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은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by 이유진

패션의 완성은 헤어라지만 나는 패션에도 헤어에도 크게 관심 없는 사람인지라 펌과 염색을 한지가 언제였는지도 모를 만큼 머리카락이 많이 길어버렸다. 무더운 여름날의 긴 머리가 너무 더워 보였던 걸까. 어머님께서 머리를 틀어 올릴 수 있는 큰 집게 핀과 작은 핀 하나를 사다 주셨다. 한눈에 봐도 내가 절대로 사지 않을 법한 비싼 큐빅이 잔뜩 박힌 핀이었는데,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무시하기라도 하듯 잘 차고 다녔다. 특히 집게 모양의 작은 핀은 어정쩡하게 길어진 앞머리를 집는 데에 더할 나위 없이 편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며칠 전 작은 핀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급하게 나갈 일이 있어서 머리를 채 말리지도 못한 채 서둘러 나가면서 후다닥 머리끈과 핀을 챙겼다. 머리끈은 손목에 걸고, 아직 마르지 않은 머리에 핀을 꽂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핀을 가방에 넣고서는 부지런히 버스정류장을 향해 걸었다. 뜨거운 햇볕 아래 머리는 금방 말라버렸고, 슬슬 묶어야지 하면서 머리를 묶고서는 핀을 찾았는데, 웬걸. 핀이 보이지 않았다. 바지 주머니며 가방을 탈탈 털었는데도 보이지 않는 핀에 잔뜩 우울해졌다. 어머님께 받았다는 것도 신경이 쓰였지만 비싼 핀이라 더욱 아깝기도 했다. (물론 가격은 알 수 없지만 평소 하고 다니던 실핀에 비하면 굉장히 비싼 것이리라)


혹시나 서둘러 나오는 길에 집에서 챙겨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일말의 기대감으로 집에 도착하자마자 책상, 화장대 및 화장실 선반이며, 구석구석 다 찾아보았지만 핀은 보이지 않았다. 허탈했다. 오늘 나의 동선을 차근차근 돌이켜보았다.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면서 같이 빠졌던 것일까. 혹시나 내가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길에 떨어트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아이들 하원길에 산책 삼아 한 번 둘러봐야지 했는데 때마침 비바람이 몰아치는 바람에 그것도 무산됐다. 창밖으로 무참히 쏟아지는 비바람을 보면서 혹시나 핀이 떨어져 있었더래도 비바람과 함께 저 멀리 날아가버렸겠다 싶어졌다.


그러다가 다음 날, 나갈 일이 있어서 정류장으로 걸어 나가는데 가던 길에 핀이 눈에 들어왔다!

'어! 핏이다!'

옆에서 걷던 남편도 깜짝 놀라면서 이럴 수가 있냐고 반가워했다. 나는 그 핀이 정말 반가웠다. 어쩐지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처럼 그리 개운할 수가 없었다.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기분이었는데, 운수 좋은 날의 행운은 거기까지였던 것일까. 그 이후로는 일진이 썩 좋지 않았다.


제시간에 맞춰 타야 하는 지하철은 때를 놓쳐 약속 시간에 늦어버렸고, 남편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잠깐 들렀던 장소에서 남편은 여느 때와 다르게 초보자 같은 실수를 하면서 그만 차에 큰 상처를 내고야 말았다. 물론 내가 운전하진 않았지만 남편이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하는 것이 못내 안타까웠다. 경쾌하게 시작한 하루의 마무리는 시작과는 다르게 먹구름이 잔뜩 끼어버렸다. 혹시 내가 이 핀을 다시 되찾는 행운을 누리지 못했더라면 오늘 자동차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생각지 못했던 핀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놀랍도록 큰 것이었는데, 차 사고로 인해 그 기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핀의 되찾음과 자동차 사고는 전혀 상관관계가 있는 일이 아니지만 근래에 재수 없는 일이 자꾸 자기에게 일어난다고 생각하고 있는 남편을 보고 있노라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내가 할 수 있는 위로는 그저 더 큰 사고를 예방한 것뿐이라는 말이었다. 다른 차를 안 긁은 게 어디냐며, 그나마 주차장 기둥에 박은 것이 오늘 핀이 가져다준 큰 행운이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런 나의 위로에도 남편은 묵묵부답이었지만 그래도 한결 나아진 표정이었다.


최인철 교수의 <프레임>이라는 책을 읽으면 '관점'이라는 것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이 꽤나 크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쩌면 '관점을 바꾸라'는 말은 평소에도 지겹게 듣는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보통 우리가 살아온 방식을 고집한다. 인간의 타고난 성향과 살아온 과정에서 배워온 관습은 쉬이 바꾸기 어렵다. 관성의 법칙은 버스 안에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전체에 작동한다. 그래서 '습관'이 무섭다. 생각하는 방식도 습관이다. 그런데 내가 겪어보니 생각은 생각한다고 바뀌는 게 아니었다. '앞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해야지' 해서 바뀌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나의 경우, 작은 변화들을 꾸준히 실천하는 가운데 삶을 바라보는 태도와 관점이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 책 읽기가 그렇고, 글쓰기가 그렇고, 운동이 그렇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을 바꿀 수 있었던 것은 '보는 관점을 이렇게 바꿔야지' 하는 단순한 다짐 또는 생각이 아니라 그 다짐을 위해 그간 꾸준히 실천해 온 것들 때문이다. 세상은 족집게 과외를 해준다는 사람들로 넘쳐나지만 결국 그들은 조력자일 뿐, 내 삶은 나의 의지와 행동의 실천에 의해서만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냥 지금 하는 일에 충실하는 것 밖에 없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든 그 일에 나의 온 마음을 다하는 것. 지금 이 순간을 열심히 사는 것. 글을 쓰면서 오늘 밥은 무얼 하나 걱정하지 않는 것뿐이라는 것이다.


늘 걱정을 달고 살면서 불행한 일들이 모두 나에게만 일어나는 것 같은 순간이 나에게도 있었다. 지금은 '순간'이라 말하지만 당시에는 남편이 생각하는 것처럼 나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재수가 없어서, 내가 운이 없어서 일어나는 일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관점이 달라진 것이다. 내가 그런 사람이어서 불행한 일들이 나에게만 오는 것이 아니라 '불행한 순간'은 누구에게나 온다는 것을 알고 나니 내 삶은 조금 가벼워졌다.


지금도 그렇다. 남편과 나의 입장이 달라진 것에 안타까우면서도 안심이 되는 이중적 마음이 든다. 둘 다 비관 모드에 빠져있다면 그건 또 어찌할 것이란 말인가. 그나마 한 명이라도 좋은 말로 위로해줄 수 있는 상태에 놓여있음에 감사함을 느끼는 수밖에. 잔소리로 들리겠지만 내가 할 일은 남편한테 그런 것이 아니라는 말을 자꾸 해주는 수밖에 없다. 이왕이면 예쁜 말로 말이다. 물론 이것이 잘 안 되는 것이 문제긴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나의 할 일에 사명감(?)을 갖고 최선을 다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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