓰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 아이 역시 일기를 정성 들여 잘 써왔다. 일기의 대부분은 자기 여동생과 혹은 가족과 있었던 일이었다. 보통 친구들과 무슨 일을 했다는 내용의 일기가 많은데, 그 여학생의 일기는 온통 여동생 이야기였다. 그리고 꼭 일기의 끝에는 4컷 만화가 있었다. 만화는 아이가 일상에서 느끼는 것들을 표현한 것이었는데, 어설픈 그림에 이게 도대체 무슨 내용이지? 할 정도의 수준이었지만 만화를 볼 때마다 진지하게 그림을 그렸을 아이를 떠올리며 미소 짓곤 했다. 그 아이는 동생과 만화를 그리면서 노는 것을 정말 좋아했다. 전형적인 은둔형 모범생이라 수업 중에 적극적으로 발표를 하지는 않았지만 웹툰 이야기가 나오거나 그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눈빛이 달라졌다.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엉덩이를 들썩들썩했다.(지금 생각하면 정말 귀여워서 웃음이 난다.)
내가 가장 인상 깊게 기억하던 아이의 모습이 있다. 그룹으로 지내는 여자아이들 사이에서는 한 번씩 서로 따돌리는 경우가 발생한다. (6학년 여자아이들 사이에서는 비일비재한 일이고, 심각하지 않으면 선생님한테까지 이야기가 넘어오지 않고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그때도 누군가가 자기의 무리에서 약간 겉돌고 있었는데 그 아이랑 둘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바로 다음 쉬는 시간에 그룹의 우두머리가 그 아이를 찾아와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아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무리에서 겉돌던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놀았다. 무슨 말을 했는지 궁금해져 방과 후에 집에 가는 아이를 살짝 불렀다.
“좀 전에 보니까 OO가 너한테 따로 이야기하는 것 같던데 무슨 이야기했던 거야?”
“아 그거요? OO가 저보고 쉬는 시간에 △△랑 이야기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전 그런 거 신경 안 써요. 제가 놀 사람은 제가 판단하니까요.”
씩 웃으며 이야기하고는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 교실문을 나섰다. 무엇이 그 소녀로 하여금 어린 나이에도 흔들리지 않는 일관된 발언과 행동을 하게끔 만든 것일까? 늘 강단 있는 아이라고 생각했지만 소신 있게 말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멋지다'는 말이 입에서 흘러나왔던 것 같다.
5학년을 가르칠 때는 피아노를 치던 소년이 있었다. 그 아이는 이미 피아니스트로 등록된 아이였고, 굉장한 재능을 갖고 있는 아이였다. 한 번 연주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저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저 나이에 저런 연주를 하기 위해서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을까. 그 아이는 이미 피아니스트였고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자기 인생으로 여기며 살아온 아이였다. 학교 수업과 친구들과의 만나는 시간이 짧아 늘 아쉬워했다. 특히 학예외 발표회가 있던 해라 수업을 쪼개가며 열심히 연습을 할 때 그 아이는 반 아이들과 함께 참여를 못하는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나중에 따로 불러서 한 번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역시나 담담하게 자기 이야기를 했다. ‘저도 친구들과 함께 학예회 무대에 서고 싶지만 저는 할 일이 있으니까요. 아쉽긴 하지만 괜찮아요 선생님.’ 내가 위로하려고 불렀는데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그 아이 역시 짧은 수업을 하면서도 늘 숙제를 열심히 해오고 시험을 칠 때면 빠지지 않고 참석해 시험도 보고 그랬다. 피아노 치면서 언제 공부까지 했던 것인지.
나는 이래저래 흔들리는 선생님이었지만 반에서 꼭 한 명씩은 흔들리지 않는 아이들이 있었다. 누가 뭐라든 쉽게 동요하지 않고, 친구들에게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의 갈 길을 가는 아이들. 그 아이들은 내가 뭐라고 하는 것에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들은 늘 담담했고, 그리고 자기의 이야기를 하면서 씩 웃었다. 그런데 그 미소가 너무나도 예뻤다. 그들에게는 꿈이 있었다. 이루어야 할 무엇인가가 있었다. 나는 꿈이 없었다. 그냥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가진 남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우리 반 다른 친구들도 그랬다. 그저 눈뜨면 학교를 가야 하고 학교에서는 선생님과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고, 학교가 끝나면 학원을 가야 했다. 왜 그래야 하는지 잘 모르고 주변에서 다들 그렇게 하면서 사니까 또 그렇게 살아라고 하니까 그런 일상을 보내는 아이들이었다. 나 역시 그 아이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열심히 공부하고 학교를 다니고 졸업을 하고 취직을 했다. 남들이 보기엔 늘 모범생이고 아쉬울 것 없었지만 나는 늘 내가 만족스럽지 않았다. 꿈을 가진 아이들을 보면서 막연히 부러웠지만 내가 왜 그들을 부러워하는지조차 몰랐다. 평범해 보이지만 특별한 아이들, 반짝이는 자기의 보물을 갖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멋지고 부럽다고만 생각했다. 나도 그 보물이 갖고 싶었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다.
독수리는 육지에서는 잘 걷지 못한다. 오히려 다른 동물들에 비해 둔한 편이다. 하지만 하늘에서는 제왕이다. 몇 번의 날개 짓으로 아주 높이 그리고 멀리 날아오른다. 그리고 한 번 날아오르면 엄청난 속도로 날아간다. 꿈이 있는 아이들은 독수리처럼 날아오르기 위해 열심히 비행 연습을 한다. 내가 만났던 흔들리지 않는 아이들에게는 언젠가 독수리처럼 힘껏 비상하는 순간이 분명히 찾아올 것이다.
아무런 대가 없이 이루어지는 게 없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저 독수리처럼 날아오르고만 싶었다. 이미 멋지게 날고 있는 독수리들만 쳐다보면서 언제쯤 저렇게 날아오를 수 있을까만 막연히 쳐다보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스스로를 자책하고 과거를 후회했다. 무엇보다도 나도 그렇게 멋지게 비행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 채 이미 늦었다고만 생각했다. 남들이 하는 것은 다 해봐야지만 직성이 풀렸던 샘이 많던 아이는 어느 순간부터 그저 '남들' 만큼만 하면서 살면 된다는 생각으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중심이 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표지 사진 : Photo by Rachel Pfuetzner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